한 없이 넓기도, 좁기도 한 세상

by 베를린 부부-chicken

by 베를린부부

한 업계에 오래 일하다 보면 업계가 참 한 없이 작게 느껴질 때가 있다. 동료로 지내던 사람과 경쟁관계로 만나기도 하고, 반대로 경쟁관계로 만나던 사람과 바로 옆자리에 앉는 동료가 되기도 한다. 요새 많은 설계 사무실 홈페이지에 현재는 그만뒀지만 과거에 같이 일했던 사람들의 이름도 심심찮게 놔둬서 그런가, 어떤 사람이 어디 어디 사무실에 있었던가 등을 보면 더욱 그렇다. ‘아 이 사람이 여기에서도 일했었구나.'

더 넓은 세상을 찾아 멀리멀리 왔건만, 이 ‘좁은 세상’ 이론은 지구 반대편에도 여전히 성실하고 꼼꼼하게 사실이다. 예를 들어 내가 일하는 사무실에 어떤 새로운 직원이 출근을 한다. 그런데 전혀 연관 없어 보이는 다른 직원과 상당히 친하게 지낸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둘은 다른 사무실에서 꽤나 오랜 시간 동안 같이 일한 동료 사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전 직장에서 매일 같이 으르렁거리며 싸우던 사람과 두 사람이 절친이었다.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세상 참 좁아’라고 말하면 그다음은 으레 ‘그래서 착하게 살아야 해.’라고 이어진다.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 다시 만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으르렁 거리며 안 좋게 끝나버린 사람도 새로운 상황에서 다시 만날 수 있고, 연락이 끊어져버린 사람과 정말 우연한 기회에 다시 보게 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나 의도치 않게 연락이 끊어져 버린 사람과 그 많은 인생의 순간들 중 기가 막히게 서로의 순간이 겹치는 순간, 의도치 않게 다시 연락이 닿는 경우가 있다.


몇 해 전 여름에 한 달 정도 휴가로 한국에 갔었을 때였다. 청주에 사시는 부모님을 뵈러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가던 길이었다. 고속버스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붐비지 않을 때는 기사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10분 먼저 출발하는 앞차를 탈 수도 있다. 어차피 청주 같은 곳은 매 10분 배차간격이라 늦어도 10분, 빨라도 10분이긴 하다. 그래도 난 그날, 마음이 급해 10분을 서둘러 앞차를 타려고 서성이고 있었다. 결국 겨우 원래 타려던 버스보다 10분 일찍 출발하는 버스 맨 앞자리에 탈 수 있었다. 그렇게 출발을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에 나보다 더 늦게 버스에 오르는 사람을 봤다. 그런데 그 짧은 순간 왠지 어딘가 친숙해 보이는 얼굴에 나도 모르게 어안이 멍해졌다.


‘어? 잠깐, 내가 저 사람을 어디서 봤지?’


내 과거 기억에서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저 얼굴을 기억해내려 애쓰기 시작했다. 반포 고속터미널을 출발해 서울 톨게이트를 지날 즘이었을까 검색이 끝났다. 맞다. 내가 아는 분이었다. 임팀장님이었다.


아주 예전, 대략 10여 년 전쯤에 같은 업계에서 만나 꽤나 친밀하게 지내던 분이었다. 내가 일하던 사무실에 팀장님으로 오셔서 인연을 맺었었다. 그 뒤로 이직하신 뒤에도 몇 번 뵌 적 있는데 무엇보다 나는 이 분의 “점잖은 카리스마”가 너무 좋았다. 조곤조곤 차근차근, 해야 할 이야기를 잘 알아들을 수 있게,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하는 그 ‘근사한 능력’이 나에겐 강력한 카리스마로 느껴졌다. 왠지 그와 함께 일하고 있으면 산만한 나도 차분해지는 듯한 그 느낌이 좋았다. 그래서 그분을 더 따랐는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팀장님을 뵌 것은 내가 마드리드로 떠나기 직전이었다. 기혼이셨던 그분도 마침 가족과 함께 같이 런던으로 유학 가신다고 하셨다. 아 런던에서 마드리드면 그리 멀지 않네요, 제가 꼭 연락드릴게요, 이렇게 유럽에서 보자는 다짐 섞인 인사가 마지막이었다. 그 뒤로 나 역시 마드리드로 나오며 일상이 급격하게 바뀌었고 한국에서 사용하던 핸드폰 번호도 해지하며, 메일 주소도 바뀌며, 가지고 있던 연락처들이 한 번 대규모로 뒤섞였다. 그때 꽤나 많은 연락처들이 분실됐다. 꼭 그 이유만이 아니었겠지만 어쨌거나 팀장님과는 양재동 어딘가에 있는 식당에서의 만남을 마지막으로 다시 볼 수 없었다.

그 뒤로 몇 해가 지나 우연히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팀장님이 일하시던 사무실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그때, 팀장님과의 기억이 살아나며 그 분과 함께했던 작업을 뒤적였다. 문득 어떻게 지내시나 궁금했었다. 그러나 SNS로 찾기엔 너무 정보가 턱 없이 부족했다. 그 뒤로 다시 한번 수년이 시간이 다시 또 지나 고속버스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이다.


버스는 어느덧 청주터미널에 도착했다. 나는 먼저 버스에서 내려 기다리다 팀장님에게 아는 척을 했다. 물론, 호칭은 10여 년 전 상태로.

팀장님은 런던을 다녀오신 뒤 이미 아내분과 본인들의 사무실을 운영 중이셨다. 그러니 어엿한 소장님이 되신 것이다. 그분은 내가 꼭 베를린으로 돌아가기 전, 자신의 사무실에 들렀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정말 그러고 싶었지만 늘 촉박한 한국에서의 시간은 나를 허겁지겁 다시 베를린의 일상으로 데려갔다. 한 달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지만 1년 동안 멈춰놨던 인간관계의 시간을 재가동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아쉽게도 간단한 전화통화만 하고 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했다.


다시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내가 기혼이 되고 아내가 임신을 하며 아빠가 될 준비를 하던 시기, 스톡홀름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김에 그곳에서 공부 중이던 학교 후배를 만났다. 나와 적지 않은 나이차가 나는 그는 당시 스톡홀름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구직 중이었다. 일이 잘 안 풀리는지 시종일관 의기소침해 있었던 그였다. 왠지 그때부터 난 그가 좀 안쓰럽기도 했고 예전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연락을 종종 하게 됐고, 그러던 그가 몇 달 뒤 한국으로 귀국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그가 일하기로 했다는 사무실이 고속버스에서 다시 만난 소장님의 사무실임을 듣고는 베스레 얼굴에 미소가 뗘졌다. 소장님은 안 그래도 같은 학교 출신인 그 후배에게 혹시 나를 아느냐고 질문하셨고 눈이 동그라진 후배는 나를 어떻게 아냐고 했다는 것이다. 세상이 너무 신기하기고 하고, 내가 반가워하는 사람들이 나 없이 알게 됐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작년 겨울, 오랜만에 서울에 가 드디어 그 사무실에 들렸다. 소장님도 뵙고, 이제는 그 사무실의 직원이 된 후배도 보러 갔다. 그리고 머나먼 기억 속 소장님의 사모님도 뵌 적이 있다는 걸 찾아냈다. 서로 업계 이야기를 두루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고, 마치 오랜만에 만난 사람처럼 편하게 이야기하는 게 참 오랜만이구나 싶었다. 왠지 마음이 훈훈해지기도 하고, 아기와 함께 간 첫 한국행이 너무 힘들고 지치게만 느껴졌었는데, 보도블록 사이로 피어난 봄소식 같은 따뜻한 마음이 들었다. 너무 즐거웠다.


혹시 모른다. 그때 지워버린 연락처들, 정리한답시고 홀딱 뒤집어 버린 전화번호와 메일 주소들 중, 내가 가지고 있던 기억의 일부분도 지워졌을지 모른다. 그게 어떤 기회에, 어느 순간에 다시 생각이 날지, 그래서 이 넓고도 좁은 세상에 즐거운 마음을 안겨줄지 궁금하다.



표지 사진:

"메밀꽃 필 무렵" / 이와임 건축설계 사무소 /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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