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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랑쥐 Jul 05. 2021

[아내의글]글 쓰는 게 무슨 대수냐?

너에게 있고 나에겐 없어

intro

너에게 있고 나에겐 없어


우린 정말 가지고 있는 재능이 달라

너는 잘하는데

난 부족하거나 못하는 게 뭐가 있을까?

설거지, 잘 웃기, 잠꼬대하기, 씻기, 돌아다니기...


아 이거!

너한테 있는데 나에게 없는 거!!



글 쓰는 게 무슨 대수냐?


대수다. 그것도 아주 아주 대수,

“해보자,  우리도 부부 연재!”


우리들의 이야기와 생각을 쉽게 써서 '서로 공유하고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자’ 여기까진 너무 좋은 취지였다.

그래서 서로 궁금했던 점, 알고 싶은 이야기가 뭐가 있는지 생각했고, 그걸 주제별로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주제에 맞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화를 나누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남편의 다양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 꽤 즐거웠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게 분명 말할 때는 너무 간단명료했던 것들이 글로 생각을 정리해서 기록하려고 하면, 너무 복잡해졌다.


'이런 이야기를 글로 정리하면 정말 멋질거야’라며 시작은 늘 기세 등등했다.

첫 문장에 마침표를 찍고 희열을 느낀 후,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려고 하면 이상하게 연결이 되지 않았다.

분명 대화할 땐 생각이 잘 정리된 것 같았는데, 자신만만하게 책상에 앉았다가 미궁에 빠지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빛을 보지 못하고 저장공간에 머무른 글은 시간이 지날수록 쌓여갔다.


하루는 샤워를 하는데, 눈이 번쩍 떠지면서 ‘바로 이거지!’하는 주제가 떠올랐다.

스스로 참신하다고 생각한 주제 때문인지, 섬광처럼 나온 아이디어는 샤워하는 동안 머릿속을 계속 배회했다.

옴니버스처럼 다양한 사건들이 하나둘씩 엮어지는 순간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다음 날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메모지에 생각한 소재들을 써놓고 기분 좋게 잠들었다.

그런데 다음 날, 전날 밤 써 둔 메모를 다시 읽어 보니 너무 식상하기 짝이 없었다.

분명 신명 나는 글감이라며 좋아했는데.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려니 쓸 맛도 나지 않고, 되려 감을 잃어서 머리만 아팠다.


사실 더 가관은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는 것이다.

글을 써본 경험이라곤 연애편지 몇 자, 리포트와 논문, 그리고 기술서 풀이를 위해 다른 사람의 글을 발췌해서 엮어본 경험이 다였다.


내가 살아온 히스토리,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 느낌을,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실체들을 꺼내어 표현하는 능력은 쉽게 주문하듯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책상에 앉는 게 더욱 두려웠다.


학창시절에 디자인 과제를 교수님께서 내주시면 이틀 전까지도 책상에 앉질 못했다.

대략 어떻게 구상할지 생각은 해두었지만 그걸 실행하기까지 워밍업이 필요했다.

집안 청소를 시작하며 책상을 정리하거나, 잘하지 않던 산책을 다녀오거나, 친구랑 한 시간 이상을 통화로 수다를 떨고 난 후에야 내적 저항을 좁혀갈 수 있었다.

사실 과제는 집중하면 몇 시간이면 끝날 일이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지금 딱 그런 꼬락서니다.

글도 창작과 표현의 영역이라는 걸 망각하고 있었나 보다.



21.07.05 / 식탁에 앉아 글 쓰며 / 오일 파스텔 / 사진_ 우리 집 침대


 글이 정리가 되는 지점에서야 남편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

그런데 남편은 내가 쓴 글을 읽고 나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

“너무 꾸미려거나 문장을 재미있게 만들려고 하다 보니 억지스럽고 글이 산만해."라는 피드백을 자주 했다.

그럼 그날은 더욱 의욕이 떨어져서 글 쓰는 흥미를 잃었다.


그러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라는 정재찬 교수님의 산문 책을 다시 열었다.

지금은 하지 않지만 TVN에서 하는 [어쩌다 어른]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오셔서 시에 대한 강연을 하셨다. 어찌나 재미있게 시를 풀이하며 이야기하시던지, 잃어버린 감성을 순식간에 회복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매력적이신 교수님의 책을 다음날 바로 구매했었는데, 오늘 다시 그 책을 열게 된 것이다.

신기하게도 여전히 책 속엔 그분이 읊조리 듯 부드럽게 말씀하시던 어투와 스토리가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남편은 그날 밤 다시 자기에게 쓰고자 하는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난 다시 처음 하는 이야기인 듯 남편과 눈을 마주치며 밤새 재잘재잘거렸다.


“그래, 이렇게 이야기하듯 쓰는 거야. 과장하거나 꾸밀 필요가 없어, 나랑 대화하듯 쓰면 돼"


매일 몇 만자의 기사를 쓰는 남편도 글이 잘 써지지 않는 날이 있다고 했다.

인터뷰도 잘했고, 자료도 충분하고, 취재도 완벽했다고 생각하고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기사를 쓰려고 자신 있게 자리에 앉으면, 그날은 가장 글이 어색하다는 것이다.

글에 힘 빼기와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며 남편은 나에게 글쓰는 부담감을 다소 완화시켜주었다.


나는 다시 글을 썼다.

앞에 읽을 수 있는 <사랑은 야채 같은 것>이라는 글이다.

글을 쓰는 동안 눈물이 그렁거렸다. 새삼 엄마와의 추억이 떠오르면서 어릴적 엄마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성인이 된 지금에서야 엄마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글에 속도가 붙었다. 쉬지 않고 글을 마칠때까지 이어나갔다. 정말 힘을 빼고 하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하다보니 진솔하게 쓰여졌던 것 같다.


이거구나!

글이 주는 매력을 그날 처음 느꼈다.


글은 순수한 표현의 도구같다. 어느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오늘 나의 글은 솔직했는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길을 잃지 않고 전달했는가?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듯 쉽게 썼는가?

세상에 나오는 글은 오직 스스로 갈고 닦은 내면과 수양을 통해서만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그런면에서 남편은 내가 글쓰는 동안 이정표 역할을 충실히 이행 해주었다.


남편에겐 있었고 나에겐 없었던 건

바로 글쓰는 스킬이 아닌 글에 대한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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