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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랑쥐 Jul 03. 2021

[남편의글]잠탱이 남편과 아침형 아내의 전쟁 같은 사랑

The Healing Moment

intro

The Healing Moment


무슨 일 있어?

" 나 요즘 스트레스를 받나 봐, 기분도 계속 다운되고 무기력해."

"그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좋은 방법 없을까?"


이건 나만의 방법이긴 한데


한번 해볼래?




잠탱이 남편과 아침형 아내의 전쟁 같은 사랑



여유로운 일요일 오후, 침대에 누워서 멍 때리고 있는데 아내가 나를 부른다.


"우리 재밌는 영화 한 편 볼까~?"


"아니."


아내는 쉴 때 자꾸 나에게 뭘 하자고 한다. 하지만 난 잠이 자고 싶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말한다. 


"잠탱아! 잠 좀 그만 자! 잠은 죽어서나 자라구."


내 취미는 잠자기다. 아니 잠에 집착한다. 기분 나쁜 일이 있을 때, 화가 날 때, 힘든 일을 마치고 나서, 한숨 자면 복잡했던 마음이 별 게 아니게 된다. '왜 화가 났었지?' 모래사장에 그린 낙서가 파도에 지워지듯 사라진다.


나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을 꼽으라면 퇴근 하고 저녁을 먹은 뒤 침대 위에서 스르륵 저녁잠에 들 때다.

 아내는 "밥 먹고 바로 자면 건강에 안 좋다"며 말리지만 난 포기할 수 없다. 


이렇게 30분에서 1시간을 자고 일어나면 하루의 2막이 시작된다. 일 하면서 받았던 스트레스는 사라지고 마치 방금 일어난 아침처럼 개운하다. 그러면 독서도 하고, 글도 쓰고, 인터넷 서핑도 한다. 남들보다 0.5일을 뽀너스로 더 사는 기분이다.


아침형 인간인 아내는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 했다. "동네 한 바퀴 산책하자"는 제안을 거절하면 나를 게으름보 보듯 쳐다본다.


잠탱이 남편과 아침부터 요란한 아내의 전쟁같은 하루



나에게도 변명의 논리가 있다. 기자인 나는 눈 뜨면서부터 끊임없이 수많은 말과 글과 영상을 접한다. 쉴 때 만큼은 오감을 잠시 '로그오프' 하고 싶다.


잠은 추진력과 창의력을 얻는 원천이기도 하다. 어떤 과제를 맡았을 때 나는 일단 충분한 잠부터 잔다. 흐릿한 정신으로 오래 붙잡고 있는 것보다 푹 자고 일어나 맑은 정신에 커피 한 잔 주입하고 시작하면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결과물이 금세 나오곤 한다.


이런 내 변명이 먹혔나보다. 

요즘 아내가 내 잠을 보장해주고 있다. 내가 밥 먹고 잠 들어 있으면 불도 꺼주고, 문도 닫아주고, 암막 커튼도 쳐준다. 깨서 거실에 나가보면 아내는 내가 깊게 못 잘까봐 소리를 죽이고 혼자 TV를 보고 있다. 그럼 나도 고맙고 미안해서 "공원 한 바퀴 돌고올까?" 묻게 된다.


3일 연속 일 때문에 술을 먹고 들어온 뒤 맞는 토요일 아침. 아내가 또 물어본다. "교외에 있는 카페에 가서 [남편의글] 한 편 쓰는 거 어때?" 일주일째 쓰겠다고 말만 하고 술에 취해 잠든 나에게 보내는 압박이다. 안 쓰면 가정의 평화가 깨질 거 같다. "좋..좋지!" 파주의 한 카페에 앉아 숙취와 두통을 이겨가며 간신히 글 한 편을 썼다. 


퇴고고 뭐고 없다. 

이제 들어가서 잠 한숨 때려야겠다. Z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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