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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추 Jun 25. 2024

프놈펜 여행 2일 차, 소매치기를 당하다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필리핀 여행기(3)

 꺼삑 섬 북단에서 메콩 강 구경을 실컷 하고 난 후 강변을 따라 올라가 보았다. 오른쪽은 톤레삽 강, 왼쪽은 프놈펜 왕궁이 있는 구시가지 사이로 강변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었는데, 걷다 보니 새들로 가득 찬 새장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과 꽃장수들, 그리고 엄청난 수의 비둘기가 모여있는 곳이 보여 구경도 할 겸 벤치에 앉아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활기찬 사람들 뒤편으로 느긋이 흐르는 톤레삽 강을 바라보며 쉬고 있자니 긴장도 풀리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람들이 많은 것 같으면서도 한적하고, 생기 있으면서 조용하기도 한 프놈펜이란 도시가 점점 마음에 들고 있었다.

새장 속 이름 모를 새와 새장 밖 비둘기
아이들이 빈 쓰레기통을 엎고 그위에 올라가 놀고 있다. 어린아이 답게 무척이나 해맑아 보였다.
비둘기떼와 톤레삽 강



 공원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보니 숙소에서 나온 뒤 다섯 시간 정도가 흘러 있었다. 배도 고프고 노곤했기 때문에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고 숙소에서 잠깐 쉬기로 했다. 오전에 숙소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지역 주민들로 붐비는 식당 한 곳을 보고 다음에 방문하려고 구글맵에 저장해 놨었는데 그곳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식당에 도착하니 오후 세 시라는 어중간한 시간이었음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양념된 구운 돼지고기가 올라간 밥과 패션후르츠 주스를 주문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음식이 나왔다. 돼지고기 덮밥은 고기 양념이 살짝 달긴 했지만 매운 고추와 칠리소스를 곁들여 먹으니 흠잡을 데 없었고, 새콤달콤한 패션후르츠 주스는 말해 뭐 할까. 총 3달러로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숙소에서 마실 생수를 하나 사들고 호스텔에 도착했다.(식당 구글 맵 링크: https://maps.app.goo.gl/3bAJvEqW9QHS3fTE9)

외관만 봐도 맛집임을 알 수 있었다.
BBQ 돼지고기 덮밥 2달러 / 패션후르츠 주스 1달러 / 차 무료 제공



 총 3박을 예약한 Onederz Phnom Penh 호스텔에는 루프탑 수영장이 있었다. 수영장 크기는 넓지 않았고 수영장 바로 양옆으로 선베드도 늘어져 있어 거기서 휴식을 취할 수도 있었다. 선베드에 누워 한국에서 가져온 전자책으로 독서도 하고 멍도 때리며 쉬다가 수영장에 들어갈까 말까 수십 번의 고민을 했다. 스무 개 정도 되는 선베드가 투숙객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평소 남의 시선을 적지 않게 의식하는 나였기에 쉽사리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왕 올라온 거 눈 딱 감고 들어가 보자 싶어 상의를 탈의하고 입수했다. 물속에 머리를 담그자마자 든 생각은 물이 너무 독하다였다. 지금까지 이렇게도 독한 수영장 물은 처음이었다. 입 속이 뭔지 모를 화학약품 맛으로 가득하고 눈이 너무 따가워 몇 번 왕복하지도 못하고 바로 나와서 샤워를 하고 방으로 갔다.


 6인실 방 안에서 내게 배정해 준 2층 침대에 앉아, 오늘 인출한 달러와 경비내역을 정리하려고 크로스백에서 지폐가 든 종이봉투를 꺼냈다. 한국에서 급하게 환전해 온 200달러와 오늘 캄보디아 ATM에서 인출한 300 달러에 혹시 몰라 뽑아온 5만 원 권 네 장에서, 이틀 동안 지출한 70달러를 빼면 430달러와 20만 원이 있어야 하는데 무슨 일인지 종이봉투 안에는 140달러와 15만 원 밖에 없었다. 290달러와 5만 원이 사라진 것이다.


 너무나도 어리둥절한 나머지 비어 있는 종이봉투 속을 몇 번이나 들여다보았지만 비어있는 봉투였기에 당연히 아무것도 없었다. 불현듯 몇 시간 전에 잠깐 가방을 확인했을 때 현금과 여권이 들어있는 앞쪽 주머니 지퍼가 열려 있는 걸 발견하고, 분명 사용하고 잠가뒀었는데 왜 열려있을까 의아해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걸 확인한 시간이나 장소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식사할 때를 제외하곤 항상 가방을 어깨에 메고 다녔고, 식사 중에도 내 눈앞에 계속 두고 있었으며 5만 원 권이 들어있는 종이봉투는 하루종일 건들지도 않았기 때문에 내가 흘렸을 가능성은 존재할 수가 없었다. 사라진 지폐도 오늘 인출한 금액 중 10달러 권 초과 종류만 사라져 있어서 누가 의도적으로 빼갔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마침내 말로만 듣던 소매치기를 내가 당한 것인가? 도대체 누가, 언제, 어떻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짚이는 것도 의심 가는 것도 생각해 낼 수 없었다.

문제의 그 가방



 훔쳐간 사람도 미웠지만 프놈펜이 소매치기가 빈번히 일어나는 곳이라는 사실을 여행 전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앞으로 메는 가방을 준비하지 않고, 큰돈을 지니고 다녔으며, 그것도 지갑이 아닌 종이봉투에 대충 넣고 다닌 나의 안일한 행동이 더 밉고 한심스러웠다. 동시에 지금까지 가졌던 프놈펜에 대한 좋은 생각과 이번 여행에 대한 의욕이 싹 사라졌다. 이게 진짜 현실인가 싶어 다시 가방과 종이봉투 속을 확인해 보았지만 실제 현실이었다. 정말 내가 메고 있는 가방을 뒤진 걸까? 왜 여권이나 지갑, 핸드폰은 안 건드린 걸까? 왜 5만 원 권 네 장 중에 한 장만 가져간 걸까? 불쌍한 여행객에게 자비를 베풀어 준 건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침대 위에서 한 시간 정도를 멍하니 있다가 뭐라도 하자 싶어 노트북을 들고 호스텔 1층 로비로 내려갔다. 그리곤 오늘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기록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글을 쓰다가, 소매치기당한 금액이 불쑥 떠올라 속이 쓰리다가, 다시 쓰다가를 반복하다 보니 내게 일어난 현실을 받아들이고 마음도 진정되어 갔다. 언제, 어디서 잃어버렸는지도 범인이 누구인지도 모르니 경찰에 신고할 수도 다시 되찾을 수 있는 방법도 없을 것 같았다. 항상 가입하던 여행자보험도 이번엔 깜빡 잊고 하지 못했다. 여행 초반에 큰 액땜 했다고 생각하기로 하고, 쓰고 있던 글을 적당히 마무리 짓고는 곧바로 지금 묵고 있는 호스텔 예약이 끝나는 날짜로 앙코르 와트가 있는 씨엠립행 버스를 예매하고 잠에 들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아마추어 여행기입니다. 부정확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유의해서 재미로 읽어주시고, 궁금한 내용은 댓글 남겨주시면 답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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