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필리핀 여행기(9)
3층으로 올라갈 수 있게 만들어진 총 열두 개의 층계 중 방문객들을 위해 개방된 층계는 한 곳뿐이었고, 북동쪽에 위치해 있었다. 층계 위에는 난간이 있는 나무 계단이 덧씌워져 있었는데, 원래 층계의 경사가 너무 급해 근래에 관광객들을 위해 공사한 것이라고 한다. 공사 이전엔 두 발만 이용해 올라가기에는 너무 위험해 두 손도 함께 짚고 올라가야 했다나. 궁금증에 구글에 검색해 보니 관광객들이 네 발로 올라가는 사진을 바로 찾을 수 있었다. 당시 왕이나 극소수의 성직자들만 올라갈 수 있었던 성스러운 장소니만큼 설계 때부터 의도한 것이라고 하는데, 공사 이전의 네 발로 올라가는 느낌은 어떨지 궁금했다.
나무 계단을 올라 드디어 앙코르 와트의 마지막 장소에 다다랐다. 앙코르 와트 중앙성소의 3층은 위에서 바라봤을 때 사각형 모양의 회랑이 42m 높이의 중앙성소탑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로, 회랑의 모서리마다 고푸라가 하나씩 얹어져 있었다. 일출시각에서 두 시간이 지나있기도 했고, 3층까지 올라오는 거리나 경사도 만만치 않아서인지 3층 방문객은 열 명 남짓 되어 보였다.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하늘 높이 솟구친 중앙성소탑을 감상하고 있자니 저 높은 걸 어떻게 쌓았을지, 모양이나 장식은 어쩜 저리 화려한지, 저기서 제사는 어떻게 드렸을지 등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런 생각을 집에서 인터넷을 보면서 하는 게 아니라, 바로 이곳에서 바로 저걸 보며 하고 있다는 사실이 감개무량하기도 했다.
3층에서 볼 건 다 봤지만 벌써 내려가기엔 아쉬워서, 3층 회랑을 한 바퀴 더 돌며 여러 방향에서 중앙성소탑을 구경해 보았다. 사실 어느 방향에서나 똑같아 보이긴 했지만 휴대폰 카메라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탑 구경이 살짝 지겨워질 때는 창문이나 열두 개의 층계 위에 뚫려있는 공간으로 회랑 바깥을 바라보기도 했다. 정서쪽 층계 위에서는 서쪽 정문과 석조 보도, 1층 및 2층 회랑의 지붕까지 여기까지 거쳐왔던 길이 한눈에 보였다. 그 길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오늘 봤던 광경, 느꼈던 감정, 떠올랐던 생각들이 되살아났다. 오늘 제대로 못 본 앙코르 와트에서의 일출은 씨엠립 떠나기 전에 꼭 다시 와서 재도전해보기로 했다.
앙코르 와트 서쪽 출입문까지는 일부러 빙빙 돌며 되돌아갔다. 놓쳤던 풍경도 다시 가서 보고, 못 찍었던 사진도 실컷 찍다 보니 또 한 시간이 흘러있었다. 마음 같아선 하루종일 있고 싶었지만, 어제 저녁부터 공복에 체력도 방전 직전이라 이제는 숙소에 돌아가 휴식을 취해야 할 것 같았다.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목표였던 앙코르 와트 방문은 4시간 20분 만에 마무리되었다.
앙코르 와트를 방문한 날짜에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각까지 3일이 흘렀다. 그중 이틀은 다른 앙코르 유적지를 돌아다녔고, 나머지 하루는 밀렸던 여행기도 쓰고 이것저것 하면서 쉬었다. 그 사이 여행기 쓰기가 점점 벅차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씨엡립에 와서 여러 앙코르 유적들을 돌아보고 있긴 한데, 본 유적들에 대해 쓰자니 그것에 대한 전문 지식도 하나 없고, 다른 자료를 참고하더라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할 능력도 부족한 것 같다. 계속 이런 방식으로 쓰는 게 맞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 이곳 모기 때문에 글 쓰는 데 집중을 할 수 없다. 체력적인 부분이나 동남아의 무더위, 호스텔에서의 생활 같은 건 그럭저럭 견딜만 한데, 모기한테 물린 곳들이 하루종일 미친 듯이 간지럽다. 처음엔 작은 크기에 방심했는데 간지러움의 정도는 크기에 비례하지 않는 것 같다. 이 녀석들은 긴바지를 입어도 물고, 모기기피제를 뿌려도 문다. 호스텔 1층 로비는 사방이 다 뚫려있어 모기 식당이나 다름없고, 바깥에 실내 카페를 찾아가도 반드시 모기가 있다. 어디서든 최대한 빨리 쓰고 안전한 곳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조급해져서, 안 그래도 모자란 글 실력이 더 형편없어진 느낌이다. 여러모로 고민이 많은 시점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아마추어 여행기입니다. 부정확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유의해서 재미로 읽어주시고, 궁금한 내용은 댓글 남겨주시면 답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