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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추 Jul 06. 2024

앙코르 패스 2일 차, 앙코르 톰 방문(2)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필리핀 여행기(12)

 앙코르 톰의 남문에서 유적지 중앙에 있는 바이욘 사원까지 대략 1.5km 정도의 도로가 일직선으로 나있었다. 그 길을 따라 20분 가까이 걸으며 깨달은 것은, 이곳을 걷고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도로 주위로는 숲이 우거져 있었기에 딱히 구경하며 걸을 만한 곳도 아니어서 대부분은 투어 차량이나 툭툭, 오토바이로 다음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듯했다. 길이 평평하고 그늘져 있어서 그다지 많은 체력을 소모하지 않은 건 다행이었지만 혼자 미련한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바이욘 사원까지 1km 남았다는 표석 옆으로 툭툭과 승용차가 시원하게 달리고 있다.
앙코르 톰 안의 어느 연못에서 지역 주민들이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잡고 있다.



 도로의 막바지로 갈수록 작고 희미하게 보이던 바이욘 사원이 점점 뚜렷하게 그 형체를 드러냈다. 그것의 온전한 모습이 보일 정도의 거리까지 다가갔을 땐 눈앞에 펼쳐진 광경의 경이로움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두 눈으로만 담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일까, 나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진 채 휴대폰을 카메라를 켜 연거푸 셔터 버튼을 터치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날 처음 앙코르 와트를 봤을 때보다 바이욘 사원을 볼 때 훨씬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앙코르 와트보다 전체적인 사원의 규모는 작아 보여도, 당장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수의 석탑들이 복잡하지만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사원 위로 솟아올라 있었고, 그 탑마다 거대한 얼굴 조각상들이 네 방향 모두 달려있었다. 아직 거리가 조금 있어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그 얼굴들 또한 남문의 지붕에 있던 그들처럼 오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듯했다.

무성한 나무에 가려져 사원의 완전한 모습을 볼 순 없었지만 이때부터 흥분되기 시작했다.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으론 온전히 표현되지 않는 바이욘 사원의 복잡미묘한 아름다움



 얼른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에 곧장 정면으로 걸아가 사원 내부로 진입하는 입구로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본디 이 사원의 정면은 동쪽을 향해있지만, 나는 남쪽 정문에서 걸어왔기 때문에 처음 본 바이욘 사원의 모습도 사원의 남쪽면이었고, 따라서 관람도 남쪽 출입구에서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사원 내부로 들어오니 멀리서 전체를 바라봤을 때보다 더 사원의 구조가 복잡해 보였다. 앙코르 와트 방문 때와는 달리 미리 사원에 대해 자세히 공부하고 온 건 아니었기에 일단 발걸음이 닿을 수 있는 곳은 다 가볼 심산으로, 몸으로 부딪혀가며 구조를 익혀보기로 했다.

석조 기둥만 남은 바이욘 사원의 남쪽 출입 통로
건설 당시에는 불교 사원이었지만, 이후 힌두신들을 모시는 곳으로 성격이 바뀐 적이 있었다고 한다. 한 방문객이 몇 개 남지 않은 사원의 불상 중 하나에게 짧은 기도를 올리고 있다.



 전문성이라곤 존재하지 않는 자체 조사 결과, 바이욘 사원의 전체적인 구조는 앙코르 와트와 비슷하게 위에서 봤을 때 사각형 모양의 1·2층 회랑과 그 회랑 사이사이를 잇는 수많은 통로들, 그리고 사원 정가운데 위치한 높고 거대한 중앙성소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앙코르 와트와 달랐던 것은 바이욘 사원이 회랑 사이의 간격이 훨씬 좁고, 사원의 규모도 보다 아담하며, 1·2층 회랑의 지붕에 훨씬 많은 수의 석탑이 세워져 있다는 것 정도. 거기다 미소 짓고 있는 수많은 석조 관음불의 얼굴상들도. 이렇게 사원 구조를 탐방하며 뚫려있는 문과 통로란 곳은 다 쏘다니면서 봤던 것 중 기억에 남는 것들은 기둥 곳곳에 새겨져 있는 춤추는 압사라 부조, 벽면과 문틀 주변에 조각된 제각기 다른 정교한 장식들, 회랑 사이 또는 개방된 천장 위로 비스듬히 보이는 석조 탑들의 지붕과 석조 얼굴들, 그리고 복원하다 만 듯 공터 한 곳에 무더기로 쌓여있는 돌조각 더미들이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춤추는 압사라 부조가 기둥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정성스럽게 조각된 장식과 부조들
아래에서 비스듬히 올려다 보이는 석조 관음상의 얼굴들
복원하다 만 듯한 돌무더기들이 사원 곳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요리조리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사원 한 바퀴를 돌았는데, 사원의 중앙에 있는 3층 중앙성소탑으로 향하는 출입구를 찾을 수 없었다. 출입구로 추정되는 곳들이 보이긴 했지만 죄다 진입금지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혹시 못 보고 지나친 건가 싶어서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몇 년 전 바이욘 사원의 재복원 공사를 시작하면서 공사 완료 전까지 3층 구역을 폐쇄하고 있다는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3층 중앙성소탑에 올라가 크메르의 미소라 불리는 석조 관음상들의 인자하고 자비로운 미소를 가까이서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많이 아쉬웠지만, 언젠가 복원이 완료되면 그 미소를 보러 다시 찾아오리라 다짐했다.

3층 중앙성소텁 대신 지상에서 찍은 바이욘 사원의 석탑과 석조 관음살들



 한창 둘러보는 도중에 선하게 생긴 캄보디아 청년이 본인이 사진 한 컷 찍어주고 싶다고 하기에 나 홀로 여행자에게 베풀어주는 현지인의 호의로 받아들여 선뜻 폰을 내밀었다가 알고 보니 돈 받고 찍어주는 거여서 1달러를 줬던 일, 사원 내부를 다 둘러보고 지칠 대로 지쳐 1층 회랑을 지나 사원 바깥으로 나오던 중 바로 그 근처에 있던 가이드 호객꾼 한 명이 지금 네 옆에 유명한 부조 있는데 봤냐고 알려줘서 얼떨결에 지나칠 뻔한 1층 회랑의 부조만 감상하고 가이드 호객은 거절한 일, 어떤 가이드가 본인이 인솔하는 단체 관광객들에게 본인이 알고 있는 기가 막힌 바이욘 사원 조망 장소가 있는데 데려가줄 테니 따라오라고 하는 말을 지나가다 우연히 듣고 눈치 못 채게 조용히 따라가서 나도 그들 뒤에서 기가 막힌 풍경 감상한 일 등이 있었다.

못보고 지나칠 뻔한 1층 회랑 바깥의 부조들은 당시 생활상을 자세히 담고 있어, 크메르 왕국 시대의 역사를 연구할 때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고 한다.
가이드와 단체 관광객들을 조용히 따라가 알게된 사원 조망 장소, 바이욘 사원의 북동쪽에 위치해 있었다.



 그렇게 얼추 바이욘 사원을 다 둘러보고 시계를 보니 어느새 정오에 가까워진 시각이었고, 툭툭에서 박세이 참크롱 앞에 내렸던 시각으로부터 벌써 두 시간이 넘게 지나 있었다. 이날은 유독 아침부터 햇볕이 쨍쨍했는데, 이미 입고 있던 상의는 누가 물 한 바가지 뿌린 것 마냥 땀으로 젖어 축축해져 있었다. 그 더위와 행군을 방불케 한 걷기에 지칠 대로 지쳐, 챙겨 온 1.5L 생수를 아무리 마셔대도 갈증이 가시지 않았다. 계획했던 앙코르 톰 탐방 동선에서 아직 보지 못한 장소가 7곳 남아있었기 때문에 이 상태로 다 둘러볼 수 있을지 걱정되긴 했지만, 일단 그늘에 앉아서 조금 휴식을 취한 후 바로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아마추어 여행기입니다. 부정확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유의해서 재미로 읽어주시고, 궁금한 내용은 댓글 남겨주시면 답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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