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작정 떠나는 세계여행(1)
2025년 5월 12일 밤 11시, 인도네시아 발리에 도착했다. 준비 과정에 비해 실제 입국 과정은 간단했다. 출발 2주 전 인도네시아에 60일 동안 체류 가능한 관광목적 전자 비자(C1)를 미리 발급받아놨고, 전자 세관 신고서와 건강 신고서도 출국 전 공항에서 준비해 두었다. 인도네시아의 다른 지역과 달리 발리는 따로 관광 기여금도 받고 있기 때문에 그 금액도 미리 온라인으로 지불하였다. 별다른 대기 시간 없이 입국 심사대를 통과하고, 건강 신고서와 관광 기여금 확인 절차는 생략된 채 나의 첫 인도네시아 입국은 마무리되었다. 여행 첫날이라 그런지 유난히 무겁게 느껴지는 배낭을 찾아 메고 공항 출구를 찾아 나섰다.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공항 밖은 손님을 픽업하러 온 숙소 및 여행사 직원들과 호객 중인 택시 기사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니 그제서야 여행 온 것에 대해 실감이 났다. 도착시간과 예산을 고려하여 공항에서 도보로 이동 가능한 거리에 있는 저렴한 호스텔 하나를 예약해 두었기에 그쪽 방면의 길을 찾고 있던 와중에, 택시 기사 한 명이 길거리에 개가 많아 가까운 거리라도 걸어가기에 위험할 거라는 경고를 했다. 조언인지 상술인지 분간도 힘들고 겁도 조금 났지만, 금액 흥정하기도 귀찮고 경비 지출도 줄이고 싶었기에 대충 지도를 보고 걸음을 옮겼다.
신들의 섬이라고 불리우는 발리. 흔히 발리 하면 떠오르는 것들도 아름답고 드넓은 해변, 논과 정글이 어우러진 이색적인 풍경, 섬세하고 화려한 힌두 사원의 건축물과 갖가지 예술품들 등 긍정적인 이미지들이다. 하지만 모든 것엔 양면 또는 다면이 있다는 진리는 불변인 듯하다. 공항에서 나와 숙소 방향으로 걸어가며 본 발리의 풍경은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여행하며 봤던 그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좁고 구불구불하게 난 길들이 여기저기 복잡하게 얽혀있고, 그 길 위를 오토바이가 활보한다. 인도의 개념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그 길을 두 발로 걷는 사람은 나를 포함한 몇몇 여행객뿐. 걷다 보면 한 번씩 코를 찌르는 오물 냄새가 올라오고 여기저기 쓰레기 더미도 보인다. 이런 것엔 이젠 익숙하다 자부도 했었건만, 다시 겪으니 역시나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다.
다행히도 개는 안 만났지만 밤길에다 초행길, 그리고 데이터 없는 지도를 보고 길을 찾느라 10분 거리를 30분 넘게 헤맸다. 어두워 잘 보이지도 않는 밤거리를 배회하다 보니 아까 그냥 택시 탈 걸 괜히 청승맞게 걸어가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입고 온 청바지가 답답하고 거추장스러웠고, 앞으로 입을 일도 없을 텐데 만만찮은 짐이 되겠다 싶었다.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배낭도 빨리 벗어던지고 싶었다.
지칠 대로 지쳐 호스텔에 도착했을 땐 이미 12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직원의 친절한 응대 속에 하루치 숙박비를 결제하고, 숙소 안내를 받으며 직접 확인한 숙소 상태는 후기에서 봤던 것보다 더 열악했다. 방바닥과 침대 침구류에는 먼지가 가득했고, 욕실과 화장실도 지저분하고 냄새 또한 불쾌했다. 땀범벅이 되어 간절했던 샤워 생각이 싹 가실 정도로. 얼마간의 진지한 고민 끝에 쾌적한 수면을 위해 샤워를 하고 자기로 했다. 이전 여행들에서도 많이 느꼈던 거지만, 인간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고 뭐든지 항상 처음이 어려운 것 같다. 처음 들어설 땐 여기서 어떻게 지내지 싶은 숙소들에서도 막상 지내다 보면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곤 했었다. 이 욕실도 써보니 또 쓸만했다. 샤워를 끝낸 뒤에도 남아있는 약간의 찝찝함은 어쩔 수 없었지만.
간단히 짐 정리를 마치고 마침내 배정받은 2층 침대로 올라왔다. 한국에서 오전 10시부터 움직였으니, 16시간의 여정이 드디어 끝난 것이다. 여행 첫날의 설렘을 느낄 새도 없이, 무사히 이 침대까지 당도했다는 안도감과 하루간의 긴장에서 비롯된 피로감이 뒤섞여 몰려왔다. 그리고 여행 기간 내내 계속하게 될 생각들, 몇 시간 뒤면 옮길 새 숙소는 어떨지, 내일은 또 어떻게 보낼지 등을 고민하다가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