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작정 떠나는 세계여행(4)
레기안 거리는 꾸따 및 레기안 해변과 약 5-600m 간격을 두고 거의 평행하게 일직선으로 쭉 뻗어있어서 거리에서 해변으로의 접근성이 좋은 편이었다. 해변으로 이어진 가장 가까운 골목 어귀로 진입하여 얼마간 걷다 보니 멀찍이 독특한 모양의 건축물이 눈에 들어왔다. 날카로운 삼각형 두 개가 좌우대칭으로 마주 서 있고, 그 사이는 뻥 뚫려있는 모습이었는데, 대칭성과 특유의 구조에서 오는 묘한 건축미가 눈길을 끌었다.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분위기, 마치 어느 사원의 탑처럼 보이기도 했다. 위치상 해변 출입구 같아 보이긴 하는데, 저 사이를 함부로 통과해도 되는 건지 미심쩍었다. 잠시 멈춰서 구경하는 척 짐짓 분위기를 살펴본다. 몇몇 사람들이 자유롭게 지나다니는 걸 확인했지만 여전히 망설여졌다. 이 건축물이 발리섬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전통 석문인 짠디 븐따르(Candi Bentar)라는 것은 한참 뒤에나 알게 된 사실이다.
조심스럽게 삼각형 사이를 통과했는데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발리의 바다와 마주하였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비좁고 붐비는 꾸따 거리의 모습만 보다가, 탁 트인 바다와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보니 이제서야 정말 발리에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발리의 파도에 대한 얘기는 워낙 유명하기도 하고 익히 들어왔던 터라 어느 정도 예상 범위 안에 있었다. 하지만 해변의 크기는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모래사장이 양옆으로 드넓게 펼쳐져 있어 눈에 담으려고 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꽤 오랜 기간을 부산에 살면서 광안리와 해운대 모래사장도 넓다 생각하고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그게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해변의 크기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니 다른 것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기 전엔 해변이 방문객들로 북적일 줄 알았는데, 누군가 계획적으로 배치라도 한 듯 넓은 해변 위에 사람들이 적당히, 또 알맞게 퍼져 있었다. 바다의 수평선을 배경으로 파라솔 그늘 아래서 음료와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적도 부근의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선탠 하는 사람들, 맨발로 시원 축축한 물과 모래의 감촉을 느끼며 해변을 거니는 사람들, 발리 바다가 끊임없이 보내주는 질 좋은 파도 위에서 마음껏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위로 하늘을 사이좋게 반반 나눠 갖은 푸르름과 역동하는 구름이 모든 것을 덮어주고 있었다. 이 광경을 찬찬히 보고 있자니 느긋함과 뭔지 모를 해방감이 느껴졌다.
레기안 거리를 따라 올라왔던 만큼 꾸따 해변을 따라 내려가 보았다. 2km가 약간 넘는 거리. 걸으며 감상하고, 잠시 선채로 또 바라보고, 그러다 멍도 때려보고, 휴대폰으로 사진도 남기다 보니 어느새 해변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골라도 하루 중 가장 뜨거운 시간대를 골라 세 시간여를 걸었더니 조금씩 피곤함이 몰려오고 있었다. 더 구경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따뜻한 샤워와 시원한 에어컨 바람, 그리고 뽀송뽀송한 침대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컸기에 오늘은 이쯤 하고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충분히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들었던 특별한 여행에 대한 강박도, 유심괴 나시 고렝의 가격에 대한 생각도 모두 꾸따의 바다에 밀려가 버린 듯 홀가분한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