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작정 떠나는 세계여행(7)
꾸따를 떠나는 날이 왔다. 발리에 도착한 지 닷새째가 되는 날이었다. 꾸따에서 지내는 동안 단골 식당도 생겼고, 동네 풍경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초보자가 타기에 좋다는 꾸따의 파도 위에서 서핑도 연습해 보고, 힘차게 바다를 누비는 서퍼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했다. 날씨와 시간에 따라 새로운 풍경을 보여주는 꾸따의 바다와, 그 속에서 도전과 성취 그리고 자유를 누리는 서퍼들. 여러 경험들 중에서도 해 질 무렵의 꾸따 해변을 거닐며 피부에 닿은 그 정경과 분위기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름다운 바다와 화려한 여행자 거리의 활기 이면에는 불편하고 어두운 모습도 있었다. 바다에서 밀려온 건지 사람들이 직접 버린 건지 해변 곳곳에서 보이던 플라스틱 쓰레기, 같은 공장에서 찍어낸 듯 특색 없는 기념품들로 가득 찬 거리, 어느 골목에서나 날 따라다니던 오토바이의 소음과 매연. 그리고 그 거리와 골목 바닥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는 몇몇 현지 사람들.
사실 이렇게까지 빨리 꾸따를 떠날 생각은 없었다. 애초 계획은 꾸따를 거점 삼아 발리섬 이곳저곳을 다니는 것이었다. 호스텔에서 임시로 며칠 지내는 동안, 여행 전 미리 찾아두었던 저렴한 숙소를 렌트하여 거기서 발리 한 달 살기를 해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렌트하려 그곳을 방문했을 때 남은 방이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허름하고 작은 숙소라 안이하게 여겼던 게 문제였다. 가장 중요한 주거 문제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니 불안함과 조급함이 몰려왔다.
급하게 주변에 있는 숙소 몇 군데를 발품 팔아 알아보았지만 마땅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방법을 바꿔 구글 지도와 여러 숙박 중개 플랫폼을 이용해 보기로 했다. 한참을 찾아보다가 에어비앤비에서 괜찮은 가격과 후기의 숙소 한 곳을 발견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숙소 위치가 꾸따가 아닌 우붓(Ubod)이라는 것. 꾸따에서 북쪽으로 30km의 거리에 있지만, 이곳의 도로 사정상 차로 약 한 시간 반 정도가 걸리는 곳. 바다에 접한 꾸따와 달리 섬 내륙에 있어 정글이 우거지고 논밭이 도처에 깔려있다는 우붓.
아직 스미냑도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고 짱구(Canggu)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했다. 발리 해변 하면 빠질 수 없는 유명한 비치클럽들은 물론이고, 흔한 파라솔도 한 번 경험해 보지 못했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발리 해변과 이별해야 하다니. 이런저런 고민 속에 결국 우붓으로의 이동을 결정하지 못했다. 찾아둔 숙소는 일단 저장 목록에 넣어두고 하루만 더 지켜보기로 했다. 하지만 또다시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잠들기 전 숙소 정보를 다시 확인하려 에어비앤비에 접속을 했는데 저장해 둔 숙소가 예약 불가 상태로 바뀌어 있었다. 플랫폼 오류인가 싶어 몇 번을 다시 접속하고 확인해 봤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그렇다. 결정을 미루는 사이에 누군가가 예약을 해버린 것이다. 불과 몇 시간 사이에, 그것도 하필 내가 점찍어둔 것을 낚아채버리다니. 굳이 잘못을 찾자면 나에게 있었지만 기가 막히고 억울하여 헛웃음이 나왔다. 혹시 몰라 호스텔 숙박 연장은 안 해두었는데, 이미 밤은 늦었고 눈앞이 깜깜해졌다.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에이비앤비를 뒤적거렸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던가. 잘 찾아보니 아까 그 숙소와 같은 건물에 있지만 크기와 옵션만 다른 방이 있었다. 비록 후기는 더 별로고 6만 원가량 비싸긴 했지만, 아까와 같은 전철을 또 밟게 될까 봐 곧바로 예약을 했다.
그렇게 꾸따와 예기치 않은 작별을 하고, 우붓에서의 한 달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