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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킷랩 Aug 22. 2018

소비의 주체와 소모의 객체

사물들, 조르주 페렉


1.
안녕하세요, 버킷랩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입니다.



2.
이 책은 버킷랩에서 운영하는 독서모임 한주한권에서 스물다섯번째로 함께 읽는 책입니다. 이로써 총 7,249페이지째 함께 읽게 되었네요. 저는 세계사 버젼으로 읽었는데, 마땅한 사진을 찾지 못해서 펭귄클래식 버젼의 ‘사물들’ 표지로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3.
조금은 낯선 ‘조르주 페렉’이라는 작가는 그의 실험정신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자신의 글을 작물로, 작가인 자신은 농부로 비유하며 매 작품마다 각기 다른 씨앗을 뿌려 독창적인 글을 쓴 것으로 유명한대요. 알파벳 ‘E’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쓴 작품 ‘실종’이나 이 후 알파벳 모음 중 오로지 ‘E’만을 사용해서 쓴 작품 ‘돌아오는 사람들’과 같은 시리즈에서 그의 괴짜같은 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4.
이번 책 ‘사물들’은 페렉의 데뷔작입니다. 1960년대 자본주의에서 소비의 주체가 되는 것과 소모의 객체가 되는 것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프랑스 젊은이들의 모습을 대사 하나 없이 그려내면서 프랑스의 주요 문학상의 후보가 되기도 했습니다.

5.
지난 번에 리뷰했던 ‘오스틴 라이트’의 ‘토니와 수잔’도 ‘액자식구성’이라는 특이한 서술 방식을 취하고 있었는데요, 페렉의 ‘사물들’ 역시 특이함에서는 지지 않습니다. 그는 책에서 ‘제롬’과 ‘실비’라는 가상의 인물의 삶을 보여주지만 소설 속에서 ‘제롬’과 ‘실비’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철저히 전지적 작가의 시점으로 그들이 하는 행동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앞으로 갖고 싶은, 그리고 이제는 질려버린 물건들에 대해서 묘사할 뿐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낯선 서술방식과 세부적인 묘사로 책을 읽기가 조금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좋은 물건과 환경을 구매하고 싶은 동시에 자본주의에 나의 시간을 상납하고 싶지 않다는 두 가지 상황에서 갈등하는 주인공 ‘제롬과 실비’에게 공감을 하면서, 어려운 책이었지만 끝까지 읽을 수 있었습니다.

7.
서술자는 제롬과 실비를 ‘프티 부르주아(petit bourgeoisie)’ 라고 부릅니다. 프랑스어로 ‘소시민’을 뜻하며 부르주아계급과 프롤레탈리아계급 사이에 있는 계급을 칭하는 말입니다. 프티 부르주아는 자본가가 아니기에 노동자로써 살아가지만 부르주아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8.
이들은 자신의 노력을 통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꿈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에서 그들이 될 수 있는 부의 마지노선은 평균적으로 기업의 관리자 정도입니다. 나름대로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겠지만 나이가 들면서 필수적으로 지출해야할 것들도 많아집니다. 한정된 재화와 무한한 욕망 사이에서 그들은 ‘행복’이 무엇인지 끝없이 갈등합니다.

높은 연봉을 받고, 중형 자동차를 뽑고, 주말에는 나들이를 갈만한 여유를 가지게 되는 것, 가족들과 깔끔한 집에서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것들을 누리기 위해서 그들은 자신의 시간을 포기하고, 가끔은 자신의 상사의 무례함을 인내하고, 아주 가끔은 인생을 즐기지 못한 지난 날을 회상하며 떠오르는 후회를 떨쳐버리려 고개를 젓기도 합니다.

페렉은 이러한 프티 브루주아의 갈등을 ‘제롬과 실비’의 이십대 후반을 통해 보여줍니다. 자유롭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자유를 상납해야하는 상황에서 제롬과 실비는 아름다운 사물들을 소유하는 것으로 자유를 대체합니다.

9.
자본주의 속의 인간상을 그리고 있지만 악랄한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뉘앙스는 아닙니다. 아름다운 사물들의 향연을 묘사하는 동시에 ‘도달 과정’은 없이 ‘도달 상태’만을 원하는 ‘제롬과 실비’를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인데요.

페렉은 60페이지에서 원하는 것은 있지만 그걸 위해 기다릴 힘은 없는 ‘스무살의 조급증’을 지적하기도 하고

60
스무살의 인생이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인생이 은닉한 행복, 정부와 인생이 허용한 무안한 승리를 알았을 때, 그들은 기다릴 힘이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다른 사람들처럼 열심미 노력해서 도달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오직 도달되어 있는 상태만을 원했다. 그것은 그들 또한 소위 지식인이라는 집단에 속해 있기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95페이지에서는 더 이상 새롭지 않은 파리의 사물들을 뒤로 한 채 튀니지로 향하는 제롬과 실비를 ‘도망치는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95
진짜 출발은 오래전부터 미리 준비되어야 하는 법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아니었다. 그것은 도망과도 같은 것이었다.

10.
조르주 페렉은 ‘사물들’이라는 책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60년대의 이야기’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적극적 노동자와 소극적 노동자 중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그저 ‘어떨 때는 사물의 노예로써, 어떨 때는 원대한 꿈의 주인으로써’ 각자 살아가며, 모두 상처받는 욕망의 세상을 보여주는 책,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이었습니다.

135 장 마르나스의 뤼마니테 중에서
페렉은 우리에게 단지 오늘날의 우리를, 어떤 이들은 사물들의 주인공처럼 노예로서, 또다른 이들은 원대한 꿈의 주인으로서 각자, 모두 살아가는 상처투성이의 욕망의 세상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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