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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킷랩 Aug 30. 2018

각자의 정의와 각자의 진실

순교자, 김은국


1.
안녕하세요, 버킷랩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김은국’의 ‘순교자’입니다.



2.
이 책은 버킷랩에서 운영하는 독서모임 한주한권에서 서른 두번째로 함께 읽는 책입니다. 이로써 총 8,931페이지째 함께 읽게 되었네요.

3.
김은국이라는 작가는 외국의 명성에 비해 모국인 대한민국에서는 다소 유명세가 덜 한 작가입니다. 함흥에서 독립운동가의 자식으로 태어난 그는 일제 패망 이후 1950년대에 목포에 정착하여 서울대 경제학과 학생으로 지내다가, 한국전쟁 발발 이후 육군 장교로 복무하게 됩니다. 이 때 미 육군 소장의 도움을 받아 미국에서 문학을 공부하게 되는데요. 존스홉킨스, 아이오와, 하버드와 같은 유수의 대학에서 문학으로 학위를 받습니다.

4.
그런 그가 하버드에서 석사를 마친 직후 펴낸 작품이 바로 이 책 ‘순교자’입니다. 한국전쟁이라는 시간적 배경과 군인을 주된 등장인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가 현실에서 보고 느꼈던 경험들이 매우 잘 녹아있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재와 출간 타이밍 뿐 아니라 실제 문학적으로도 훌륭함을 인정받았던 작품이었기에 20주 연속 미국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20여개국의 번역 출판되며 상업적으로도 성공하였고, 1967년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오르면서 예술적으로도 크게 성공한 작품입니다.

제 경우에는 이 책을 대학교 2학년 때 교양수업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요. 몇년이 지나 다시 한번 읽어보아도 새로운 생각거리를 주는 매우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인들이 잘 알려지지 않은 좋은 책을 추천해달라고 할 때 빼먹지 않고 나오는 책이기도 하고요.

5.
그러나 이 책이 ‘재미있다’거나 ‘쉽게 읽힌다’라는 평을 듣는 책은 아닌 것 같습니다. 책을 읽어본 지인들의 평을 들어보면 ‘다른 소설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라던지 ‘느낌이 어렵다’라는 이야기들을 꽤 하더라고요. 왜일까요?

대학생 때 읽으며 느꼈던 낯섦과, 지금 읽으며 느끼는 또 다른 새로움을 통해 제 나름대로 생각을 해보자면 이 책이 현대소설에서 흔히 쓰이는 소재, 사건이나 캐릭터의 특수성에 힘으로 읽게 되는 책이 아니라서 어려운 것 같습니다.

6.
이 내용은 제가 순교자 본문만큼 좋아하는 문학동네판 역자인 도정일씨의 해설에서 이야기한 내용과도 비슷한 것 같은데요. 역자인 도정일 교수는 본인이 이 책 순교자를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이 책은 한국소설이 종종 겪는 ‘지방적 한계’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7.
그가 말하는 ‘지방적 한계’란 소설을 뼈대가 되는 인간사의 다양한 사건들이 인간의 삶과 운명에 대한 보편적 주제의 특수한 탐색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문제구성적 빈곤함을 뜻하는데요. 저는 이 문제를 간단하게 ‘소설 속에 희귀한 사건만 있고 거기에 사유의 여지는 없다’는 말로 이해해보았습니다.

8.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을 비교해보면 현대문학은 압도적으로 다양하고, 특이하고, 기이한 형태의 사건과 인물들이 많습니다. 사이코패스, 히키코모리, 기억상실, 경제사기범 이야기 등 재밌고 흥미로운 책이 많죠.

하지만 우리가 뭔가 마음의 공허함을 느끼거나, 책을 통해 사유로의 몰입을 즐기고 싶을 때, 인생에서 뜨근한 어떤 깨달음을 구하고자 할 때 우리는 ‘인문학’이라고 하는 걸 수단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많은 인문학 서적의 가장 큰 뼈대는 클래식 소설들, 고전문학입니다.

9.
예컨대 단테의 신곡이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같은 책들을 생각해볼 수 있겠네요. 

10.
전자인 현대문학이 매우 강력하게 특이한 사건,소재,인물의 힘으로 소설을 이끌고 독자를 결말까지 차에 태우고 가는 느낌이라면, 후자인 고전문학은 그다지 특이할 것이 없는, 시대적 배경으로 말미암아 있을 법한 사건,소재,인물들 속에서 독자에게 사유할 여백을 허락함으로써 결말까지 그들이 스스로 걸어가게 하는 느낌이랄까요.

현대문학은 소재는 특수하지만 그 책을 다 읽고 나서 느끼는 것들을 대게 보편적입니다. 좋았다, 싫었다 혹은 이상했다, 재밌었다같이 대부분 비슷합니다. 하지만 고전문학은 소재는 보편적이지만 그 소재를 맞이하는 독자의 반응은 매우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이 됩니다.

달리 말하자면 현대문학은 매우 특수한 상황에 대해서 대게 보편적인 감상을 하는 반면에, 고전문학은 그다지 특이하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 매우 주관적인 감상을 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11.
소설 순교자가 너무 좋았다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많이 돌아왔는데요, 앞서 말한 고전문학, 클래식소설의 장점을 우리가 함께 읽은 이 책, 순교자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순교자라는 소설은 한국전쟁이라는 시기적 특수성이나, 종교인들의 집단 사살이라는 사건의 특수성에 촛점을 맞춰서 이야기가 진행된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인간들의 군상을 보여줌으로써 하나의 사건을 어떻게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이고 반응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12.
순교자 속의 등장인물들은 열 두 목사의 순교라는 사건을 각자의 정의로 받아들이죠. 그들 한명, 한 명 모두가 ‘선의’를 가지고 순교사건의 진실을 대합니다. 이 대위는 자신이 진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신념을 위해서, 신 목사는 종교인으로써 절망 속에 있는 교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장 대령은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각자의 진실을 만들어갑니다.

그들은 같은 사건을 맞이하고, 모두 선의를 가지고 있고, 모두 정의를 가지고 있지만 그들이 만들어 내는 사건의 진실과, 선의와, 정의의 형태는 모두 다릅니다.

13.
순교자는 이 처럼 한 개의 사건에 대해서 다양한 인간들의 모습과 그 사이에서 내적으로, 또 외적으로 갈등하는 작은 존재들을 보여줌으로써 독자의 머리를 어지럽힙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정의와 선의는 무엇인가요. 당신이라면 어떤 진실을 믿을건가요. 정의는 단 한가지의 모습일까요 등등 사건에서 멀어짐으로써 오히려 그 사건에 대한 다양한 사유를 할 여백을 만들어줍니다.

14.
소설 순교자는 읽기에 조금 낯설고, 어려울 수 있지만 꼭 한 번 읽어보시고 몇 년 후에 또 다시 한번 읽어보시라고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대학생 때 읽으며 제가 몰입한 인물은 ‘박 군’이었지만 이번에 읽으며 몰입한 인물은 ‘장 대령’ 이었습니다. 여러분의 포커스가 몇 년 후에 어떤 인물로 변하게 될지 궁금하네요.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소설이 독자에게 줄 수 있는 사유의 즐거움을 가득 담고 있는 책, ‘김은국’의 ‘순교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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