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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킷랩 Sep 08. 2018

하나는 너무 많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1.
안녕하세요, 버킷랩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입니다.


2.
이 책은 버킷랩에서 운영하는 독서모임 한주한권에서 서른 네번째로 함께 읽는 책입니다. 이로써 총 9,359 페이지째 함께 읽게 되었네요.

3.
예전에 책을 그냥 읽는 것이 지루할 때는 나라별 소설을 찾아서 읽고는 했습니다. 한국에서 출발해서, 미국, 일본, 중국, 독일, 프랑스, 영국까지는 쉽게 도착했지만 그 뒤로는 새로운 나라의 문학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출판시장에서도 강대국들의 힘이 강해서였을까요?

당시에 체코라는 나라의 소설로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읽었는데요. 이번에 읽은 이 책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작가 ‘보후밀 흐라발’도 체코 출신입니다. 그가 쿤데라와 다른 점이 있다면 소련으로부터의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 운동과 그 뒤의 잔혹한 탄압 이후로 프랑스로 망명하는 길을 선택해 보다 자유롭게 글을 썼던 쿤데라와는 달리 흐라발은 끝까지 체코에 남아 글을 썼다는 것입니다.

그런 그가 스스로 가장 사랑했다고,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이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고 말한 작품이 바로 이번 책 ‘너무 시끄러운 고독’입니다.

3-1.
혹시 책을 아직 못 읽어보신 분들을 위해 줄거리를 간략하게 설명해드리자면, 이 책은 한탸라는 폐지 압축공의 이야기입니다. 매 소설의 장마다 ‘삼십오년 동안 책과 폐지를 압축해왔다’는 문장이 반복될 만큼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인데요.

3-2.
그는 한 사람의 사상과 지식이 담겨있는 책을 폐기해버리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었지만, 매일 수톤의 폐지와 헌 책이 들어오는 작업장에서 많은 좋은 책들을 알게 됩니다. 괴테, 노자, 아리토텔레스, 카프카, 그리고 폐지로 들어오는 여러가지 명화의 모조품들도 보게 되죠, 피카소의 게르니카 같은 것들 말입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는 많은 책을 읽게 되고, 많은 예술품들을 보며 책과 미술의 애호가가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로 둘러 쌓인 자신의 직업을 더 사랑하게 되고, 압축된 폐지꾸러미를 만들 때 나름의 미학적인 입맛대로 명서와 명화를 하나씩 재료처럼 집어넣는 자신만의 의식도 가지게 되죠.

3-3.
그러나 ‘삼십오년 째’ 폐지 압축공을 일하고 있는 한탸는 더 큰 압축기계와, 더 젊은 인부들에게 자신의 일자리를 넘겨줘야했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것은 한탸에게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이유를 모조리 앗아가는 것이었고,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전진과 후퇴의 리듬을 가진 압축기에 마지막으로 자신의 몸을 압축하는 방법으로 삶을 끝내기를 택합니다.

4.
여러분들은 이 기괴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어떻게 읽으셨나요? 저한테는 최근에 읽었던 책 중에 가장 어려웠던 것 같은데요. 왜 어려웠는지를 생각해보면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 한탸의 1인 독백체로 쭉 진행되는 이 책이 한탸의 내면의 흐름을 논리적일 필요없이 서술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우리도 뭔가를 생각할 때, 생각과 생각이 순식간에 점프되거나, 이 생각에서 저 생각으로 이어지는데에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인과관계로 이어질 때도 많은데, 이 책 역기 한탸라는 주인공의 생각에 의지해서 서술을 진행하고 있다보니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타인의 생각의 흐름을 잘 따라가기’가 꽤 어려웠을 수도 있을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5.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아주 멋진 역설의 제목 ‘너무 시끄러운 고독’도 한탸의 내면의 흐름과 관련지어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너무 시끄럽다’가 가리키는 내용이 한탸의 직업과 관련되어 압축기의 시끄러운 소음일수도 있지만, 한탸의 내면에 집중해본다면 좋은 책과, 좋은 그림을 통해 끊임없이 영감을 받으며 새로운 생각과 그 생각들을 나름의 질서로 맞춰가는데에 즐거웠던 한탸의 머릿속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안에서 나는 소리로 너무 시끄러웠던 적, 계속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때문에 머리가 복잡했던 적 다들 한번쯤은 있지 않을까요? 한탸는 어쩌면 그 생각의 창발성을 예술적으로 즐기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18페이지에서 ‘내가 혼자인 건 오로지 생각들로 조밀하게 채워진 고독 속에 살기 위해서이다.’ 라고 하며 스스로 고독을 찾은 이유를 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6.
한탸가 즐기는 고독의 기쁨에 집중해서 읽다보니 [고독이 필요한 시간]이라는 제목의 책이 떠올랐는데요. 책의 표지에는 ‘고독해서 괴로운게 아니라, 고독하지 않아서 괴로운 것’이라는 카피가 적혀있습니다.

한탸에게 그러했듯이, 누구에게나 자신 안에 떠오르는 생각의 흐름에 정신을 내맡겨보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24시간 대기 상태인 휴대폰을 옆에 두고, 걸음마다 오감을 자극하는 도시의 거리에서 나의 내면에 집중할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주말에는 2시간 아니 단 1시간 만이라도 휴대폰 전원을 꺼두고, 모든 시청각 자료를 차단한 채 고독 속에 있는 나의 내면으로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7.
책과 예술을 사랑한 폐지 압축공의 정신없는 생각을 후루룩 읽게되면서, 내가 음미하지 못하고 압축해버리는 것들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게 하는 책,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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