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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킷랩 Sep 16. 2018

아이어른이 된 어른아이

새의 선물, 은희경




1.
안녕하세요, 버킷랩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은희경’의 ‘새의 선물’입니다.

2.
이 책은 버킷랩에서 운영하는 독서모임 한주한권에서 서른 다섯번째로 함께 읽는 책입니다. 이로써 총 9,794 페이지째 함께 읽게 되었네요.

3.
독서모임에 참여하거나, 공개적인 서평이나 리뷰를 하는 일에 한가지 장점은 다양한 책을 읽게 된다는 것인데요. 이번 책 ‘은희경’ 작가의 ‘새의 선물’이 제게는 그런 부류의 책입니다.

‘은희경 자체가 하나의 장르’라던지, 은희경 작가의 작품은 ‘못을 하나도 쓰지 않고 홈과 홈을 짜맞춰 만든 집같다’라고 비유될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는 말을 들어왔지만 여지껏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는데요.

늦게나마 작가의 첫 장편인 이 책, 새의 선물을 읽고 ‘아 이 책을 내가 조금 더 어렸을 때 읽었다면 어땠을까’하고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소설 속 화자인 진희와 비슷한 나이의 내가 이 책을 읽고 진희가 생각하는 세상의 위악에 어떤 의견을 가졌을 지 궁금했죠.

4.
아직 책을 읽지 않으신 분을 위해 간략하게 줄거리를 소개해드리자면, 이 책은 ‘강진희’라는 여자가 세상과 사람을 왜 냉소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는지에 대해 자신의 어린시절 기억속에서 그 이유를 더듬어보는 이야기 입니다.

60년대말 배경으로 12살이었던 주인공은 외할머니, 삼촌, 이모와 함께 살고 있는데요. 어머니는 정신병을 앓다 자살했고, 아버지는 진희를 할머니에게 맡기고 새로운 가정을 꾸렸습니다.

주인공 진희는 여느 자신의 또래 아이들과는 확실히 다른 점이 있는데요. 굳이 그 다른 점을 자신의 특별함으로 티를 내서 미움을 사지 않을 만큼 정신적으로 성숙한 아이입니다.

4-2.
진희가 이렇게 된데에는 자신의 가족을 비롯한, 동네 어른들의 비밀이나 추한 모습, 약한 모습 들을 관찰할 수 있었기 때문인데요. 어른들은 자신의 약점을 다른 어른들에게 보이는 것은 대단히 신경을 쓰면서 아이들은 마치 투명인간처럼 감추지 않았죠.

동네 남자들에게 사근하게 대하며 자신의 실속을 챙기던 미스 리, 왕년에 잘나간 자신을 노래하며 집에 돌아와서는 아내를 때리며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무능력한 광진테라 아저씨, 그런 아저씨와의 결혼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이미 자신의 삶이 되어버린 환경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광진테라 아줌마 등 진희는 주변 어른들의 사정을 그들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꼬마였습니다.

4-3.
진희가 어른들이 ‘보여주는’ 면과 ‘감추는’ 면, 두 개의 이면을 모두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진희는 열두살에 행복이 가면 불행이 온다는 것, 사랑이 오면 이별이 뒤 따른다는 것, 그리고 세상의 많은 일들이 우연적 사건에 의해서 결정지어 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5.
그런 진희는 자신의 공책에 적어두었던 ‘절대로 믿으면 안되는 것들’의 목록을 지우며 더 이상 성장하기를 멈춥니다. 왜냐하면 열두살에 이미 절대로 믿으면 안되는 것들이 언젠가는 믿을 수 있는 것들이 되고, 절대로 신뢰를 주던 것들이 언젠가는 자신을 배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진희는 세상에 기대할 것 없는, 우연적 사건이 이끄는 결과에 몸을 맡기며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들의 깊이를 가볍게 여기는 것을 삶의 태도로 가지고 크게 됩니다.

6.
책을 다 읽고 덮으면, 책을 처음 열 때 보았던 표지가 다시 눈에 들어옵니다. 여자아이의 하관 이미지가 조금 묘하게 보이기 시작했는데요. 똑단발을 한 시골 여자아이처럼 보이던 게 앙다문 입술에 집중하면 ‘어라, 아이가 아닌가?’하고 생각하게 되는데요.

열두 살에 어른아이 였던 진희는, 책의 끝에서는 서른 여덟 살에 아이어른이 되어있었습니다.

7.
그런 진희를 보면서 저도 제가 어린 시절에 겪은 다양한 일들을 떠올려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생은 같은 영화를 계속해서 틀어주는 상영관’이라는 말도 함께 떠올랐습니다.

책의 주인공은 열 두살 까지의 기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어릴 때 느끼는 감정들을 극기 훈련을 통해 냉정하게 판단하는 법을 익히지만, 보통 현실의 인간들은 어릴 때의 힘든 기억을 잊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어른이 되어가며 어릴 때 이미 느껴본 그 냉소와 위악을 다시 한번 자신의 삶에서 재상영합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었는데 잃어버렸던 것을 다시 되찾는 반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8.
열두살의 진희보다 서른여덟의 진희가 더 안쓰럽게 느껴지는 것은 냉소로 어른들의 위악을 분석하던 어린아이가 이제 스스로가 자신이 안쓰럽게 여기던 그 대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일까요?

아이의 눈으로 서로를 향한 멸시와 동정으로 뒤덮인 세상을 태연하게 서술하는 것을 통해 어린 시절에 박힌 어른의 기억에 파편으로 욱씬 거리는 경험을 선사하는 책, 은희경의 새의 선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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