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인간, 오에 겐자부로
1.
안녕하세요, 버킷랩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오에 겐자부로’의 ‘읽는 인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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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적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역대 2명이 있는데요. 한 명은 얼마 전 소개해드린 ‘설국’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이고, 다른 한 명은 오늘 소개해드릴 ‘오에 겐자부로’ 입니다.
두 사람은 일본국적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각자의 스타일과 가치관이 다른 것으로 더 유명한대요. 노벨상 수여의 주최인 노벨재단에서 그들 각자에게 상을 수여한 이유를 설명한 것을 들어보면 그 차이가 조금 더 이해됩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 일본인 심리의 본질을 그린 매우 섬세한 표현에 의한 서술의 탁월함에 대해.
오에 겐자부로
-시적인 언어를 이용하여 현실과 신화가 뒤섞인 세계를 창조하고 궁지에 내몰린 현대인의 모습을 보는 이를 당혹시키는 그림을 그린 공적에 대해.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일본인만 쓸 수 있는 것을 가장 잘 쓴 일본인이라면,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이라는 국적을 넘어서 보다 큰 범주의 정체성인 인간에 집중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설국을 소개해드린 이후로 오에 겐자부로를 가능한 가까운 시간내에 소개해드리고 싶어서, 이번 리뷰를 준비하게되었습니다.
3.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은 작가 개인의 체험이 이야기의 틀을 잡고, 시나 신화의 인용이 많아서 독자입장에서는 읽기가 난해하다는 평이 꽤 많은데요, 이번 책 [읽는 인간] 역시 비문학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쉽게 읽히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래도 강연의 내용을 엮어놓은 책이기 때문에 대화의 흐름을 문자로 재현하는데에 한계가 있었을 것 같기도 한데요.
그렇지만, 시간은 무한하다라는 마음으로 천천히 앞문단과 뒷문단의 자연스러운 연결에 사고의 흐름을 맡겨보시면 충분한 사상적 유희를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만약 책을 읽다가 포기하신 분이 계시다면 책을 눈에 안보이는 곳에 두셨다가 어느 날 문득 생각났을 때,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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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크게 2부로 나뉘어져 있는데요,
-1부에서는 주로 오에 겐자부로 자신이 왜 책을 읽게 되었고, 왜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결심이 어떤 작품으로 완성되었는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2부에서는 그렇게 책을 읽으며 소설을 써오던 오에 겐자부로가 쉰 살 무렵 자신이 지금까지 읽었던 책을 들춰보며 그 중에서도 단테의 [신곡]에 흥미를 느끼고 시작했던 집필 일화를 통해 책이, 특히 고전이 독자의 인생으로 다시 회귀되는 경험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실려있는 부록은 비록 분량은 짧지만 그가 중년 이후 노년의 시기로 접어들었음에도 쓰는 일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그 열정이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제시해둔 부록이지만 제3부같은 부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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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는 책의 초입에 [나만이 지닌 책의 네트워크]라는 표현을 하는데요. 그가 인생을 만들어 나가는 순간마다 한 권의 책과 문장이 쌓이고 쌓여 그의 선택을 만들었고, 그 결정적 책들이 오에 겐자부로 자신을 중심으로 네트워킹 되어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p.10
'나만이 지닌 책의 네트워크가 있다', '이런 작가들의 책을 읽고 영향을 받으며 살아왔다' 와 같은 구조도가 살면서 차츰 생성되는 것이죠. 그게 지속적으로 책을 읽는 것일 터인데, 제 나이쯤 되니 제 삶이 다른 무엇보다 이 책들과 함께해왔다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이 정도의 질과 양의 책이었구나', 나아가 '내 생애도 이 정도의 일생이었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동시에, '그래 분명 이런 인생이었지'하는 그리운 감정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1부에서 소개되는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에 나오는 ‘좋아, 난 지옥으로 가겠어’라는 문장을 통해 스스로의 신념을 사회와 타협하지 않을 다짐을 가지게 된다던지, 비자폐인들과는 다르게 보고 듣는 아들 ‘히카리’의 슬픔을 이전에 보았던 [윌리엄 블레이크]의 신화적 세계관을 통해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던지, 2부에서 소개되는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천국도 지옥도 아닌 ‘연옥’이라는 인간적인 공간을 통해 신과 다른 인간만이 가진 면모들을 작품으로 풀어보게 된다던지 하는 것들이 모두 오에 겐자부로가 살아내며 쌓아온 네트워크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라고 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6.
책 읽는 걸 즐기는 분이시라면 오에 겐자부로처럼 책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모습과 책을 삶의 문제들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 이 두 가지가 조화롭게 맞물려 가는 것을 본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책의 전반에 걸쳐 짧게 설명된 오에 겐자부로식 책 읽기 방법 몇 가지를 간략히 소개해보자면
처음에는 미로를 즐기고, 두번째부터는 탐구를 즐기기
p. 38
책 한권을 읽을 때, 우리는 언어의 라비린스labyrinth, 즉 미로를 헤매듯 독서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하지만 한 번 더 읽을 때는 방향성을 지닌 탐구('탐구'를 노스럽 프라이는 퀘스트quest라고 썼습니다)가 됩니다. 무언가를 찾아 나서서 그것을 손에 넣고자 하는 행위로 전환되지요. 그것이 rereading, 한번 더 읽는 까닭입니다.
정보가 아닌 정신을 발견하기
p. 47 에드워드 사이드와 다니엘 바렌보임의 대화록 <음악과 사회> 중
예를 들어 제가 어느 수필가의 책을 거론한다고 해봅시다. 제가 그 책에서 자극을 받고, 감명을 받고, 힘을 얻어, 지적 흥분을 느끼는 것은(받아들일 모드가 되어 있을 경우겠으나), 단순한 정보 때문이 아닙니다. 책 속의 글을 통해 느껴지는 일종의 정신 -발견이라는 감각, 어느 소재의 독창성이나 중요성을 자연스레 깨닫고, 이를 통해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자 하는 감각.
한 작가에 집중해서 읽어보기
p. 68
졸업을 앞둔 제게 와타나베 선생은 앞으로 이렇게 독학을 하라고 책 읽는 방법을 가르쳐주셨는데, 그것은 3년마다 읽고 싶은 대상을 새로 골라서 그 작가, 시인, 사상가를 집중해서 읽는 방식이었습니다.
좋은 고전을 발견하고, 두고두고 읽어보기
p. 153
보통의 독서인으로 살아갈 경우엔 그다지 많은 고전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평생에 걸쳐 읽고자 하는 고전을 젊은 시절에 발견해두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건 자신 있게 드리는 말씀인데, 정신 차리고 지속적으로 책을 읽어나가면, 저절로 고전이 한 권, 두 권, 그것도 일생에서 아주 소중한 무언가가 될 작품이 여러분에게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그건 정말 신기할 정도예요. 어렵사리 만난 고전이 손에서 멀어져 갈 때도 있습니다. 제 경우엔 십 년이나 십오 년쯤, 무엇보다 소중한 고전을 읽지 않고 살았던 날도 가끔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기회가 생겨 그 책이 다시 제게 돌아와요. 책을 읽는 다는 것과 살아간다는 것의 관계가 무척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여겨지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이렇게 4가지 정도를 말씀드려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7.
마음에 드는 책이라 리뷰가 조금 길어진 것 같은데요. 자신의 인생이 책으로 인해 방향정해졌음을 인생의 끝자락에서 더욱 절실히 깨달았다는 노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읽어온 책들과 그 책에 영향을 받은 내 삶의 조각들을 물끄러미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 [오에 겐자부로]의 [읽는 인간]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