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문제, 강경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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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버킷랩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강경애’의 ‘인간문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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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아니 비단 책이 아니더라도 그저 일상에 스쳐지나가며 만나는 문장일지라도 이유없이 가슴에 푹 박혀버리는 그런 문장들이 있습니다. 제 경우에도 그런 날카로운 문장들에 대한 기억이 몇 가지 있는데요,
이번에 함께 읽은 이 책의 작가 ‘강경애’님도 제게 그러한 문장을 읽게 해준 사람 중에 한 명입니다. 학창시절에 국어 문제집을 풀다가 우연히 강경애 작가님의 ‘지하촌’을 읽게 되었고, 지하촌이 늘어놓는 징그러울 만큼 자세한 가난에 대한 묘사에 이 사람 책은 언젠가 반드시 읽어보리라 다짐했었습니다.
이번에 함께 읽은 ‘인간문제’ 역시 ‘지하촌’이 그러했듯, 작가 본인이 가장 관심있어했던, 그리고 생애 전반에 해결해야할 문제라고 보았던 ‘가진 것 없는 이들의 고된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지하촌’과 달리 ‘인간문제’에서는 등장인묻들이 계급투쟁을 하게 되는 모습까지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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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투쟁이 산업화혁명 이후에 만국 공통의 인권문제였던 만큼, 계급투쟁을 주제로 하고 있는 예술작품들은 일종의 장르화가 되어있는데요. 프로문학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는 그러한 작품들이 쓰여질 수 밖에 없는 보고듣는 일상생활이 계급문제들이었다는 이유도 있지만, 계급투쟁을 위한 주도자들이 문학을 하나의 투쟁 수단으로 활용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역시 그러한 기류가 있었는데요, ‘KAPF(Korea Artists Proletariat Federation)’라는 단체를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것 같습니다. 직역하자면 ‘조선 프롤레탈리아 예술가 동맹’으로 프롤레탈리아, 즉 노동자들의 의식 해방을 예술의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예술에 목적이 있다보니 이들이 만들어 내는 문학작품들 역시 점점 더 전형적인 모습을 띄게 되었고, 내부적으로 의식개혁에 효율적인 창작방법의 틀을 짜내는 등 기계주의적인 문학관을 가지게 되며 결국은 이 모순과 갈등이 계기가 되어 카프는 점점 와해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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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애 작가가 문학사에서 포커스되는 부분이 바로 이 점인데요. 강경애 작가의 작품들은 빈곤문제, 노동문제, 크게는 계급문제를 작품의 주제로 삼고 있지만 그 자신이 카프에 소속되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당시에 주류문학이었던 카프문학, 프로문학의 전형성에 들어맞지 않는다면 서울을 중심으로 한 중앙문단에서 그의 작품은 배척되는 분위기 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중앙문단에서, 카프문학에서 타의였든 고의였던 정신적으로, 또 거리적으로 거리를 둘 수 있었던 것이 강경애 작가만의 스타일을 만들 수 있던 이유가 되었는데요. 가난한 노동자들의 삶에 주목하되, 이 문제를 이야기로 풀어놓을 때는 전형성에 얽매이지 않은 덕분에 독자들로 하여금 그 인물들의 삶을 조금 더 리얼하게 느낄 수 있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읽은 이 책 ‘인간문제’ 역시 이러한 장점이 잘 살아있는 소설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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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애 작가가 가진 변하지 않는 문제의식과 그것을 입체적으로 풀어내는 소설가로써의 능력을 자세히 말씀드려보고 싶어서 서론이 길어졌는데요, 그렇다면 그가 ‘인간문제’ 속에서 자신이 의식하고 있는 문제들을 어떻게 복합적, 중층적으로 그려내고 있는지 간단히 살펴보려 합니다.
여기 비슷한 또래로 설정된 다섯 명의 등장인물이 있습니다. 이 중 옥점은 농촌의 대지주인 아버지를 둔 부르주아이고, 신철은 도시에서 교사생활을 하는 아버지를 둔 소부르주아입니다. 간난이, 선비, 첫째는 모두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 식모나 소작농 생활을 하는 프롤레탈리아입니다.
작가는 이들을 내세워 극이 진행됨에 따라 그들이 겪는 문제를 하나씩 보여주고 마지막에 그 문제를 하나의 귀인, 본질적 인간문제로 귀결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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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용연이라는 농촌을 배경으로 [옥점/간난이/선비/첫째] 가 나오는 극의 초반부에는 농촌 지주들의 착취 문제를 다룹니다.
-옥점아버지의 첩이 되었으나 아들을 낳지 못해 버려진 간난이
-노예는 아니지만, 그와 다를 바 없이 대대로 종살이를 하는 선비
-역시 종살이를 하던 아버지가 옥점아버지에 의해 과로로 죽게 되고, 이후에는 불합리한 소작농 생활을 하는 첫째
와 같은 것들 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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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이 부분에서는 옥점아버지가 자신의 딸 뻘인 간난이와 선비를 유린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농촌계급문제에 더해져 여성으로써 겪는 성적학대문제까지 다소 간략하게나마 지적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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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극의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간난이/선비/첫째]는 모두 농촌의 불합리함을 피해 도시로 상경합니다. 새로운 일자리, 합리적인 사람들이 많다는 도시에서는 자신들이 일한 만큼 배불리 먹고,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죠. 하지만 도시 역시 가난한 이들에게는 내어줄 자리가 없었습니다.
-하역부로써 허리가 부서지도록 일을 하지만 정당한 댓가를 받지 못하는 첫째
-간난이와 함께 대단지 방적공장에 여공으로 들어가지만 공장의 효율을 위해 직공들을 마음대로 부리는 관리자들의 행패에 폐렴이 걸려버린 선비
의 모습은 농촌에서 있을 때와는 ‘주인’만 달라졌을 뿐 여지없는 종살이 같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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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이는 간난이/선비/첫째와 달리 서울에서 대학까지 다닐 정도의 소부르주아이지만, 없는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야한다는 지식계급의 사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그들이 당하는 부당함을 설명하는 글을 유포하죠.
그러나 그는 노동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배고픔을 직면할 때마다, 부모님 밑에서 생활할 때와는 달리 초라해진 자신의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약해집니다. 개인의 노력으로 인해서 세상이 바뀌지 않을 것인데 이런 생활고는 그만하고 그저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 부모님이 점지해준 부유한 여성과 결혼을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유혹이 하루에도 몇번씩 찾아옵니다. 그리고 결국 삐라 전단의 유포자로 경찰에게 잡히고, 고문을 당한 뒤 노동운동가에서 소부르주아로 돌아가기로 결정합니다. 그의 불기소 사유는 ‘사상의 전환’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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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또래의 4명의 청년들이 노동운동을 했습니다. 간난이도, 선비도, 첫째도, 신철이도 노동운동을 했는데 간난이는 도망자가 됐고, 선비는 폐렴으로 죽고, 신철이는 다시 배 부른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선비가 죽고, 신철이가 불기소 된 후에야 자신이 정신적지주로 삼은 신철이와 자신의 결정적 차이를 알게 됩니다.
신철이에게는 인생에 여유분의 선택지가 있고 첫째 자신은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말이죠. 신철이는 사상의 전환을 하면 돌아갈 곳이 있었으나, 첫째 자신은 전환을 할 여유도, 전환을 해서 돌아갈 곳도 없었습니다. 작가는 이렇게 계급 자체, 무산이냐 유산이냐에서 오는 근본적 문제의 귀인을 첫째의 입을 빌려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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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은 뒤에는, 식민지 시대에 겪은 선비와 첫째의 계급적 문제들이 과연 지금은 해결되었나하고 스스로에게 반문해보게됩니다. 누구도 노예라는, 종이라는 단어를 타인에게 부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무언가 있고 없음에 의한 계급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많은 시간 잊고 지내지만 오늘도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생사문제로 이어질 이 인간문제가 결코 없는 셈 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만드는 책, 강경애의 인간문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