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기 위해 떠난 고향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by 검사이다

검사는 2년마다 머물지 않고 전국을 돌아다닌다.

특히 고향은 잘 가지 않는다.(청탁이나 가족문제 등등)


검사가 되기 위해 서류 합격 후 일주일 동안 면접을 봤었는데, 여성 면접관이 내게 마지막 질문을 했다.

"여자로서 한 군데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 돌아다닐 텐데 괜찮아요?"

나는 즉답했다.

"저는 여행을 좋아하고, 어떤 지역이든 내 집처럼 생각하고 근무할 자신이 있습니다!"


검사가 된 이후에 나는 평생 살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아름다운 도시와 일이 아니었음 가보지 않았을 알려지지 않은 곳까지 돌아다녔다. 실제로 그곳을 내 집처럼 생각하고, 그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하고,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부러 고향과 먼 곳을 지원하기도 했고.

하지만, 2년이 되면 나는 다시 이방인이 되었다.


새해가 되고부터 '어딘가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자꾸만 들었다.

친구들은 '향수병이 온 것 같다'라고 했다.

1년에 두어 번도 잘 가지 않았던 고향에 올해 말에만 세 번을 다녀왔다.

어머니는 딸이 올 때마다 손님 같아서 부담스러웠는데, 자주 오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고 말씀하셨다.


고향에 가면 참 잘잔다. 편안한 마음이 드나 보다.

내 고향은 산과 바다가 아름답고, 공기도 좋다.

(시골이라는 이야기)


보통 1월에 휴정기가(재판을 쉰다는 이야기) 있어서, 나도 휴가를 내고, 고향에 내려와 가게일을 도왔다.

그런데 갑자기 아빠의 큰소리가 들렸다.

"에헤이~~~!!!"

그리고는 가게로 들어온 아저씨와 함께 황급히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나도 궁금해서 무슨 일인가 하고, 밖으로 따라나갔다.

보니까 노부부가 하수도에 보청기를 빠뜨려서 발을 동동 구르고 계셨다.


일단 아빠는 집에서 랜턴, 집게, 장도리 등을 가지고 나오시고, 나는 시청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미용실 집 아줌마, 간판집 아저씨, 지나가던 동네 분들이 모두 모여서 보청기를 꺼내는 데에 집중했다. 한 시간 만에 보청기는 주인 할아버지의 손에 들어갔고, 우리는 기뻐하며 박수를 쳤다.

나중에 할아버지 아드님이 오셔서 넙죽 인사를 하고 가셨다. 너무 감사하다고.

아들이 큰맘 먹고 비싸게 돈을 준 보청기라고. 그래서 할아버지도 포기를 못하고 한 시간 동안 낑낑거리셨나 보다.



내 고향은,

추운 날 난로처럼 자꾸만 가까이 있고 싶은곳이다.


행복을 가져다주는 파랑새를 찾아 머나먼 여정을 떠난 주인공이, 결국 지쳐 집에 돌아왔을 때 그곳에 파랑새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나는 지금보다 나은 내가 되기 위해 고향을 떠나고, 사람들을 떠났다.

하지만, 나는 '사실은 늘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음'을 알게 되었으며, 동해바다의 짠내와 따뜻한 황태국은 그런 나를 기다려 줬다.


지금은 검사로서 고향을 떠나 내 할 일을 다 해야 하지만, 언젠가는...이란 생각을 하며 서울로 가는 기차표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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