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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사이다 Sep 18. 2023

상사에게 이 말을 해도 될까?

실적을 뺏긴 검사의 분투기


현재, 검찰 인사 시즌이다.

이재명이 쓰러지고 하는 마당에 인사가 나겠냐고 한숨 쉬던 우리 부장님.

(부장님은 인사가 '잘' 풀리면 차장 승진을 앞두고 있으니 빠른 인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예정대로

오늘 검찰 인사위원회가 열렸다. 아마 수일 내 발표가 날 것이다.


검사장이 바뀌고, 부장도 바뀌면 각 부는 그동안 잘했던 것들을 모아서 '업무 보고'를 한다.

물론 마지막에 애로사항(을 빙자한 다른 부로 일 좀 떠넘기기)도 아주 살짝 넣어서.


업무 보고를 하니 재밌었던 일이 떠오른다.

부장을 하다 부부장으로 강등된 k부부장이 있었다.

검찰은 무섭게도 부장이 되더라도 실적이 부진하거나 징계 등 사유가 있으면 다시 부부장으로 강등을 시킨다. 그래서 후배 부장 밑에서 부부장으로 일을 하기도 한다.

k부부장은 참 일을 하기 싫어했다.

난 늘 그에게 연민과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불안감, 다시 부장으로 승진하길 바라는 염원 등 복잡함을 느끼곤 했다. 그래서 내가 그의 일을 도맡아 하고는 했다.


어느 날, 검사장이 바뀌고, 부전체가 실적발표를 하는 날이 왔다.

그리고 나는 그 부부장이 내 실적을 본인 실적으로 바꿔치기하는 현장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당시 내 표정이 이랬다.


한참 발표를 듣더니, 검사장이 나에게 물었다.

"x검사야, 너는 실적이 어떠냐"

나는 순간 그냥 "모른다"라고 답했다.

만약 거기서 진실을 말하는 순간 부부장의 발표는 망하는 것이니까.


검사장님은 내게 "x검사도 열심히 해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나는 억울했고, 오히려 부장님에게 화가 났다. 그 순간 실적을 위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그에게.

그리고는 엄청나게 자책했다. 아무런 대응하지 못한 나를.


답답한 나의 하소연을 듣던 친구(대화법을 연구하는)는 나에게 물었다.

"X야, 만일 그 일을 내가 겪었다면, 어땠을것 같아?"

나는 생각을 하다 말했다.

"당연히 부장이나 부부장이 미친놈들이지, 그거에 대응 못한 너 잘못이 아니라"

"그래, 근데 왜 너 스스로한테는 모질게 굴어?"

끄덕끄덕.

타인에 대해서만 연민을 느끼고 나에 대해서는 참 모질었구나.

참 잘 참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그 마음을 부장님께 말해보라고 했다.

다만, 아이(I) 메시지로.

이런 말을 들으니 나의(I) 기분이 어땠다고.


이후, 나는 부장님과 독대를 신청했다.

그리고 그날 있었던 일과, 내가 내 일에 대해 신념을 가지고 노력하고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부원으로서 상사에게 기대하는 것은 적절하고 정의로운 '보상'과 '책임'이라고.

그것이 적절히 이뤄지지 않았을 때 내가 느끼는 무력감까지 설명했다.


부장님은

"미안하다. 나도 부부장이 잘됐으면 하는 마음에 외면했어. 다음에는 공정하게 상벌을 내리겠다"라고 약속해 주셨다.

그리고 이후에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생각해 보면 참 좋은 부장님이었고, 부장님도 부부장님도 그래, 그럴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회사 생활을 하며 하고 싶은 말을 못 할 때가 참 많다.

그럴 때마다 자책할 필욘 없다. 잘 참아내는 것도 중요하니까.

가끔씩 꼭 필요할 때 '아이메시지'든 뭐든 서로 다치지 않게 소통하는 것이 나를 잘 돌보는 방법인 것 같다.

내가 속한 조직에도 좋은영향을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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