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 집 이야기 : 그 두 번째
첫 번째 집에 이어서, 두 번째 집 이야기다.
워낙 극적인(?) 스토리를 담았던 첫 번째에 비해, 두 번째는 소소한 과정을 거쳤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것 또한 전편에 못지않은 에피소드를 뽐낸다.
2014년, 두 달 간의 '(무모했던) 모험 살이'를 하다가 한국으로 돌아간 나는 1년 정도를 이 도시를 향한 마음에 끙끙거렸었다.
누차 쓸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가끔 보면 나도 내가 왜 이 정도까지 이곳에 애정을 쏟나 싶다.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무언가에 '사로 잡히는' 시기가 있다면, 나에겐 지금이 그때라고 말하겠다.)
여행 중, 마음 가는 대로 다시 ‘헝가리행'
정신 차리고 한국 와서 얌전히 있나 싶더니, 1년 후 또 '헝가리행' -
(엄마,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두 번 다 딸을 믿고 내어(?) 주다니(자포자기 아니지?).. '강단 있는 어머니 상' 드릴게요.)
2015년, 6월 -
"(헝가리에) 한 달 동안 다녀올게! 혹시 내가 돌아오지 않거든, 겨울 짐을 들고 헝가리로 와줘, 엄마"
"....................(잊히지 않는 엄마의 망연자실한 표정) '올 것이 왔다' 싶었던 듯. 이미 예감했다는 듯한 엄마의 눈빛'
헝가리로 다시 오기 전, 엄마 몰래 표를 끊고 또 한 번의 '선전포고'를 했다.
(거두절미하고....)
1. 헝가리 여행 (2014.5)
2. 여행 후, 헝가리 두 달 살이 (2014.6-7)
3. 다시 헝가리 (2015.6 - 지금까지)
한국에서 (페이스북으로) 한 달간 살 집을 알아보고, 짐을 챙겨 덩그러니, 왔다.
그래도 (2015년 기준) 작년(2014)보단 낫다. 최소 아는 사람 한둘은 있고, 한 달 살 집도 구해놨고, 아무것도 없던 때보단 훨씬 낫다.
그. 런. 데.
무식이 용감했던 작년보다 어설프게 알고 가는 지금이 더 겁이 났다.
나란 인간, 참 신기한 게 '심장 두근거리는 거, 쫄깃해지는 거' 즐기는 것도 아니고, 무서운데 왜 또 가?
오고 싶었으니까.
다시 한번 도전하면 될 것 같았으니까.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2015. 6. 5. 부다페스트 도착 -
집에 들어가기 전, 공항에서 도심으로 향한다.
'아는 카페'로 들어간다.
다시 왔는데, 새삼 낯선 '부다페스트'
작년에 이곳에서 사귄 친구 J에게 전화를 건다.
"나 왔어. (이미 출발 전에, 다시 간다고 연락을 해놨었다.)"
"응! 기분이 어때? 집은?"
"한 달 지낼 곳 알아놨어. 짐 풀고, 연락할게."
"그래. 웰컴 투 부다페스트!"
"땡큐!"
한국에서 구해 놓은 집주인에게 연락을 취한다. 대답이 없다. 느낌이 쎄하다. 다시 연락해 본다. 또 대답이 없다. 소름 돋는다.
직감적으로 '그 집은 이곳에 없다'라는 것이 뇌리를 스친다(나중에 알고 보니, 집은 직접 가서, 계약서 쓰고, 보증금 걸고, 정확히 '거래'를 했다는 표식이 있어야 '정말로' 내 것이 되는 이곳 관행이 있었다. 근데 사실 어딜 가도 마찬가지일 거다. 먼저 돈 내고 찜하는 사람이 임자).
‘아니, 그래도 집 나갔다고 언질이라도 해주지.. 예의가 없네’ (화낼 시간이 없다.)
'어쩌지?' 너무 황당하니, 금세 현실감이 돌아온다.
-친구는 신혼부부이고, 방이 원룸 형식이라 신세 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인 민박? 알아보니, 만실이다. (6월, 부다페스트의 여름의 성수기의 절정 시즌)
-호스텔? 마찬가지다.
이러저러하게 온갖 방법을 쥐어 짜내고 있었는데,
한인교회 목사님께 연락이 왔다. (내가 먼저 했나? 이 부분은 기억이 확실치가 않다.)
"잘 도착했니? 집은? 어디서 지내니, 당분간?"
"목사님.......... 집이 사라졌어요."
"집이 왜 사라져?"
"구두로 계약 맺은 집주인과 연락이 안 돼요."
"그럼 어디서 지낼 수가 있는데?"
"모르겠어요. 지금 알아보고 있습니다."
"그러지 말고, 우리 집에 와서 잠시 지내도 되니, 짐 갖고 와. 아니다. 내가 데리러 갈게. 지금 어디 있니?"
"아.... xxx 카페에 있어요" (이런 왕 민폐가ㅜ_ㅜ)
다시 만나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내가 너무 죄송스러워하니, 목사님께서 마침 한국에 가시는데 집에 아무도 없으면 되려 불안하니 며칠간 지내 달라는 식으로 말씀해 주셨다. 나 부담 갖지 않게끔 아무렇지 않게 건네주신 그 마음과 호의는 지금도 잊지 못하는 감사함이다.
이런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함은 둘째치고 너무 죄송 + 황송해서 눈만 뜨면 집을 찾아다니느라 종일을 불태웠다.
한인 사회 소식 참말로 빠르기도 하지. 막 도착한 내가 집 관련 문제가 생긴 걸 알고, 한인 교회 전도사님께서 연락이 오셨다.
"아니, 어쩌다가!... 우선 내가 아는 선교사님께서 마침 한 달 반 정도 한국에 가 계신다고 하네. 집을 비워두기도 그렇고, 일정 부분 네가 집세를 지불하고 지내볼 테야? 그곳에 지내면서 살 집 알아보면 되잖아." (헝가리에서 주로 여름, 겨울 방학 시즌에 한인 분들이 한국엘 잠시간 다녀오는 경우가 많다.)
"정말요? 그렇게 할래요! 거기가 어디쯤이에요?"
"국회의사당 근처야."
"바로 갈게요! 그 집!"
그리하여 나의 두 번째 거처가 된 그곳, 'Bathory utca' -
내가 진심으로 아끼고 좋아했던 동네이다. (일명 첫 정?)
지금의 이 기록을 위해 5년 전, 자료를 찾고 정리 중에 있었는데, 마침 최근에 이 스토리의 주인공? 인 집의 주인인 선교사님과 약속을 잡고 만나게 되었다. (지금은 가족 같은 사이로 지내고 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나의 인간관계는 일정 부분 '한계'가 있다.
특정 인물들 몇을 제외하고는 나에 대해 드러내기를 꺼려한다. 좁은 한인사회의 특성상 그러한 것도 있고, 아무래도 조심스럽게 행동을 하게 된다.
나를 백 프로 고스란히 내어놓기에 주저함이 없는 인물 중 하나가 '내 두 번째 집'으로 인해 인연을 맺게 된 선교사님이다.
나랑 비슷한 시기에 이곳에 오셨고, 때론 엄마처럼, 이모처럼, 언니처럼, 친구처럼 -
이 분을 만나서 헝가리 생활의 고되고 힘든 일들을 든든한 맘으로 이겨낼 수 있었고, 때론 버틸 수도 있고 그랬다.
"선교사님, 전 가끔 제가 이곳에서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꿈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어요. 그리고 그런 마음이 들 때면 지금의 이 순간이 너무 감사하고, 또 감사해요."
"나도 그래요.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시간도 새삼스레 신기하고, 감사하고 그렇네요. 비자 때문에 이리 뛰고 저리 뛸 때가 엊그제 같은데..."
2020. 09월
[만남의 장소도 마침, 두 번째 내가 살던 집 근처였다.]
▼ 여기서부터는 5년 전, 나의 기록이다.
▲ 이 집의 거리 이름이 '도토리' 같다고 생각했고, 때문에 정겨움이 더해진 곳이었다.
▲ 집 옆길, 'BANK UTCA' (5구역은 부다페스트의 '월 스트릿'과도 같은 곳이다.)
▲ 주로 앞번호는 '층'이고, 뒷번호가 호수이다. (헝가리는 우리나라 1층이 '0'층이다. 그라운드 floor 같은 개념) : 집 번호와 열쇠 모양을 누르면 벨이 울린다.
▲ 버튼을 누르면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21세기에 보기 드문 1차원적인 움직임이구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슝-하고 올라간다. 아날로그 감성이 충만해지는 시간 : )
▲ '드디어 이곳에서의 나의 삶이 시작됐다'라는 반가운 마음으로 매일 이 창문 밖을 확인했다.
5구역에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바로,
집에서 도보로 1분 정도만 걸어 나가면, 바로 -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헝가리 '국회의사당(전 세계 두 번째로 큰 규모)'이 아침마다 내 눈 앞에 펼쳐졌다는 것이다.
파란 하늘과 맞닿은 국회의사당의 벽돌색 지붕, 그리고 뾰족한 첨탑(저 첨탑은 총 365개이다. 1년 365일 동안 올바른 정치를 펼쳐나가겠다는 의지를 담은 건축물. 정말 올바르게? 맞아요? 응?), 자연과 걸작품이 만나 완벽한 하모니를 만들어간다. (낮이면 낮대로, 밤은 밤대로 - 역시나 최고의 야경 - ,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국회의사당 주변을 감싸며 오고 가는 2번 트램은 헝가리의 자랑인 '두너 강'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일명 관광 트램처럼 불리는 교통수단이다.
국회의사당을 배경으로 옛날식 노란 올드 트램이 철길을 따라 지나갈 때 펼쳐지는 파노라마는 이 도시에서 놓쳐서는 안 될 '명품 이미지'이다.
'멋지다'와 '아름답다', 그리고 '환상적이다'라는 서술어가 합쳐지면 = 헝가리의 '국회의사당'
헝가리 '국회의사당' [Hungarian Parliament Building]
영국 국회의사당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크다. 건국 1000년을 기념하여 세워진 국회의사당의 외벽에는 헝가리 역대 통치자 88명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지붕에는 1년 365일을 상징하는 365개의 첨탑이 있다. 국회의사당의 내부에는 총 691개의 집무실이 있으며, 카펫의 길이를 모두 합치면 무려 3456m에 이른다고 한다. 김춘수 시인의 시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의 배경이 바로 국회의사당 앞에 있는 코슈트 광장이다. 1956년 혁명 당시 부다페스트 대학생과 시민들이 소련군의 철수와 헝가리의 민주화를 요구하면서 연좌데모를 벌이다가 소련군의 총탄에 쓰러져간 곳으로, 헝가리 민주의회정치의 현장으로도 유명하다.
[출처 : 두산백과]
국회의사당으로 이어지는 트램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바로 '다뉴브 강의 진주'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헝가리인들의 자부심인 '두너 강'의 전경이 보물단지처럼 펼쳐진다. (사실상 이 강 전경이 헝가리를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을 기준으로 '부다'와 '페스트'로 나뉘고 강변 양쪽으로 이 나라를 대표하는 건축물(국회의사당, 어부의 요새, 세체니 다리, 부다 왕궁 등)들이 어깨동무를 하며 서로를 지지하고 있으니, 이 도시에 이보다 더한 축복이 어디 있겠나 싶다. '헝가리 사람들은 복 받은 거다! 열심히 살아라! (혼자서 중얼)'
다시금 나의 옛 동네로 돌아가 보자.
'5구역'의 눈에 띄는 특징은,
주변에 주요 관광지들이 몰려 있다는 것,
더불어 관광객들이 많기 때문에 거리 '청결도'가 극강으로 잘 유지된다는 점,
주변 경관이 좋다는 건 두말할 나위 없고,
맛집(레스토랑, 카페 등)이 한 집 건너 한 집에 자리하고,
또 쇼핑하거나 여가를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들이 밀집되어 있다는 것(소위 말해, '힙'한 구역)
한마디로 '놀고먹고 눈요기하기 제일 좋은 곳'이다!
▼ '바토리 우쩌'에 연결된 'Hold utca(홀드 우쩌)'를 따라가다 보면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큰 성당이 나오는데, 이동하는 5분 정도의 거리 사이사이에 '한낮의 망중한을 즐기고 싶은' 식당과 카페들이 나란히 줄 서 있다.
▼ 동네 한 바퀴를 유유히 돌다 보면, 가슴 확 트이는 '성이슈트반 성당'의 건축물이 위풍당당한 자태로 나를 맞이해준다.
★ 국회의사당 역으로 알려진 '코슈스 러요쉬 광장'역
2호선 메트로(M), 2번 트램, 다양한 노선의 버스들로 이곳을 오고 다닐 수 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대표 장점 중 하나는 바로 '대중교통'의 편리함! 뿐만 아니라 교통권 가격도 매우 저렴하다.
●Metro (메트로) :1-4호선까지 있다. 하나의 노선마다 15개 이내의 정류장 밖에 없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심플한 구조이다. 1896년 영국 다음의 유럽 대륙 최초의 메트로를 시작으로 2014년에 개통된 4호선까지 있는데, 1,2,3,4호선을 갈아타며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듯한 기분을 엿볼 수가 있다.
●Bus (전선(트롤리) 버스, 굴절 버스, 마을버스 등) : 메트로와 트램이 뻗지 않는 곳엔 버스로 어디든 향할 수 있다.
●Public boat (수상 버스) : 두너 강 곳곳을 이동하는 주간 배를 대중교통으로 이용할 수 있다. (최고!)
●Hev (교외 전차) : 부다페스트 근교로 향한다.
▼ 부다페스트 메트로 역사는 '땅굴로 들어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깊다. '우리나라'로 치면, '숭실대학교 역' 정도의 깊이? 속도도 징그럽게 빠르다. (거의 롤러코스터!)
▼ 두 번째 집에 지내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비자 준비를 시작했다. 그 도화선이 되는 곳, 헝가리 국립어학원 'BBI' (지금은 사립으로 바뀌었다.)
▼ '부다'지역 언덕에 있기 때문에, 창밖으로 보이는 뷰가 '늘' 나에게 손짓했다. ('어서 나와~~')
▼ 바토리 우쩌, 버스 정류장
원색적인 공중전화 부스 (헝가리인들 형광색 참 좋아한다!) _+ 그 옆에 '꽃집'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희미해지거나 버거워지는 기억이 아닌 보다 또렷하고 생생한 기억으로 '늘 나와 함께해준' '그때의 나'에게 고맙고, '그때의 나'로 돌아간다 해도 난 똑같은 결정을 했을 것이란 걸 다신 한 번 확인시켜준 '지금의 나'에게 기쁜 마음을 담아 (그때의 내가) 소중한 인사를 건넨다. 시간을 되짚어 글을 쓰는 이 순간이 '내 마음속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