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다'와 '페스트' in Hungary ]
[2020. 8월의 일기]
8월의 부다페스트는 매우 덥고, 매우 맑다.
늘 그렇듯 '부다'와 '페스트' 곳곳을 거닐어 본다.
(멈춰진 사고 회로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걷는 것만큼 효과 좋은 게 있을까?)
최근 3-4년 전부터 헝가리, 부다페스트가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 매스컴에 나오면서 '동유럽의 매력'을 알기 위해 꼭 가봐야 하는 명소로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상대적으로 체코에 인기가 가려졌었는데, 역시나 원석은 빛나기 마련이다.
특히나 이곳은 야경이 유명하다. 매. 우. 유명하다.
유럽의 3대 야경 중 하나란 타이틀과 더불어 세계 3대 야경 중 하나라고 당연히(?) 소개되는 부다페스트-
밤만큼이나 낮에도 반짝반짝 빛나는 부다페스트.
이곳에 처음 온 사람들이 " '부다'와 '페스트'가 다른 도시였었군요!"라고 종종 묻곤 한다.
'다뉴브 강의 진주'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이 도시는 강을 기준으로 '부다'와 '페스트'로 나뉘어 있다.
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부다, 페스트, 오부다' 이렇게 세 구역이었는데 1873년, 통합되어 지금의 부다페스트로 탄생한 것이다.
BUDA : '부다'의 어원에 관해서는 다양한 주장이 있는데, 물을 의미하는 슬라브어 '보더(Voda)'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PEST : '페스트'는 '화로' 혹은 '가마'를 의미하는 고대 불가리어에서 유래했다는 가설이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다.
유진일, 「꿩 먹고 알 먹는 헝가리어 첫걸음 중에서」
'부다'는 지형적인 면에서 '구릉지, 언덕'이라 불리고, '페스트'는 '평지'라고 일컫는다.
또 '부다'는 부촌, '페스트'는 신시가지로 대변되기도 하고,
그에 걸맞게 '부다'는 평창동처럼 정적인 동네, '페스트'는 홍대, 이태원처럼 젊은이들의 천국으로 빗대어 이야기하기도 한다.
내가 이 도시에서 매너리즘에 잘 빠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부다로.., 페스트로.., 오부다로.. 떠나는' 일상 속, 일상 여행 -
'부다에서 바라본 페스트'는 나에게 충만함을 허락해준다.
'페스트에서 바라본 부다'는 나에게 경이로움을 선사하고.. 이 도시의 과거를 캐고 싶어 하게끔 만든다.
그리고 부다페스트 내 또 다른 도시로 느껴지는, 옛 유적지 '오부다'까지..
서울이 한강을 기점으로 강남, 강북으로 가로획을 긋는다면,
부다페스트는 두너강(헝가리어로)을 중심에 두고 부다(강서), 페스트(강동)로 세로획으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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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란 어감이 내게 주는 느낌(청각적)과 인상(시각적)이 있다.
영어와 한국어로 느끼는 감정도 각각 다르다.
영어로는 'Budapest'
한국어로는 '부다페스트'
이곳에 여행자로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부다페스트, Budapest'란 이름은 나에게 남달랐다.
활자로 볼 때도 매력이 있고, 소리(음성)로 들었을 때도 '도시 이름 참 잘 지었다'..라는 생각이었고,
사운드로 들을 때와, 도시 곳곳에 표지판이나 엽서에 적인 이름, 수많은 '부다페스트&Budapest'를 보았을 때 난 묘한 기분(짜릿한 기분? 변태인가;)에 사로잡히곤 했다. 지금도 그렇다. (이쯤 되면 내가 정말 헝가리인이었나 싶다)
이건 마치 "부다페스트가 왜 좋아?" 하는 질문을 들을 때와 비슷한 기분인데,
하고 싶은데 하지 못 하는 심정은 꽤나 찝찝하고 괴로운 것임을...
예컨대,
한창 이 도시를 찬양할 때, 친구들한테
- "부다페스트 - 이름부터가 섹시하지 않아?"라고 하면,
-"대체 어디에서? 무엇 때문에?" 이런 답이 돌아온다. 그럼 나는,
- "뭐랄까? 소리가 주는 웅장함이 있어. 그게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기분이야. '부다'랑 '페스트'로 나뉘어 있던 것도 똑똑한 선조들이 언젠가 이 도시가 합쳐져 '부다페스트'로 불릴 것을 예상했다는 듯, 준비시켜 놓은 것 같지 않아? 너무 잘 어우러지잖아. 안 그래?"라고 하면 친구는 다시,
-"네 말을 들으니 그런 느낌이 드는 것도 같고.. ㅎㅎ 근데 오그라든다, 야"라고 한다. 그럼 그때부터 더 feel을 받아서 난 말을 이어간다.
-"저기 저 글자를 봐봐. 어떻게 'BUDAPEST'라는 조화가 생기지? BUDA는 글자 모양도 소리도 곰돌이처럼 둥글 묵직한데, PEST는 모양도 소리도 절도 있는 무사 같아. 안 그래? 근데 그게 합쳐지면 매우 섹시한, 뭐랄까. 독보적인 도시의 이름이 완성돼. 내 말이 맞지? 아니야? PESTBUDA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게 아닌 BUDAPEST! 너무 완벽해!"이런 식의 설명이 되는 것이다.
'아직 갈길이 멀었구나... 더 많이 읽고, 쓰고, 상상해야지'
오늘도 난,
앞으로도 난,
부다페스트를 세밀히 관찰하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사랑하였듯이 사랑하면서 사랑할 것이다.
가는 길은 어여쁘지만, 만만하다고 할 수는 없다. 행복하지만, 불안하지 않은 것은 아닌 것처럼.
나에게 이 길을 권한 사람은 없다. 그저 내가 발견하고 걸어가는 것이기에...
혼자 걷는 길은 나에게 특권을 누리는 기분이 들게 하지만, '혼자서' 걷는 행위 자체는 나를 종종 쓸쓸하게 한다.
그럼에도, 난 오늘을 꾹꾹 눌러 채워왔으니, 내일을 위해 비우고 다시 새로움으로 담아야지.
계속해서 내 길을 성실히 걸어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