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부다페스트)
모든 여정의 시작은 ‘카모메 식당'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무작정 취업 준비를 하면서(그저 남들 하는 대로), 내가 원하던 회사에 들어갔다.
고생 끝에 낙이 있을 거라 생각했던 그곳에서 '목적과 의미'가 불분명한 나날들을 보냈고,
'이게 지금 내 삶을 갉아먹고 있다고...'
나 자신을 채근하며 마음 덩어리를 뭉치고 뭉쳐 뭉개버리고 있던 때다.
내가 살아가는 삶에 '내가 주체가 아닌 객체로 존재한다는 느낌'이 온몸의 세포를 괴롭혀왔다. 세포가 맞을 거다.
먹는 음식을 제대로 소화를 못 시키고, 이유 없이 삶이 너무나 슬펐고(겉으로는 아닌 척하느라 더 괴로웠다), 원인 분명한(!) 화가 넘쳐 났고, 그걸 알고도 난 나를 계속 객체의 삶으로 꾸역꾸역 집어넣고 있었다. 치열하게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회사를 관뒀다. 쉽지 않을 결정이었다.
아니, 정말 어려웠다.
그렇게 삶을, 나를 지긋이 - 바라보다 퇴사 준비와 함께
‘핀란드'행을 대비하고 있었다.
마침 한국의 한 단체로부터 '핀란드의 한 단체와 연계’하여 해외 취업 공고가 났던 것이다.
아직 내 젊음이 머나먼 세상으로 던져질 만한 용기로 가득 차 있다,라고 판단해 기왕이면 더욱 생소하고, 난해(?)한 곳으로 빠져들고 싶었고,
언어도, 사람도, 위치도 (내 기준으로) 감 잡기 어려운 곳으로 더더, 먼 곳으로 떠나기 위한 준비를 해나갔다.
서류 면접, 온라인 면접 순으로 2-3개월 정도의 시간을 걸쳐 그 미지의 세계는 ‘나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퇴사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겠다'라고 생각하며 어언 1년에 가까운 기간을 비자 준비, 이직 준비 등으로 한창이었는데, 때마침 '핀란드 정부 정책이 바뀜에 따라' 자국어(핀란드어) 구사자를 채용해야 한단 이유로 무산 -
나의 기다림과 기대감을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었고, 망연자실해 있던 것도 잠시.
'이대로는 멈추지 못해!’하며 스스로도 개척해 나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영어권 국가(유럽 내)로 눈을 돌려보니
마침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 모집이 한창이었던 거다.
이것 또한 그때 당시는 "미지의 세계'(오지 탐험가도 아닌 나는 그때 왜 그리도 알 수 없는 세계를 갈망했는지..)
그 갈망이 돌고 돌아 지금의 '헝가리'가 된 것이다.
역시나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모른다.
‘핀란드'에서 '헝가리'라니..
어떠한 연결 지점도 찾아볼 수 없지만, 결국 그 지점들이 연결, 연결되어 지금의 '헝가리'라는 '삶의 도형'이 완성이 된 거겠지.
내게 최애 영화 중 하나를 말하라면, '카모메 식당' -
볼 때마다 의미와 해석이 달라지는 이 영화.
위로받고 싶을 땐 위로를, 확신이 부족할 땐 확신을 주는, 내 영화 친구.
마음이 몽글해질 때 들여다보면 가슴속 '초록 노을이 깔리는' 것만 같은 그런 영화 -
"근데 왜 핀란드인들은 그렇게도 고요하고 평온해 보일까요?"를 궁금해하며,
-아무런 목적 없이 이곳으로 온, 쪽머리를 한 안경 낀(인상착의로 설명하겠다) 여인,
-부모님을 여의고 삶의 목적을 잃게 되어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고파 지도를 펼친 후, 손가락으로 짚어진 곳이 핀란드여서 오게 된 깍둑 단발의 호두깍이(인형처럼 생긴) 여인,
-그리고 "일식을 일본에서만 팔라는 법이 있나요?"라고 말하며, 우리(일본인들)처럼 담백한 음식을 찾는 핀란드를 떠올리고 어린 시절 아버지가 만들어 줬던 오니기리(주먹밥)를 주메뉴로 내세워 따뜻한 정성이 담긴 음식을 팔고 있는 카모메 식당의 주인, 사치에.
[덧, 이 영화를 보다 핀란드에서 헝가리로 오게 된 나 ^^]
이 셋의 대화와 여백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의 삶은 박탈감을 벗어던지기 위한 '무언가'를 갈망하는 순간의 연속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꼭 그리 거창한 모양새가 아니어도 '너의 삶은 충분히 온전하다'라고 다독여 주는 것만 같아서 위안이 된다.
'억지 감동과 미사여구가 아니어도 큰 울림을 줄 수 있구나..' 매번 엄마품에 안기듯 달려가고 싶은 '카모메 식당'.
'삶은 참 따스하고, 벅찬 것이구나'라는 걸 알게 해 줘서 참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