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이 Oct 28. 2020

[‘여행하다’가, 살다’] 부다페스트에 오기까지. 2

부다페스트에 닻을 내리다.



[두 번째 이야기]



그렇게 아물지 않을 상처처럼 여겨졌던 '더블린'을 떠나왔다.

그 후, ‘나의 유럽'을 만나고자 약 50여 일간의 '홀로 여행'을 떠난다.



'설렘, 두려움' - 그 한가운데에서  (at the airport)



 ●  유럽 여행 중의 이야기는 아래에 있습니다.



1. 나는 몰랐다. 이곳이 나의 도시가 될 것이란 것을,


2. 나는 몰랐다. 이곳이 나의 도시가 될 것이란 것을, (2)





2015년 6월 29일. 나의 일기 중 -



2014. 0514

2014. 0611

2015. 0605

To Budapest,


2015.0629

All done,




2014. 0514_ 생애 첫 부다페스트를 만난 날

2014. 0611_ 더블린에서 모든 짐을 챙겨 다시, 부다페스트로 돌아온 날 (한국을 가지 않기로 결심 > 생각보다 막연한 삶임을 여실히 체감하고, 두 달 후 한국으로 돌아감)

2015. 0605_ 내 삶에 마지막(?) 도전이라 생각하며, 한국에서 1년간 상사병 걸린 사람처럼 지내다가 또다시, 부다페스트로 돌아온 날

To Budapest,



2015.0629_ 집 구하고, 짐 풀고, 본격 비자(거주증) 준비 착수(?)한 날

All done,



여기서 'All done'은 그때 당시, ‘모든 게 아름답게 마무리 지어지고, 그 이후로 나는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의 해피 엔딩적 알림이 아니라, 이제부터가 시작임을 선포하는 나에게 쏘아 올린 '신호탄'이었다.




'부다'와 '페스트'가 만나서, '부다페스트'







5년 전, 헝가리에 평생 살고자 짐을 풀게 되면서 아무 예고도 없이 한국을 떠나 왔던 나의 상황을 주변이들에게 알리고자 편지글을 썼었다.




[2015.9.10] ▼



Hazi feladat (숙제) _헝가리어 내 소개글



나의 소개입니다.

이 말을 하기 위해 지난 3개월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작년 아일랜드 워킹 홀리데이를 마치고, 유럽 일주 여행자의 신분에서 부다페스트에 '한 번 살아보자!' 하는 도전기로..

그러다 가족도, 친구도, 아무것도 없는 헝가리에 몸만 툭- 던져진, 그저 살고자 하는 마음만으로는 버거웠던 3개월 간의 나의 무력함과 무모함을 깨닫고, 한국에 돌아갔었더랬죠.



1년 간 부다페스트 생각에 시름시름 앓아가던 차에

다시 한번, 더 이상 없을 도전을 위해 또 한 번의 부다페스트 한 달 왕복 티켓을 끊습니다.



그리고 부모님께 말씀드립니다.




"엄마, 아빠! 나 다녀와야겠어. 티켓은 끊었고,
지낼 곳은 가서 알아볼래.
호스텔에서라도 있지 뭐, 지금 내 마음이 치기 어린 바람인지 진짜인지
직접 그곳에 가서 확인해 보고 싶어.
한 달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난 그곳에서 사는 거야.
해볼래! 할 수 있을 것 같아."




작년과 여행자의 신분으로 왔던 때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막연하고, 외롭고, 힘들어요(여기서의 '힘들다'는 죽지 못해 산다의 의미보다는 말 그대로 '쉽지 않다'의 의미입니다).

어느 하나 내 뜻대로, 만만하게 이루어지는 것 없었고 쉬워 보이는 길이 아니었지만, '조금 주춤하면 어때'하는 마음을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되뇌며 결국 지금까지 그렇게 뿅-, 저렇게 슝- 지내고 있습니다.



순차적으로 곰곰이 생각했어요.



 '헝가리에 살기 위해선?'




우선 이곳의 언어를 알아가야겠다.

'명색이 헝가리에 산다는 사람이 이 나라 말을 몰라서는 되겠어?'라고 생각하며 어학원을 등록했고, 우여곡절 끝에 살 집을 구하고(떠돌이처럼 이곳저곳 다니다가) 혼자 힘(인터넷에 헝가리 정보가 턱 없이 부족하네요)으로 비자를 받았습니다. 상장받은 기분이었죠!



행복? 성취? 끝? 해피 엔딩? 드디어 이루었다?

아닙니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란 마음으로 지금 이 순간 주어진 시간이라는 선물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지금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이 계획하고 작정했던 상황이 아니었던 것처럼 말이죠.

그저 물의 흐름처럼 내 의식과 마음을 맡겨보고 있습니다.

이건 말로 설명이 안 되는 이론의 문제가 아니기에, 정말 허락되는 상황대로, 내 삶을 의탁해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비자 신청을 끝마쳤고,

어학원을 등록하고,

우여곡절 끝에 집을 계약하고,

감사한 분들을 만나고,

내가 이렇게 왔듯 또 누군가를 떠나보내기도 하고,

행복과 삶의 분투 속에서 저울질하며...........

지금까지 오게 된 거예요.



이런 제가, 부다페스트에서 제2막의 장을 열어갑니다.



나의 다짐, 결정에 허락된 지금 이 상황에 감사하며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 무엇 하나 없으니,

그분의 뜻 구하며 기도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내 삶이지만, 결코 끝을 알 수 없는 삶.

어쩌면 그러하기에 기대되고 해 볼 만한 도전이라고 생각되는 게 아닐까요.



결론은 감사와 행복입니다.



행복의 요소들이 많아 행복한 것이 아니라

막막한 세상 속에서 걸어 나가는 걸음에

'가슴 뛰는 나의 꿈, 바람과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조차도 선한 길로 이끌어주실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이 넘쳐남'에 행복합니다.



그리고 기대합니다.

이 땅에서 펼쳐질 나의 소명 가운데 그 열매와 이로 인한 나의 새로운 고백과 믿음을....



2015. Austria_짤쯔캄머굿, 샤프베르크 mt.




* 한 달만 지내보겠다고 갑작스레 티켓 끊고, 출발 일주일 전 통보격으로 엄마에게 헝가리행을 알렸다.



역시나, 내 각오에 묵묵함으로 지켜봐 주고, 기도로 지지해준 엄마.

부다페스트 한 달 행 통보를 하고 결국 이곳에  짐 풀고 정말 살아보겠다고... 해보겠다고...

떠나오면서 말 그대로 대책 없이 여름옷만 달랑 들고 왔기 때문에 겨울 짐이 필요했고, 내가 한국에 돌아가서 가지고 올 수도 있었지만, 내가 사랑에 빠진 이 도시를 엄마에게도 보여주고 싶었고, 안심시키고 싶었다.



어찌 보면 얼토당토않은 우격다짐식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딸의 고집에 결국 못 이겨 헝가리까지 달려와준 엄마. (정말 대책 없는 딸이구나...)

여기 있는 일주일 내내 좋다면서도 '막상 보니 이 망망대해 같은 곳에서 여자 혼자 어찌 개척해 나가나.. 멀쩡한 직장까지 때려치우고.. 친지, 친구 하나 없이, 영어권 국가도 아니고..'  하는 걱정으로 결국 헝가리에 있던 일주일 내내 아팠던 엄마.

그럼에도 역시나 '기왕 하는 거 자신 있게, 당차게 해내! 힘들면 언제든 돌아와'라고 말하며 힘 실어준 엄마,

그리고 내 계획에 단 한 번도 '아니다, 안 된다'를 해본 적이 없는, '네가 원하는 거야? 그럼 해봐! 내 딸 믿는다'라고 쿨하게 그 한 마디가 전부였던 나의 아빠. 그 한 마디가 얼마나 큰 믿음이었던지.. 아빤 모르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갑작스레 오느라 인사 하나 제대로 못 하고 와서 두고두고 미안한 마음인 내 친구들,

("넌 늘 예측불허야!"라고.. 이야기하며 웃지만 그래도 서운했을 것 같아.)


'다 알아주리라, 믿는다'라고 말하기엔 좀 뻔뻔하지만, 그래도 믿는다. 응원해줘.



사랑해, 내 사람들아!



힘나는 친구들의 응원 : )



내가 힘들 때 언제든 나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S 언니



나의 애제자 K



부다페스트 초기 정착 때, 그곳에서 만난 친구 S가 주고 간 손편지






우리를 망설이게 하는 건
사소한 것들에 불과하다.
오히려 무모하고 위태로운 것들이 우리를
용기 낼 수 있게 한다.

-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中



이전 04화 [‘여행하다’가, ‘살다’] 부다페스트에 오기까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