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 이야기
세 번째 집은 약 3년(2015.7 - 2018.9.) 간 헝가리 생활의 기반을 다진 곳이다.
내가 구한 집, 나의 첫 스윗홈이다.
집 구할 때 나의 Needs는 단 세 가지였다.
1. 좋은 주인 만나기
2. 집다운 집(급하다고 대충 구하는 게 아닌, 장기간 살 집으로 내 몸과 마음이 쉼을 얻을 수 있는 집)
3. 큰 창문(햇살이 잘 들어올 것)
마음에 드는 집이 계속 안 나와 인터넷을 뒤지던 중, 두 집으로 후보를 추렸다. 길게 시간 끌고 싶지 않았다.
-처음으로 갔던 집은 사진과 외적 모습이나 분위기가 너무 달라 바로 패스!
-두 번째 집이 바로 8구역에 위치한 곳이었는데 느낌이 팍- 왔다.
그 '느낌'이란 무엇이냐. 바로 첫 통화에서였다.
"Hi, this is Kati!"
"Hello? Can you speak English? I saw your flat on facebook. Is it still available? (페북에서 집을 봤다. 아직 안 나갔나요?)
"Yes, it is. You want come and see the flat? Which day would be good for you?" (가능해요. 보러 올래? 언제가 좋아요?)
"As soon as possible, plz!" (최대한 빨리요!)
"I am working at the school now. Is it ok to make it tomorrow?" (나 지금 학교에서 일하는데, 내일 보는 거 괜찮겠어요?)
"That's also good. Are you a teacher? Sounds great!" (선생님이에요? 내일 좋아요!)
"No, I am workig as a coordinator at the university in Eger. It is a christian school." (아니요, 기독교 대학교에서, 코디네이터로 일해요.)
1. 헝가리어로 전화를 받은 그녀는 바로 능숙하게 영어로 대화를 옮겨갔다. (헝가리에 처음 왔을 때는, 단순 인사조차 헝가리어로 하지 못한 나. 영어 대화가 가능한 주인을 원했다)
2. 목소리가 상당히 신뢰감을 주는 톤이었다. (별거 아닌 듯해도 말투에서 오는 진정성을 무시 못 한다)
3. 선생님은 아니지만, 학교에서 일한다. (학교에서 일한다고 다 좋은 사람이란 건 아니다. 그렇지만 우선 목소리부터가 정직한 인상을 주었고, 일터가 학교이고 하니 전반적으로 반듯
한 사람이라 결론 내린 것이다)
4. 기독교 학교이다. (신기한 게, 굳이 기독교 학교란 걸 언급하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그녀가 이 말을 하였다는 것. 이건 운명이다. 크리스천이라고 다 좋냐. 아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올바른 크리스천에게 느껴지는 강직함, 그것이 있었다)
‘영어 유창 + 따스하지만, 정확한 어투 + 기독교 학교에서 일하는 여인’ 순전히 내 사심 가득한 판단 가운데서 오는 내 직감을 믿었다. ‘여기다!’
이제 햇살 잘 들고 하자 없는(?) 집만 확인하면 된다.
그다음 날, 집을 보자마자 바로 계약했다.
'이 집이 네 집이야...’하고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그리하여 내가 살게 된 동네, 부다페스트 8구역,
‘라코치역 + 페츠케 우쩌' (과거에 유대인들이 거주했던 동네)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집도 집이지만, 난 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메트로 역, 트램 길, 그 길 옆 작은 꽃집, 라코치 시장(사람들), 치가 카페, 중국 마트, 오이노쉬 바, 하나미 스시.. 그리고 그곳에서 나와 함께 호흡했던 라코치역 주민들을 잊지 못한다.
●Rakoczi ter 라코치 광장 (헝가리의 국민 영웅 격인 '라코치 페렌츠 2세'의 이름을 딴 광장, 이 나라엔 동상이 참 많다. 거리나 광장 이름도 헝가리 위인으로 도배되어 있다)
●Fecske utca 제비 거리 (어감이 좀 웃기지만, 페츠케는 헝가리어로 '제비'라는 뜻이다)
'라코치역'은 이름에 걸맞게 나의 영웅이 되어주었다.
우선 교통편이 최상이었다.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4호선 메트로 역과
24시간 동안 다니는 4,6번 트램(트램역 주변엔 유학생들이 많이 거주한다. 불금 보내고 난 후, 귀가가 수월하다^^)이 있었다.
푸른 하늘과 수평을 이루던 트램 길은 여름엔 쭉 뻗은 바다 같은 인상을 주고, 한 겨울엔 (이 길 전체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장식된다) 나를 황금마차에 올라타는 소녀로 만들어 주었다.
트램에서 내리면 바로 옆에 작은 꽃집이 하나 있었다. 거기에서 꽃 한 송이를 귀가하던 길에 가볍게 느껴지던 내 발걸음도 떠오른다. 지금 보니 참 싱그러운 나날들이었다.
집 가는 길목에 역사를 둘러싼 광장 공원엔 사계절 내내 색다른 광경이 펼쳐졌고,
신선한 과일과 야채를 매일같이 얻을 수 있는 라코치 시장, 시장 내에 편리하게 이용 가능한 마트(SPAR)도 내게 일상이란 그림을 완성시켜주는 형형색색 물감이었다.
그렇게 난, 부다페스트 시민이 되어가고 있었다.
라코치역 주변엔 유난히도 특이한 카페 & 건물들이 많았다. (사진 자료 찾다가 결국엔 못 찾았지만) 웬 히피 소녀가 살 것 같은 모양의 카페가 집 가는 길목에 있었는데 알고 보니 유럽 관광객들에게 매우 유명했던 곳이었다.
가만 보면 카페, 아니면 비스트로(bistro), 그도 아니면 브런치 집 같기도 한 곳에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모여 늘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곳에 앉아 있는 애들은 하나 같이 개성이 뚜렷했다.
웬만한 곳은 혼자서도 다 들어가 보고 찔러보는 나인데, 그곳만큼은 코에 코걸이라도 해야 들어갈 수 있을 거 같단 생각에 결국 사는 기간 3년 내내 구경만 하다 지나친 기억이 난다.
My first Home in Budapest -
여긴 ‘하우스’가 아니라 '홈'이었다.
살아가면서 더 진한 애정이 샘솟았던 곳이다.
노란 조명 불빛조차 내 맘에 쏙 들었던 나의 아지트.
이보다 더 좋은 집은 많았겠지만, 이 집주인들보다 더 좋은 사람들은 헝가리 어디에도 없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이들과의 인연에 감사하다.
헝가리에서 만난 나의 삼촌과 이모.
헝가리 여자 'Kati(카띠)'와 영국 남자 'Nick(닉)', 그리고 그의 두 아들과 며느리까지.. 지금은 내 페이스북 친구들이 되었다. ^^
이들 부부는 부다페스트에서 멀리(차로 약 2시간 거리) 떨어진 'Eger(에게르)'라는 도시에 산다.
에게르는 헝가리에서 유명한 와인 생산지이기도 하고, 부다페스트만큼이나 각종 볼거리가 풍부한 곳으로 인기가 많다.
이 나라 사람들이 워낙 일처리가 느린 것으로 악명 높은데,
닉과 카띠는 바로 옆동네에 사는 사람 마냥 언제, 어디서든 슈퍼맨과 슈퍼우먼이 되어 내게 달려와줬다.
그들의 아들과 인연을 맺게 된 것도 이 부부가 나에게 바로 도움을 주지 못 할 때, 부다페스트에 사는 아들들을 보내 필요를 채워줬기 때문이다.
닉 아저씨는 영국과 독일, 헝가리를 오가며 개인 사업을 하시고, 카띠 아주머니는 에게르에 위치한 대학교에서 영문과 친구들을 위해 코디네이터로 재직 중이시다.
아들 중 한 명(Patrick)은 미술 전공자라 이 집에 들어섰을 때, 그의 그림들을 처음 마주했던 기억이 난다.
"불편하면 그림 걷어 갈까?"
"아니! 정말 멋진 걸? 걸어둘래."
'진심'은 '진심'으로 연결된다.
세상은 여전히 선하다, 라는 걸 이분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헝가리 초기 생활에 두렵고 막막했던, 허기진 나날들을 온기로 가득 채워줬던 나의 영웅들, 히어로 s.
라코치역 나의 3대 단골집
1. Csiga cafe ('치가'는 헝가리어로 '달팽이')
이 카페 레몬에이드가 환상이다.
모든 음식엔 주방장의 고민과 정성이 깃들어 있었고, 그 덕분인지 직원들에게선 자부심이 풍겨 나왔다.
카페 분위기는 두말할 것 없다. 독특하지만, 정겨웠다.
1년 365일, 식사 때에 맞춰 가면 한 번에 앉기가 힘들 정도로 핫한 장소였다.
헝가리 현지인들 뿐만 아니라, 세계 여행객들에게도 인기 만점이었던 장소(한국 여행객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곳).
날이 밝아오면, 모자 푹 눌러쓰고 가서 멋스러운 브런치와 홈메이드 레몬에이드 한 잔이면 세상 가장 행복한 라코치 주민이 되었다.
더위에 지쳤을 때, 비어있는 의자에 툭- 걸터앉아 오고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누리는 헝가리의 생활 장면들도 나에겐 쉼이었고,
추우면 추운대로 따뜻한 수프를 음미하며, 이 카페의 온기를 머금는 것 또한 특별한 즐거움이었다.
2. Oinos Bar (오이노쉬 바) ★★★★★
부다페스트에 2,500여 개의 식당이 있다면, 이곳은 객관적인 지표로 30위 안에 드는 맛집이다. (순위에 관한 건, 한참 나중에 알게 된 사실)
이탈리안 음식 등 퓨전 요리를 제공하는 Bar 겸 레스토랑이었는데, 요리는 기본이거니와 와인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천국과도 같은 곳이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 사이에서 내가 헝가리 전도사로 불렸다면, 라코치역에서 나는 오이노쉬 전파자였다.
내가 사는 구역을 거쳐가는 사람은 그게 누구든 나와 이곳으로 향해야 했다.
일명 ‘기승전오이노쉬바’.
나는 술을 못 마시고, 안 마신다.
그렇지만 이곳에서라면 와인 한 잔은 내게 친구와도 같은 것이었다. (와인은 술 아니니?)
내가 한결 같이 레몬에이드만 마시니, 이곳 매니저가 어느순간부터엔가 "와인은 약이다. 나만 믿고 곁들여서 마셔봐라"하고 설득? 당한 끝에 그 후부터 매번 "오늘은 어떤 와인이 좋아?"하고 되물어서 마시곤 했다.
친구들을 데려가면 그들이 나 대신 와인을 홀짝홀짝 싹쓸이해주니, 덕분에 내 어깨가 한 뼘 정도 솟아오르기도 했다. (내가 이 좋은 곳에서 와인을 거하게 못 즐기니 바 직원들이 늘 아쉬워 했었기에, 어찌 보면 친구들로 인해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했던 거 같다)
오이노쉬 바는 내게 일 년 내내, 크리스마스 같은 곳이었다.
해가 지면 이곳은 항상 반짝였다. 식당 내부 조명이 라코치역의 별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밖에서 바라보면 한 겨울 매서운 추위에도 장작불 타오르는 듯한 따스함을 풍기던 장소였다.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나. 한 번은 집으로 돌아가는데, 이 bar 안에 사람들(긴 테이블에 둘러앉아 파티 형식의 모임이 잦은 곳이었다)이 와인잔을 부딪히는 그 모습이 너무 정겹고 포근해 보여, 한국에 있는 친구한테 전화해서 "나도 너네랑 이런 거 하고 싶어"하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귀여웠네. 나.
낮에는 혼밥용 리조또나 샐러드, 파스타를 먹으러 들렀고,
저녁에는 친구들을 끌고 가 분위기를 즐겼다.
허기진 밤이 되면 화덕 피자 한 판을 준비해두라고 부탁해 포장해서 집에서 호호 불며 먹었던 기억도 난다.
밤 12시까지 밝은 온기를 뿜어내던 곳이었다.
아무리 늦게 귀가하는 날에도 이 식당이 있어 돌아가는 길이 늘 안심이 되었다.
하루 걸러 하루 들렀던 공간이기 때문에 서버들, 매니저와도 두터운 친분이 생겼다.
이 집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들렀던 날에 매니저에게 "나 잠시 한국에 가 있을 거야. 그리고 돌아오면 이사를 갈 것이고... 대신 자주 놀러 올게"라고 이야기를 나눈 후, 한국에 도착해서 그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를 받았는데, 알고 보니 나를 많이 좋아했었다, 라는 고백이었다. (아.. 민망쓰 ㅎㅎ)
"나는 임자가 있는 몸이야.."라고 답을 해줬는데.. 잠시간 (한국에서) 쉬고 돌아온 부다페스트에서의 그는 더 이상 그 식당에 없었다. 지금은 직원의 대부분이 바뀌어 있어서 내가 알던 그곳이 아닌 게 돼버렸다.
이곳에서 살았던 오이노쉬와 지금의 오이노쉬는 다른 곳이다.
생각해보면, 음식과 와인의 맛, 멋스러운 분위기 때문이 아닌 나의 오고 가는 길에 내 길을 비춰주던 등불 같은 존재로 빛나 주었기에 이곳과 사랑에 빠지지 않았나 싶다.
3. Hanami sushi (하나미 스시) ★★★★
집 근처 쇼핑몰 1층에 자리한 일식당인데, 주인이 몽골계 한국인이다. (한국말 1도 못 하는, 그냥 헝가리인^^)
우직한 입매를 지녔고, 성실하게 초밥을 만들던 사장이 인상 깊어서 자주 갔었다. 자주 간 정도가 아니라 일주일의 1/3의 식사를 이곳에서 해결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전화만 해놓으면 나를 위한 정갈한 벤또 박스를 준비해주었던 그들이다.
가격 대비 맛도 훌륭하고, 무엇보다 조리하는 이들의 조용한 정성이 느껴지는 곳이어서 갈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평온한 마음으로 혼밥을 즐겼던 나의 최애 일식집 중 하나이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뉴욕 카페' ★★★☆
부다페스트에 웬 '뉴욕'카페??
이 카페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카페 이전에 뉴욕 라이프 보험 회사가 자리하고 있던 곳이다. 그 이름을 따서 지금의 '뉴욕 카페'가 탄생하였다. 전쟁 전에는 헝가리의 유명한 언론인, 예술가, 연예인들이 그들만의 시간을 즐기기 위해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고 한다.
카페 옆에는 멋스러운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5성급 호텔이 연결되어 있는데, 이 호텔에 묵는 투숙객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페에서의 아침 조식을 누릴 수 있다.
이 도시에 오면 꼭 가봐야 하는 카페로 알려진 '뉴욕 카페', 우리 집 옆 역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초반에 친구들을 끌고 많이도 가더랬다.
"우리 동네 카페에 한 번 가볼래?"하고 데려갔더랬다.
관광명소 같은 곳이기에 내 개인적 취향에서는 많이 벗어나지만, 그럼에도 한 번쯤은 들러서 기품 있는 장소에서의 커피와 디저트를 맛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참고로 음식 맛은 영.. 꽝이다.
그 외, 'Blaha Lujza Ter(블러허 루이저 광장)'
라코치역에 연결된 또 하나의 광장.
이 광장 사거리엔 '내 단골집이었던 스시집, 쇼핑몰, 맥도널드, 버거킹, 메트로 역사 내 지하상가(?)' 등이 있는데, 교통의 중심지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항상 많은 이들이 바삐 움직이는 곳이었다.
헝가리에서 보기 드문 '붐비는 광경'에 활기찬 기운까지 뿜어져 나오는 광장이다. 말 그대로 광장스럽다.
어학원을 다니며 거쳐야 했던 역이라 지금도 여전히 이곳을 지나칠 때면 그때의 그 생동감이 느껴져 흥이 돋궈진다. 몸이 기억하는 추억, 그것이 주는 힘은 역시나 놀랍다.
지금까지가 내가 살았던 지난 3년간 기억의 총체이다.
나의 내적 풍요의 초석이 된 부다페스트, '첫 고향'.
내게 허락되었던 수많은 만남, 지금은 추억이 되어버린 장소들을 끊임없이 선물로 받았던 곳.
매일의 '안녕'이 당연하지 않다고 여기며 하루의 소중함을 배웠던 곳.
울고 웃었던 나에게 어떤 모양이든 괜찮다고.. 토닥여준 곳.
막연했던 부다페스트의 아침을 기도로 열게 해 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축 처진 어깨를 만져주던 곳.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셀 수 없는 사랑을 받았던 곳.
받은 것 투성이라, 내가 받은 것들 두 배로 돌려줘야겠다고 다짐했던 곳.
어떠한 형태로든 온전한 내가 되길 바랐던 곳.
늘 하나님이 함께 해주신다 음성이 들려왔던 곳.
나에게 너는 그런 곳이었어.
내게 이곳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손 내밀어 줬던 친절한 동네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