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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 Oct 28. 2020

사람 냄새나는 곳, in Budapest

부다페스트 동네 시리즈


'이게 뭐지?'



묻지도 않았는데, 내 표정을 읽었는지 신권이라며 웃으며 거스름돈을 준다.



헝가리 화폐 '포린트'



집 근처, 중국 마트에 터줏대감 같은 그녀는 웃지를 않는다.

참으로 쉬크하다. 시큰둥해 보이는 그녀의 표정이 제 멋이라 느껴질 만큼. ‘웃음을 모르나?'라는 생각까지 해보았다.

‘그녀가 웃는다면?’ 하고 웃는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 이전에, '라코치 광장'역에 3년 정도 거주하면서 자주 그곳을 오고 갔다.

지금은 부다페스트 내에 한국 마트가 네 군데나 될 정도로 선택의 폭이 넓어졌지만, 불과 1-2년 전만 해도, '부다'지역 꼭대기에 단 하나의 한인마트만이 존재했었다. 범접하지 못할 하나의 성곽처럼.

그래서 '페스트' 곳곳에 흔히 발견 가능한 '중국 마트'나 아시안 마켓이 대체 장소로 쏠쏠했다.



김치, 라면, 떡, 만두, 어묵, 고추장, 된장, 한국 간장까지.. (이 정도만 있으면 한국 음식은 완성이죠?)

주요 품목들은 다 살 수 있었기에, 페스트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에겐 꽤나 유용한 곳이었다.

요즘은 K-food가 한창 인기라 불닭볶음면, 김치 등이 잘 나간다 한다. 오죽하면 외국인들이 먼저 다 쟁여(?) 갈까 봐 '물건을 숨겨두어야 하나' 할 지경까지 갔을까 -






다시 그녀 이야기



그녀는 늘 한결같다. 온 세상의 겨울처럼 차갑고, 헝가리의 여름처럼 건조하다.

내가 아무리 살갑게 인사해도 요지부동이다.



내게 딱 두 번, 말을 건네 온 적이 있다.



한 번은 일 년 전인가? 나더러 한국인이 맞냐며.. 한국 화장품을 쓰냐고 묻길래,

헝가리 제품, 유럽 제품, 한국 화장품 다양하게 이용한다 답했다.

덧붙여 나이를 묻길래(한국 스타일, 아시아 스타일? - 헝가리에 살면서, 나이가 몇이냐는 질문은 한국인을 제외하고는 처음이다) 대답했더니 자기가 아는 한국인은 나이에 비해 다 어려 보이고 피부가 좋다며, 쓰고 있는 브랜드가 궁금하다 했다.

그러면서 방긋 수줍게 띄운 미소,

그리고 오늘 거스름돈을 내어주며 그녀 답지 않게 묻지도 않은 말에 답하며 겸연쩍게 웃던 모습까지.



그 두 번이 생소하지만 '참 귀엽고, 진실되다'라고 느껴졌다. 독보적인 순간이었다



이런 걸 보면 사람은 '예외'의 것에 매력을 느낀다는 말이 사실인가 보다.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분위기가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란 것도 새삼 인지한다.


언뜻 비친 수줍음 사이로 그녀는 내가 생각한 '쉬크녀'보다는 아이와도 같은 '무공해녀'에 가깝지 않을까 라고 그려본다.



때론 웃음이 많지 않은 것에도 순기능이 있구나.



라코치 광장 (저 멀리 보이는 중국 마트)



라코치 광장과 시장




내 고향 같았던 동네, 라코치 띠르(광장)에는

이렇게 차가운 인상의 중국 친구도 있지만, 중국 마트 옆 옆집에 자주 가는 단골 바엔 언제나 내게 최적의 맛을 권해주는 다정한 매니저가 있다.

달팽이 카페(Csiga cafe)라고 불리는 나만 알고 싶은 장소도 있다. 과거에 머물고 있는 듯한 외관의 약국과, 현대식 약국이 나란히 있어 시간이 혼재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마트와 와인바 사이엔 '라코치 광장'을 멋스럽게 완성시켜주는 '라코치 시장'이 있는데,

그 안에는 흰 백발에 장발인 야성미(여름이면 매일 흰 나시 - 내복 같은 - 를 입고 있다) 넘치는 과일 가게 아저씨,

대각선 또 다른 과일 가게엔 푸근한 인상과 수더분한 차림새의 정직해(맛은 더 있는데, 가격이 흰 나시 아저씨 댁보다 좀 더 저렴하다) 보이는 커트 머리 여사장님이,

시장 안 마트인 'SPAR'에는 내가 본 헝가리인 중에서 가장 -주관적 기준- 자애로운 인상의 화장기 하나 없지만 한없이 빛나는 아우라의 우리 엄마 나이뻘 되는 캐셔 아주머니가 있다. 난 그녀만 보면 세상의 선함의 결정체를 보는 듯하다. 나눠본 대화라곤, “얼마입니까?” 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보고 싶은 x-동네 친구들 -



사실 광장이 주는 힘과 그곳을 향한 애정으로 페스트 지구, 8구역을 떠나오기가 힘들었다.

그 동네를 떠나며, 나는 멀리 가버리는 것도 아닌데, 영영 다시 오지 못 할 곳을 마주하는 것 마냥 시큰한 마음으로 그곳과 인사를 나눴다. '떠남'이란 것에 무뎌질 만도 한데, ‘내 감정만큼은’ 한결같이 부지런해서 까도, 까도 언제나 똑같은 모양이다.



자주 놀러 가야지.. 했는데, 역시나 사람은 '변심? 과 적응의 동물'

지금의 또 다른 우리 동네가 '좋아지고 있어서' 대중교통으로 15분 남짓 걸리는 그곳을 등한시하고 있다.

내심 전 동네 친구들에게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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