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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담도담 Oct 13. 2024

조금 특별한 모임의 추억

배려가 많은 곳에 사람들이 오래 머무른다.

주말 아침 일찍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캠핑장으로 향한다. 신랑의 대학 동기 모임 장소를 이번에는 캠핑장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분기별 가족모임이 되어버린 신랑의 대학 동기 모임은 조금 특별하다. 특별해서 특별하다기보다는 사람들의 배려와 모임을 끝까지 잘 이어가고자 하는 그들의 노력이 모임을 특별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그들의 가족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이 특별한 모임은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더 좋아한다.

모임 장소에 가면 언니, 오빠들과 친구 그리고 동생들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고, 맛있는 라면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도착하지 않은 여러 멤버들을 기다리며 혼자 운치 있게 텐트 안에 누워 글을 쓰면 더 잘 써질 것만 같아 시도해 보았으나 인터넷이 느리다 못해 내가 쓴 글이 날아갈 것 같은 위험을 느끼고선 마음을 비웠다.


그리고 도착한 멤버들과 이야기하며 오랜만에 만나 어색함을 풀어낸다.


나의 성격은 선택적 활발함이라 낯선 사람 혹은 가깝지 않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언제나 불편하고 만남 후에는 스트레스로 인해 극도의 피로감을 느낀다.


그래서 결혼 전 그리고 결혼 후 몇 년간은 모임의 참석이 내게는 여러모로 몹시 불편했었다.


그런데 10년 가까이 되는 지금은 네 친구가 내 친구고, 내 친구가 네 친구인 이 모임의 분위기가 편안하고 무엇보다 도덕적 개념이 잘 갖추어진 구성원들 덕분에 보고 배우는 것도 많다.


뿐만 아니라 아이가 크면서 모임을 즐거워하니 이 또한 일석이조의 기쁨이 되는 듯하다. 나 역시 결혼 후 이곳에 아는 지인이 거의 없다 보니 이제는 모임에 가서 서슴없이 수다를 떨고 푼수 섞인 모습도 보이며 나의 지인도 되는 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가족이 모두 모이면 30명이 넘는 이 모임이 이 토록 오래 유지되는 게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아마도 오리지널 멤버들의 노력 덕분이 아닐까 싶다.


어딜 가나 좀 더 배려하고 양보하는 이들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배려를 친구들이 알아주기 때문에 그들의 관계가 오래도록 지속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그 속에서 누군가는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불편함이 있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덕분에 우리는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고 와서 예전에는 불편하기만 했던 이 모임이 이제는 고맙게 느껴진다. 이들은 늘 한결같았으나 아마도 내 마음이 조금씩 열리면서 변화가 생긴 것 같다.




이렇게 모이면 매번 몇 명 어른들의 다정한 희생이 따른다. 아이들의 즐거움도 고려한 모임인 만큼 실내물놀이가 가능한 캠핑장이라 3시간 동안 두 명의 아빠는 자진해서 아이들 보호자로 동반입장 하였다.

 그들의 수고 덕분에 나를 비롯한 나머지 멤버들은 마음 편히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저녁을 준비한다. 아이들 역시 쌀쌀해진 가을 저녁임에도 온수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어른들이 준비한 저녁식사를 하고, 모닥불 앞에서 마시멜로를 구워 먹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훈훈해지면서 아이들의 기억 속에 어른들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적어도 '술만 마시는 어른들로 기억하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과 아이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어른들의 모습도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이들을 위한 시간 이후 어른들의 즐거운 저녁시간 역시 주어진다. 술을 마시는 어른들은 그 와중에도 아이들을 챙기며 좀비놀이도 하고 어두운 저녁에 어디선가 물고기도 잡아온다. 누군가는 주워온 밤을 구우며 아이들에게 까주기도 하고 그렇게 우리의 시간은 째깍째깍 흘러간다.


여전히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나는 낮에 커피를 두 잔이나 마셨음에도 잠이 너무 쏟아져 텐트에서 일찍 잠이 들었다. 보통은 잠자리가 바뀌면 늘 잠을 설치지만 이번엔 그냥 꿀잠 그 자체였다.

그렇게 아침은 눈 깜짝할 사이 찾아왔다.



캠핑을 할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아침시간이다. 자연의 품속이 편안하고 아침이면 시원 상쾌한 공기가 기분 좋게 잠을 깨운다.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나는 캠핑장에서 만큼은  이상하게 따뜻하고 달달한 다방커피가 생각난다.


하지만 오늘 아침은 모임을 준비한 임원의 센스 있는 준비로 별다방 캔커피를 마셨다. 따뜻하진 않았지만 공복의 달달한 커피가 나를 기분 좋게 해 주었다.


하지만 모닝커피와 아침공기를 함께 누리는 여유는 잠시뿐이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1박 2일로 텐트를 빨리 정리하고 헤어질 준비를 해야 했다. 24시간 만에  텐트를 치고, 정리하는 수고로움이 아깝기도 했으나 아쉬움을 남긴 채 텐트를 걷어내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친다.


나는 아쉬움이라는 감정은 그만큼 좋았기 때문에 다음을 기약하고 싶고, 기다려지게 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러한 아쉬움은 고마운 시간에 대한 마음이라 여긴다.




평범한 듯하면서도 특별한 이 모임은 친구들의 모임이지만 '가족'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그리고 그들만의 '추억'과 '우정', '배려', 마지막은 '술'이라는 단어를 연상하게 한다.

마지막 '술'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내가 이 모임을 너무 미화시킨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살짝 든다.


모이면 매번 무슨 얘기들을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중년인 그들이 모두 모이면  마치 그들의 대학시절로 돌아가 그들이 추억 속에 있는 것 같아 보일 때도 있다.


문득 '내가 나의 학창 시절이 그리운 것처럼 신랑과 그의 친구들도 그 시절이 그립겠구나!' 하는 생각에 나이를 먹어가는 우리 모두가 언제 어디서든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살아가는데 위안이 될 수도 있는 그들의 우정과 추억이 모두에게 변질되지 않고 오래도록 삶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의 한 부분이 되기를 희망한다.


사람이 과거에 묻혀서 사는 것은 안되지만 추억을 통해 삶의 위안과 마음의 휴식 시간을 가지는 것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모임은 신랑과 그들에게 그리고 가족들에게도 조금은 특별한 듯하다.


덕분에 나와 아이 역시 그들과 그들의 자녀와 함께 소중한 추억을 쌓아간다.


상황이 된다면 자주 이렇게 자연 속에서 자연을 느끼고  때로는 하늘을 바라보며 다 함께 웃으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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