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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담도담 Oct 12. 2024

치킨에 의미를 부여하다.

무조건 맛있는 그리고 사랑이 담긴 치킨!

몇 개월 전부터 신랑은 유튜브에서 탕수육이며 치킨, 닭갈비 등 각종 요리 채널을 섭렵하기 시작하더니 한 달에 1~2번 아이와 내게 직접 요리를 해주곤 한다.


나는 그의 요리하는 아름다운 뒷모습을 바라볼 때면 기분이 좋아지고 고맙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뜨끔거리고 따끔거린다.


뜨끔하는 마음은 내가 힘든 요리는 하지 않는데서 오는 반성 같은 것이고 따끔하는 마음은 나와는 다른 면에서 너그러움을 보여주는 그의 모습에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여러 감정이 뒤섞인 조금 복합적인 마음이다.


그가 요리하겠다고 하면 그는 일류 셰프가 되고, 나는 자동적으로 보조 주방장이 된다. 그 말은 재료 손질 정도는 준비하고 도와주는 나는 양심 있는 여자란 것이다. 동시에 뒤처리도 당연히 내가 한다.

그람! 그람! 당연히 내가 해야지...


가끔 신랑에게 양아치 짓을 하여 "장아치"라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나란 여자 양심은 있는 여자다.




24년 10월 9일 목요일 이번에는 간장 치킨을 만들어 준단다. 후라이드만으로도 황송한데 간장치킨이라니  게다가 닭요리는 내가 만지지 못하는 재료라 신랑 혼자 준비하고, 완성해야했다.


전에는 신랑이 요리해주면 그저 기분 좋고, 고마운 마음이 전부였는데 이번에는 그간 심경의 변화들로 인해 여러 생각이 들었다.


기분 좋고, 고마운 마음 외에 미안한 마음도 드는 것이다. 물론 성격일 수도 있지만 정확히 개량해 가며 나보다 정성스럽게 요리하는 모습에 나 자신을 반성해 보게 된다. 


기름이 잔뜩 묻은 주방 도구들을 보며 10월까지만 계약된 나의 단기 알바 일정을 묻는다. "내일은 쉬지?" 라며... 그리고 설거지 거리가 전부 기름이라 치우는 게 힘들지 않을까 걱정을 한다. 하지만 Don't worry !


나의 부탁으로 가까운 지인에게 줄 것까지 튀기느라 고생한 신랑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기에 나는 so cool하게 걱정 말라며 저녁에 조금씩 조금씩 모두 치워버렸다. 그래야 서로 마음이 편할 듯했기 때문이다.


치우느라 힘들긴 했으나 교촌치킨 허니콤보와 99.999%의 싱크로율을 자랑한 신랑표 치킨 맛본 나는 정성에 감동하고 맛에 또 한 번 감동하여 "아이고 감사합니다. 나의 신랑님" 모드로 변경한.


무엇보다 아이가 맛있게 잘 먹어 좋았고, 아빠의 사랑을  느끼는 건지 "치킨 만들어 주는 아빠는 우리 반에 나뿐일 거야!"하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집에서 새 기름으로 튀긴 그 치킨은 맛이 없어도 맛있어야 하는 치킨이다. 그런데 맛이 프렌차이져 치킨과 흡사하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마치 그의 딸이 된 것 마냥 아이와 나는 엄지로 쌍따봉을 내밀며 맛있다고 폭풍 칭찬한다.


닭을 튀기며 튀김 옷이 조금이라도 벗겨지면 마음에 안 들어하는 그를 보며 나는 옆에서 "괜찮다"라고 우쭈쭈 우쭈쭈 한다.


레시피가 게시된 블로그 댓글 창에 누군가 그냥 사 먹겠다고 쓴 이유를 알겠다며 나를 보며 조금은 개구진 표정으로 웃는다. 그리고 진심을 다해 말한다.

"수제 치킨은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이다" 라고...

 그의 말을 듣고 "그래 고생했어!" 하며 격하게  공감해 주는 나는 프로공감녀다.


하지만 아이가 계속 맛있게 먹자 고새 마음이 바뀐 신랑은 깨끗한 기름으로 튀긴 치킨을 또 해주겠노라 약속 한다.


대신 분기별 치킨타임을 선언한다. 우리 집 식구의 식습관 개선이 가장 큰 이유이고, 더불어 집에서 하는 닭튀김은 인간적으로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맛있는 간장치킨을 먹으며 그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치킨이야 시켜 먹으면 그만이지만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 동안 그의 방식데로 아이와 내게 가족애를 보여주고자 함이 느껴졌다.


지금 비록 가족애가 넘치는 에피소드를 기록하지만 한때 우리에게도 먹구름으로 힘들었던 상황들이 많았다. 그것이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이였든 혹은 각자의 잘못이였든 우리에게도 분명 힘든시간이 존재했고, 지금도 그러한 시간은 존재한다.


하지만 이제는 이전 보다 나은 방식으로 그리고 다른 시각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싶다.

이러한 나의 태도가 신랑에게도 조금은 긍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희망도 가져본다.


그리고 이렇게 신랑의 미담을 기록해 둠으로써  그로 인해 서운하거나 속상할 때 한번 들여다보고 정상 참작 이라는 것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뒤돌아보면 이 또한 우리의  추억이 되어 있을 것이기에 나는 좀 더 선명하게 기억하기 위해 오늘도 기록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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