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소중한 물건을 어떻게 다루시는지?
여기서 소중한 물건이란 굳이 특별한 의미나 애틋한 사연이 있을 필요는 없다. 오랜 시간 고민하다 샀거나, 정말 원해서 큰 맘먹고 샀거나, 나름대로 귀하다 여기는 물건이라면 뭐든지 상관없다. 어쨌든 손에 들어온 그 물건을 먼지 한 톨 쌓이지 않게 고이 보관해 두는지, 혹은 바로 포장을 풀어헤친 뒤 흔적을 묻히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나는 명확하게 후자다.
작년에 이사를 오면서 거실이 생겼다. 이전엔 원룸에서만 살았던 터라 공간을 구분할 여유 없이 효율적인 구조로만 살았다. 들뜬 마음에 거실을 어떻게 꾸밀까 고민하다 과감히 소파를 없애기로 했다. 포근하고 안락한 소파가 있다면 하루의 피로를 싹 날릴 쉼터가 됐겠지만, 게으른 내가 하루 종일 소파에 늘어져있을 모습이 선해서 없애기로 했다. 대신에 널찍한 테이블을 들였다. 두꺼운 원목 상판에 가로길이가 무려 1800 센티미터나 되는 6인용 테이블이다. 혼자 쓰기에 과한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이것저것 늘어놓고 보고 쓰는 내겐 원룸에서는 꿈도 못 꾸던 가구였다. 그래서 답지 않게 고심하다 마음에 쏙 드는 테이블을 찾아 거실 중간에 놓았다. 그러니 확실히 누워있는 시간이 줄어서 만족스러웠다.
문제는 책 읽을 공간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원목 테이블은 앉아서 글을 쓰거나 일을 하기엔 최적의 가구지만, 오랜 시간 책을 읽기엔 마땅치 않다. 허리가 뻐근하고 엉덩이가 배긴다. 그러던 차에 안락의자라는 완벽한 책 읽기 동반자를 찾았다. 폭신한 쿠션에 높은 등받이는 허리뿐만 아니라 책을 읽다 보면 애매해지는 목도 편하게 기댈 수 있었다. 그에 짝꿍 아이템인 스툴과 미용실을 가면 주는 반달 쿠션을 더하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사랑하는 노란색의 안락의자가 맞아주는 거실이 회사에서도 눈앞에 아른거렸다. 물론, 의자가 없더라도 회사에선 언제나 집이 아른거리지만.
안락의자는 패브릭 소재다. 고양이가 스크래치로 사용하기엔 안성맞춤이다. 그리고 나는 반려묘 영춘과 함께 산다. 영춘이는 의자의 포장을 풀자마자 폴짝 뛰어올라 가열하게 스크래칭을 했다. 고양이 아니랄까 봐 의자에서 제일 높은 등받침 위에 드러누워 박박 긁어댔다. 사실, 밝은 노란색 의자에 혹여 때가 탈까 찝찝했는데, 박박 거리는 소리를 들으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오히려 영춘이 그렇게 해줌으로써 이 의자가 원래 목적대로 ‘편하게 기대앉아 책을 읽는 곳’으로 느껴졌다고 할까.
친구 S는 나와 반대의 인물이다. 그는 소중한 물건은 어떤 것이든 완벽한 타이밍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으면 포장을 풀지 않는다. 그 덕에 그의 방에는 박스 그대로의 물건이 쌓여 있다고. 왜 바로 쓰지 않냐고 물으면, 그는 도리어 이해 안 된다는 듯 받아친다. ‘아끼는 물건을 어떻게 막 써?’ 하며.
소중한 물건을 두고 사람마다 다르게 대한다는 점이 참 재미있다. S는 원하는 순간에 딱 알맞게 물건이 쓰이는 것을 떠올리며 만족할 테고, 나는 어서 물건을 마음대로 편히 쓰는 순간이 만족스러울 테고.
소중한 대상에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은 나와 S처럼 사람마다 다르겠지. 나의 경우, 비단 물건뿐만 아니라 삶의 많은 부분이 그랬다. 사람도, 일도, 꿈도. 마음이 가지만 쉽게 다가가지 못하던 사람에게는 웬만하면 숨기던 비밀을 슬쩍 내보이고 나면 편하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회사에서 새 프로젝트에 투입돼 갈피를 못 잡더라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큼직한 보고를 한 번 끝내면 애착이 생겼다. 전공도 재능도 없이 이야기 만드는 작가라는 꿈을 꾸면서 막막하기만 했지만, 이 또한 공모전에서 후드득 떨어지고 나니 되려 언젠가는 할 수 있을 거다 싶어 꾸준히 쓰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안락의자에 앉아 영춘이의 박박 스크래칭 소리를 들으며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소중한 것을 소중한 만큼 진득하게 누리기 위해서.
#Cover Photo by Annie Spratt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