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셨습니다! 정말 대단해요.’ 이어폰으로 낭랑한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25분을 쉬지 않고 달렸다. 등은 흠뻑 젖었고, 이마에서부터 흘러내린 땀으로 얼굴도 진득하다. 러닝의 완전 초보, 그러니까 나 같은 ‘런린이’들을 위한 러닝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그 앱을 나도 쓰고 있다. 총 24개의 훈련 코스 중에서 23번째를 마쳤다. 코스를 하나씩 완주할 때마다 완료 도장이 쾅쾅 찍히는데, 이걸 모으는 재미가 있다.
초등학교에서 받던 ‘참 잘했어요!’ 스티커가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 그 시절에도 스티커가 받고 싶어 손을 번쩍 들어대던 어린이는 커서도 도장을 받기 위해 달린다. 아니, 아직 덜 큰 걸까? 혹여 무릎에 무리가 갈까 안전 속도를 유지하며 달리는 내 옆을 쏜살같이 스쳐가는 명랑한 어린이들을 떠올리면 내가 확실히 어린이는 아닌 것 같지만, 또 ‘어른’이라고 하기엔 그 단어가 주는 무게를 짊어질 용기가 쉬이 나지 않는다. 그러니 어른, 이. 어린이의 맑고 순진무구한 눈동자는 없지만, 어른의 무게를 영차 짊어지기엔 아직은 겁이 나는 그 중간의 존재. 어른이는 오늘 하루를 달리면서 시작했다.
오후엔 쇼핑몰에 갔다. 얼굴에 한가득 웃음을 걸고 엄마 아빠의 손을 잡은 아이들, 생기가 가득하다. 에스컬레이터에서 앞에 선 남자는 레고 박스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수천 조각은 됨직한 타이타닉 레고였다. 저 선물을 받고 뛸 듯 기뻐하는 아이를 떠올려봤다. 아주 똑똑하고 영리한 아이일 거라 잠깐 상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남자가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일 수도 있겠다 싶다. 어린이 날엔 어린이만 선물을 받는 건 아니니까. 어린이를 건강하고 사랑스럽게 키워낸 엄마 아빠도, 금쪽같은 평일 휴일을 얻은 직장인도 어떤 이유에서든 선물을 받을 수 있다.
J와 다가올 여름을 기대하며 올해의 첫 빙수를 먹으며 말했다.
커피 캡슐 다 먹었어? 하나 사줄까?
갑자기 왜?
그냥, 주고 싶어서.
J는 웃어넘겼지만, 그냥. 다들 선물을 받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너에게 뭐라도 주고 싶었다. 어린이 날이잖아.
어린이를 위해 부단히 한 일은 없지만, 어린이들 덕에 단비 같은 하루를 보낼 수 있어 고맙다. 고마워요, 어린이들! 무탈하고 건강하기를.
# Cover Photo by MI PHAM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