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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송이 May 05. 2021

어린이들이 선물해준 하루


달리는 어른, 이.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대단해요.’ 이어폰으로 낭랑한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25분을 쉬지 않고 달렸다. 등은 흠뻑 젖었고, 이마에서부터 흘러내린 땀으로 얼굴도 진득하다. 러닝의 완전 초보, 그러니까 나 같은 ‘런린이’들을 위한 러닝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그 앱을 나도 쓰고 있다. 총 24개의 훈련 코스 중에서 23번째를 마쳤다. 코스를 하나씩 완주할 때마다 완료 도장이 쾅쾅 찍히는데, 이걸 모으는 재미가 있다.


        초등학교에서 받던 ‘참 잘했어요!’ 스티커가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 그 시절에도 스티커가 받고 싶어 손을 번쩍 들어대던 어린이는 커서도 도장을 받기 위해 달린다. 아니, 아직 덜 큰 걸까? 혹여 무릎에 무리가 갈까 안전 속도를 유지하며 달리는 내 옆을 쏜살같이 스쳐가는 명랑한 어린이들을 떠올리면 내가 확실히 어린이는 아닌 것 같지만, 또 ‘어른’이라고 하기엔 그 단어가 주는 무게를 짊어질 용기가 쉬이 나지 않는다. 그러니 어른, 이. 어린이의 맑고 순진무구한 눈동자는 없지만, 어른의 무게를 영차 짊어지기엔 아직은 겁이 나는 그 중간의 존재. 어른이는 오늘 하루를 달리면서 시작했다.



그냥, 주고 싶어서.

        오후엔 쇼핑몰에 갔다. 얼굴에 한가득 웃음을 걸고 엄마 아빠의 손을 잡은 아이들, 생기가 가득하다. 에스컬레이터에서 앞에 선 남자는 레고 박스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수천 조각은 됨직한 타이타닉 레고였다. 저 선물을 받고 뛸 듯 기뻐하는 아이를 떠올려봤다. 아주 똑똑하고 영리한 아이일 거라 잠깐 상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남자가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일 수도 있겠다 싶다. 어린이 날엔 어린이만 선물을 받는 건 아니니까. 어린이를 건강하고 사랑스럽게 키워낸 엄마 아빠도, 금쪽같은 평일 휴일을 얻은 직장인도 어떤 이유에서든 선물을 받을 수 있다.


J와 다가올 여름을 기대하며 올해의 첫 빙수를 먹으며 말했다.


커피 캡슐 다 먹었어? 하나 사줄까?

갑자기 왜?

그냥, 주고 싶어서.


J는 웃어넘겼지만, 그냥. 다들 선물을 받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너에게 뭐라도 주고 싶었다. 어린이 날이잖아.


어린이를 위해 부단히 한 일은 없지만, 어린이들 덕에 단비 같은 하루를 보낼 수 있어 고맙다. 고마워요, 어린이들! 무탈하고 건강하기를.


# Cover Photo by MI PHAM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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