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덥지근한 날씨의 연속이다. 여름이니 더운 게 당연하다는 말을 종종 내뱉고는 했는데, 올해는 그런 말도 쏙 들어간다. 자다가도 더워서 깬다. 선풍기와 에어컨의 예약시간이 끝난 것을 몸이 바로 알아채서 그렇다. 집 앞으로 근린공원이 있어 창문을 열어놓으면 마치 숲의 그것과 같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 더울 새가 없었는데 그것도 6월까지였다. 7월에 접어들면서는 창을 열면 되레 살벌한 열기가 들이닥친다. 태울 듯이 뜨겁고 진득하게 달라붙는 끈적한 습기에 여기가 동남아인지 한국인지 모를 정도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지금은 방콕보다 서울의 온도가 더 높다. 태양이 무서워 외출을 사리게 되는 날씨지만, 언제 끝날 지 모를 바이러스 덕에 강제로 외출을 자제하고 있으니 이래저래 축 처지는 날들이다.
거리 두기 4단계로 접어들면서 재택근무가 재게 되었다. 출퇴근이 없어 시간 여유가 늘었다. 동시에 늘어져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출퇴근을 할 때는 시간을 쪼개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집안일을 했는데, 여유로워졌음에도 그런 활동은 줄었다. 그 짧은 사이에 뭉그적거리는 게 몸에 베인 탓이다. 습관을 만드는 데는 1만 시간이 걸린다는데, 습관이 무너지는 데는 2주면 충분했나 보다. 아니면, 내 습관이 덜 자리 잡은 탓이었을까? 재택근무를 마치고 하릴없이 침대에 늘어져 있다 깜빡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어느새 캄캄한 새벽, 나의 고양이 영춘도 이미 잠든 시간이었다. 침실 창문 너머로 새까만 풍경을 멍하니 봤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쉽게도 모두가 잠든 시간에 나만 깨어있는, 또는 잠들었다 깨니 낯선 세상에서 눈을 뜬 것 같은 그런 낭만적인 기분은 아니었다. 오히려 허탈하고 허무한 그런 감정에 가까웠다. 거실에서 침실로 퇴근하고 슬라임처럼 늘어져있다 알게 모르게 잠이 들면 어느새 하루가 사라졌다. 그런 날이 몇 번 반복되니 끝도 없이 처졌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운동을 하고, 한 끼를 만들어 먹는 것처럼 생산적인 활동이 전혀 없는 날이 쌓여가니 내가 언제 그런 일을 했었나 싶게 까마득해졌다. 마치 처음부터 나는 그런 일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래선 안돼. 새까만 창밖과 마찬가지로 까만 천장을 보며 불현듯 생각했다. 이래선 정말, 안된다.
다음 날에는 조금 일찍 일어났다. 보지도 않으면서 무의미하게 틀어두던 넷플릭스 대신 유튜브에서 '스터디 위드 미' 실시간 영상을 틀었다. 내가 액체가 되어 흐르는 동안 잃어버렸던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하루를 빼곡히 채워 쓰며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정진하는 모습을 보며 약간의 반성과 시기의 시간을 가졌다. 시기와 질투는 대체로 가장 강한 원동력이 되니까. 실제로 나에게는 그 두 가지가 매우 큰 영향력이 있었고, 덩달아 나도 꽉 찬 하루를 살고 싶어 졌다. 이른 아침, 자리에 앉아 거리 두기 기간 동안의 계획표를 짰다. 각 시간대 별로 하나씩 채워져 가는 할 일 목록이 낯설면서도 익숙한 안정감을 줬다. 나는 원래 이런 계획과 지키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액체처럼 흐르던 의지가 서서히 응고되어 형태를 잡아가고 있었다.
지난 2주간의 액체화는 무너진 일상에서 비롯되었다. 게으름도 관성이라 한 번 늘어지면 끝이 없다. 누워있는 것에 익숙해진 내 몸과 마음이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을 잃어버린 것이다. 일과 생활의 균형을 위해선 먼저 일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한창 치이면서 바쁘게 일할 때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야 의미를 알겠다. 일은 내 일상을 단단하게 유지하는 한 부분이다. 그것이 돈벌이를 위한 회사의 업무든, 목표로 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과제든 마찬가지다. 무너지지 않는 일상을 위해 오늘의 할 일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다. 어느 날 설핏 잠들었다가 깨어난 새벽에 느끼는 감정이 파도처럼 들이닥치는 허무가 아니라, 할 일을 모두 끝마친 뒤 깊은 휴식에서 깬 후에 느끼는 만족과 기쁨이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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