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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송이 Apr 03. 2018

착한 사람은 회사를 오래 다니지 못한다

착한 건 좋은 거라고 했는데 대체 왜...


"여러분, 회사는 정글입니다."     


입사 후 신입 사원 연수를 받던 시절, 한 선배는 저런 말을 남겼다. 그가 말한 정글이 타잔과 제인이 나무 사이를 웃으며 넘나드는 평화로운 곳을 의미하진 않으리라. 그땐 저 말이 진리인 줄도 몰랐다. 알았다면 좀 더 날을 세우고 회사에 뛰어들었을 텐데, 그땐 마냥 순진무구한 얼굴로 눈을 빛내며 회사에 대한 환상을 마구마구 키우기에 바빴다.     


일 많기로 소문난, 그에 비례해 담당의 능력이 뛰어나 배울 점 또한 많다는 그런 팀에서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갓 대학을 졸업한 신입의 눈에는 말없이 묵묵하게 앉아 업무를 해결하는 선배들이 그저 멋있었다. 그 묵묵함이 입 벌릴 시간에 업무를 하나라도 더 쳐내서(해결이 아니라 쳐내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집에 일찍 가려는 필사적인 몸짓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나 또한 침묵의 행진에 물 흐르듯 동참하고 있었으니...     


팀을 떠나서, 우리 회사는 객관적으로 좋은 회사다. 사내 문화가 부드럽고 복지가 튼튼하다. 대외적인 이미지도 좋고, 내부 만족도도 높다. 아무것도 없던 상태에서 영차영차 하면서 함께 성장한 역사가 있어 팀 간에 협력도 잘 된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다들 참 나이스 했다. 입사 후로 일 년간 애사심은 하늘을 뚫을 기세였다. '회사가 정글이라니, 그냥 하는 말이었군.' 이런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런 착각이 와장창 깨지기까진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회사가 정글이라고? 그렇게 예쁘게 포장해서 말하다니! 여기보단 정글이 편할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회사가 정글이라면, 먹이사슬은 ‘착한 정도’로 나뉠 것이다.

착할수록 아래로, 그렇지 않을수록 위로. 나는 먹이사슬의 최하층에 위치하는 게 분명했다.      


나는 남들보다 훨씬 민감하다. 상대의 말이나, 행동, 눈빛, 분위기 그런 것들에 특히 그렇다. 일자 샌드의 '센서티브'에 따르면 민감한 이들은 숨어있는 뉘앙스를 남들보다 더 많이 인식하고 받아들인 인풋(input)을 더 깊은 곳에 입력한다.


갈등 요소가 있는 환경에서 버티기가 매우 버겁고, 극도로 피로를 느낀다. 동시에 공감 능력은 굉장히 뛰어나다. 상대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할 수 있다. 이런 공감 능력 덕분에 민감한 이들은 회사에서 '착하다'라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런 평가와 동시에 회사 생활은 더욱 버거워진다.     


남들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했다. 그리고 쓸데없이 겸손하다. 내가 한 일을 적절하게 뽐내는 능력도 회사에선 필요한데, 그런 것은 나와 거리가 멀었다. 조금 주목받으면 얼굴도 쉽게 붉어진다. 수줍고, 말 잘 듣고, 요청 거절하지 않는 다루기 쉬운 착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회사에서 갈고 닦은 취미는 자책하기, 특기는 혼자 울기가 됐다.


일하는 것은 크게 힘들지 않았다. 일이야 하면 되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나는 월급을 받으니까. 정말 힘든 건 사람이었다. 업무를 하면서 어쩔 수 없이 부딪히게 되는 사람, 그리고 그들의 말이 나를 힘들게 했다. 칼처럼 심장에 꽂히는 날카로운 것들이 자주 있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이슈가 있었고, 누구의 잘못이라고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누군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알아서 했었어야죠. 내가 이런 것까지 챙겨야 하나요?" 내가 미리 챙겨야 하는데 놓쳐서 상대에게 폐를 끼친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턴 잘 챙기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돌아서서 많이 자책했다. 집에 와서 일기도 썼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 탓은 아니다. 오히려 상대가 챙겼어야 할 일이지만, 죄송하다고 말하는 순간 그것은 나의 책임이 되기 일쑤다.                    




착한 사람은 회사를 오래 다니지 못한다.

그들에게 온갖 갈등이 모여 있고, 사람과 끊임없이 부딪혀야 하는 회사만큼 숨 막히는 곳은 없다. 회사를 오래 다니면 그런 것에 무뎌지기 마련이겠지만, 쌓이는 스트레스가 저절로 해소되지는 않는다. 점차 쌓인 독은 언제 터질지 모른 채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것이다. 독이 퍼지면 몸과 마음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그런데도 회사에 다녀야 한다. 저마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글과 돈 때문이다. 글을 깊이 있게 쓰기 위해 공부를 더 하고 싶고, 그러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글을 풍부하게 풀어나가기 위해 다양한 경험과 만남이 필요하고, 변화가 잦은 회사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민하던 중, 최근에 읽은 책이 많은 도움이 됐다. 김혜남 작가의 '당신과 나 사이'에서는 너무 멀어서 외롭지 않고 너무 가까워서 상처 입지 않는 사람과의 거리를 찾는 법에 관해 이야기한다.


내게 필요한 건 적당한 거리감이다. 상대의 태도에 숨어있는 뉘앙스를 읽고 지레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는 그와 나의 거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픈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사람에게 '저 사람이 뭐라고 해도 나한텐 별로 안 중요해.'라고 생각하거나, 업무를 넘기려는 상대에게 '안타깝긴 한데 내가 피해를 보면서까지 챙길 필요는 없지.'라는 태도를 연습 중이다.


Who cares? 조금은 뻔뻔해질 필요가 있다.


내게 회사에 다니는 일은 하루하루가 도전이다. 하지만 어쩌랴, 지금의 회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것을. 착한 사람도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거리 두는 방법에 집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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