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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송이 Apr 12. 2018

회사는 버티면서 다니는 곳이 아니다

그런 순간이 오면, 망설임 없이 뒤돌아서도 되지 않을까.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6년간 다니던 회사를 떠나는 선배에게 건넨 말이었다. 그녀는 수고했다는 말만 들으면 울컥한다고 했다. 정말 내가 이 회사에서 수고가 많았지, 인정받는 기분이라고 했다. 눈시울이 살짝 붉어지며 미소 짓는 그 얼굴은 말 그대로 '시원 섭섭'해 보였다.      


회사에 다닌 지난 3년간, 신입 혹은 경력직의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왔고, 또 그만큼 오랫동안 함께한 이들이 떠나갔다. 알게 모르게 조용히 떠나간 이들은 많지만 직접 마지막 인사를 나눈 이들은 많지 않다. 보통은 전체 임직원에게 메일을 통해 이별을 말한다. 아무래도 떠나는 마당에 직접 얼굴을 보며 인사를 나누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다지 친하지도 않았기에 마땅히 나눌 대화가 없는 것도 이유겠지. 대부분 언제 떠났냐는 듯이 기억에서 쉽게 잊힌다. 회사는 업무를 하는 곳이다. 업무를 함께 하지 않으면 관계가 끊어지는 게 당연하다.

   

그 단순한 사실이 가끔, 아주 많이 속상하다. 회사에는 불편한 사람도 있지만 좋은 사람도 많다. 정글에서 함께 아등바등 생존해 온 정든 동료를 떠나보내는 일에 무뎌지기란 쉽지 않다. 붙잡을 수도 없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들의 멋진 앞날을 응원하는 수밖에.          




퇴사하는 이들의 뒤에는 언제나 말, 말, 말, 말이 남는다.


출처 없는 소문이 난무한다. 어디 대학원에 들어갔다더라, 부모님 사업을 물려받는다더라, 어디로 이직한다더라, 연봉은 얼마라더라, 또는 카페를 차렸다더라. 잠깐 웅성거리다 말 뿐이지만, 그 무수한 말 중에 단연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 바로, “결국 못 버텼네.”다.   

내가 퇴사했을 때 그런 말을 들을거라 생각하면...

회사는 버티면서 다니는 곳이 아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굳이 버티면서까지 다닐 필요는 없는 곳이다. 내가 부양할 가족이나 떠안은 빚 없이, 내 몸 하나 잘 건사하면 되는 사람이라서 쉽게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회사는 버티면서까지 다닐 필요가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다니는 그 회사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일할 곳은 많고, 버티면서 일해야 되는 그곳보다 나에게 잘 맞는 다른 좋은 회사가 분명히 있다.      


버티지 못하는 게 아니다. 하고 싶은 것을 참지 못해서 떠나는 것이다. 원하는 일을 발견해서, 꿈꿔오던 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혹은 정말 그냥 쉬고 싶어서. 뭐든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 퇴사를 결심했을 것이고, 남은 이들이 뒤에서 쉽게 내뱉는 것보다 몇 배의 고민을 당사자는 했을 것이다. 우리 모두 ‘회사원’이 되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했었는지 알지 않는가? 그런 회사를 떠나기로 마음먹은 사람의 용기와 말 못 할 속내를 어떻게 단지, ‘못 버텼다’는 한 마디로 단정 지을 수 있을까.          




6년을 일하고 회사를 떠난 그 선배는 최근 이태원에서 작은 레스토랑을 운영한다.

그곳은 선배의 취향을 잔뜩 녹여낸 우아하고 빈티지한 인테리어와 저녁 즈음의 아름다운 노을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작년에 회사를 떠난 선배는 페루에 있다. 코이카에서 근무하며 페루 곳곳을 여행하는 사진이 가득한 SNS에는 반짝거리는 활기와 즐거움이 가득하다. 조만간 회사를 떠날 예정인 동기는 먼저 제주도에서 2주간 머물 예정이라고 한다. 적어도 3개월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쉬고 싶다고 했다. 정말 좋겠다, 봄과 여름의 여유를 제대로 만끽하겠네. 진심을 담아 그렇게 말했다.

 

퇴사 후의 삶을 멋지게 꾸려나가는 사람들이 많다. 계획을 가지고 퇴사를 했든, 그렇지 않든 결국엔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회사는 결코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회사에 속해있는 시간은 아주 훗날에 돌이켜보면 찰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지금 보다 잘 살고 싶으면 퇴사해야 해!”라는 허황된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나의 노력과 최선을 쏟아부은 이 회사가, 정든 이 곳이 나를 ‘겨우 버티게’ 만드는 순간에는 망설임 없이 뒤돌아서도 되지 않을까. 나는 이 곳에서 버티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찾으려 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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