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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송이 Mar 10. 2018

시인 윤동주, 부끄러움을 말하다.

윤동주-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 2018년 3월 1일 작성한 글입니다.

※ 커버 표지는 영화 '동주'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 서시(序詩), 1941.11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숨기고 싶어 한다. 약육강식(弱肉强食), 약자의 살은 강자의 먹이가 된다는 옛말을 어느 정도는 진리로 받아들여야 하는 삶에서 나의 부끄러움을 상대에게 보이는 것은 분명 피하고 싶은 일이다. 그런 부끄러움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마음에서일까.


초판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 표지 디자인

 회사 바자회에서 저렴하게 구매했던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詩)’를 펼쳐보았다. 1955년 출판되었던 표지 디자인을 그대로 가지고 온 시집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부끄러움을 말하는 시인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시인이 보는 하늘은 부끄럽게도 푸르고, 시인이 듣는 벌레의 울음소리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이다. 시인에게는 쉽게 쓰이는 시조차 부끄럽다.


 윤동주는 일제의 탄압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다 문학으로써 대립한 대표적인 저항 시인이다. ‘저항 시인’ 이라는 단어가 주는 호전적인 느낌과는 다르게, 그의 시에는 강하게 비판하는 단어나 문장은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아름다운 언어와 운율로 일관되게 부끄러움을 이야기한다. 부끄러움의 대상은 언제나 윤동주, 그 자신이다.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위에 섰다.

 - 바람이 불어, 1941.6     


 그는 시를 통해 자신의 부끄러움을 상기하고, 괴로워하는 일을 반복한다. 일제강점기는 영화, 드라마, 문학에서 끊임없이 주제가 되는 치욕스러운 역사의 기록이다. 우리는 교육을 통해 그 시대에 당당히 목소리를 내고 용기 있게 희생한 많은 독립운동가의 이름과 업적을 배운다. 윤동주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 잘 아는 당대의 지식인이었다. 그런 그는 시대에 굴하지 않고 항일 운동의 최일선에서 당당히 맞서는 동료를 보면서, 어떤 연유에서든 함께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며 괴로워한다.

               

 만약, 내가 그 시대를 살았던 한 명의 조선인이었다면 어땠을까. 말 한마디 잘못하면 언제든지 허리에 찬 칼로 나를 찌르고도 벌 받지 않을 일본인이 거리에 가득한데, 그 시대에 태어난 나는 과연 그분들과 같이 용감하게 목을 내놓고 맞설 수 있었을까.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맞선 이들은 역사에 길이 남아 우리를 일깨운다. 역사에 남지 않은 무명의 많은 이들은 나와 같이 두려움에 주저하였을 것이다. 인간이라면 당연한 두려움이지만, 시대적으로 분명 잘못된 것이리라. 누구도 자신의 두려움에 대해 나서서 반성하지 않을 때, 그것에 대해 솔직하게 부끄러움을 논한 시인이 바로 윤동주다.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 길, 1941.9


 부끄러움을 내보인다는 것은 약점을 드러내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윤동주의 시에서 그는 결코 약해 보이지 않는다. 그는 부끄러운 것을 솔직하게 부끄럽다고 이야기하되,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는다.


 고등학생 시절, 교과서에서 윤동주의 시를 읽고 나는 잠시나마 꿈꿨던 시인의 꿈을 접었었다. 시대의 아픔과 그의 천재적인 재능이 결합하여 완성된 가슴을 죄는 시를 읽자니, 시인이란 그런 사람이어야만 된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그의 시를 천천히 읽어 내리자니 그의 시를 가슴에 품게 만드는 것은 시대의 아픔도, 그의 재능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부끄러움을 숨기지 않고 풀어내는 그의 시는 순수하다. 기교와 허세로 물든 보기에만 좋은 시가 아닌, 진정과 순수를 담은 시이기에 그토록 많은 사람의 마음에 남은 것이리라. 


 부끄러움을 말했기에 오히려 부끄럽지 않을 수 있었던 시인 윤동주를 기리며 역사적인 오늘을 마무리한다.       




# 윤동주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동주'를 추천한다.

탄탄한 시나리오와 연출, 그리고 윤동주를 연기한 배우 강하늘과 지금껏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던 송몽규를 연기한 배우 박정민의 조합이 매우 잘 어우러진, 꼭 봐두어야 할 영화라고 생각한다.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34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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