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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송이 Mar 11. 2018

청록 빛깔의 부드러운 잔혹 동화

The SHAPE of WATER: 사랑의 모양

※ 영화를 보지 않은 분께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 커버 사진과 삽입된 이미지는 네이버 영화에서 가져왔습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로맨스가 개봉 17일째 40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한다.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한 4개 부문 최다 수상작으로 이름을 올린 영화의 흥행에, 나도 동참했다.        



        

어른을 위한 청록 빛깔의 부드러운 잔혹 동화   


 이 영화의 아름답고 괴이한 분위기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판의 미로], [호빗]과 같은 작품 목록을 보유한 다크 판타지의 거장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이전 작품을 생각해보면, ‘당신이 이토록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하다니!’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의 포스터. 왼쪽의 포스터가 더 마음에 든다.


 우주 개발 경쟁이 한창이었던 1960년대의 ‘냉전’이라는 어두운 상자에 인간과 괴생명체의 동화 같은 사랑을 담았다. 감독 특유의 B급 정서가 가득한 영상이 영화를 한 층 돋보이게 하는데, 음울하지만,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청록 빛깔이 짙게 깔려있다. 음악 또한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이렇게 포장된 이 영화는 마치 예기치 못한 선물 같다.     



그녀는 애초에, 물을 사랑했다.    


 어린아이의 침대 머리맡에서 이솝 우화를 읽어주는 듯한 리처드 젠킨스(자일스 役)의 자상한 독백과 함께 영화가 시작한다. 물로 가득 찬 방 안, 모든 물건이 물에 잠겨 둥둥 떠 있지만, 마치 그곳이 원래 제 자리인 듯 평화롭다. 소파에 샐리 호킨스(엘라이자 役)가 잠들어 있다. 영화는 조용히, 그녀의 하루를 담기 시작한다.     


 일어나서 욕조에 물을 받는다. 저녁으로 먹을 달걀을 삶는다. 달걀이 익기에 알맞은 타이머를 설정한다. 어느새 물이 가득한 욕조에 들어가서, 자신을 애무한다. 영화가 시작한 지 불과 5분 만에 ‘아, 이래서 ‘청소년 관람 불가’ 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장면은 영화 속에서 두세 번 반복된다. 처음에는 ‘왜 굳이 저런 자극적인 장면을 넣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불현듯 깨달았다. 그녀는 애초에, 물을 사랑했다. 물로 가득 찬 욕조 안에서 욕망을 해소한다. 수조 안에 존재하는 괴생명체에게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을 느낀다. 그리고 물이 채워지는 욕조를 가만히 바라보며 괴생명체를 떠올리고, 묘한 미소를 짓는다. 물을 사랑하는 그녀에게 물속에서 살아 숨 쉬는 괴생명체는 욕망과 사랑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한 존재였다.               


괴생명체를 처음 마주한 엘라이자. 이미 사랑에 빠진 눈빛이다.




그는 나를 그저 있는 그대로 봐요.


 영화 속 인물은 모두 불완전하다. 엘라이자는 태어날 때부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고아다. 다정한 이웃 자일스는 동성애자에 수입이 불안정한 화가다. 든든한 친구 젤다는 인종차별을 받는 흑인이다. 괴생명체를 학대하는 보안책임자인 스트릭랜드는 지독한 편견과 우월감에 휩싸여 성공만 바라본다.   

  

 불완전함은 외로움을 낳는다. 엘라이자는 세상에서 동떨어진 모습을 보인다. 보통의 사람과 다르게 낮에 잠들고, 밤에 일한다. 자일스와 가족처럼 함께하지만, 그에게 의지하지는 않는다. 젤다의 수다에 귀를 기울이고 미소 짓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지는 않는다. 말을 못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외로움이 그녀를 감싸고 있다.


 괴생명체를 마주한 그녀의 모습에서는 활기가 느껴진다. 무채색으로 가득한 그녀의 세상이, 알록달록 무지개의 빛깔로 변한다. 아름답다고 말하기 어려운 괴생명체의 모습에도 그녀는 그에게 끌린다. 그녀는 말한다.   

   


 “그는 내가 불완전한 존재라는 걸 모르는 눈빛이에요. 그는 나를 있는 그대로 봐요.”     


 그녀의 불완전을 완전하게 받아들이는 존재는 괴생명체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토록 속절없이 그에게 빠져들었던 걸까?     


 괴생명체 또한 거리낌 없이 종(種)이 다른 그녀에게 마음을 열고 그녀를 받아들인다. 운명이라는 단어 외에는 그들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설명하기 어렵다. 서로가 유일한 사랑의 대상이었다. 함께여서 비로소 완성된 모습이었다. 그들이 사랑하는 것은 숨 쉬는 것처럼 당연했다. ‘왜 사랑하는지’, 설명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둘이 함께 달걀을 먹고 음악을 듣는 장면. 아주 귀엽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엘라이자의 목에 있던 흉터는 아가미로 변한다. 그녀와 괴생명체는 물속에서 살아가는 같은 종(種)이었던 것이다. 엘라이자가 그토록 물을 사랑한 이유가 있었다. 본능이었던 것이다. 같은 종으로서의 동질감이 서로를 끌어당겼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에 엘라이자가 변하지 않았다면, 비극이더라도, 인간과 괴생명체의 조건 없는 순수한 사랑이 더 애틋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동화다.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것이 동화의 기본 아닌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눈물 흘리는 것은 이 영화에 어울리지 않는다. 저 깊은 물속 어디선가, 지금도 사랑하고 있을지 모르는 둘을 떠올리는 편이 이상적이다.               


부디 이후로도 오래오래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기를.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시대의 냉소를 부드럽게 무너뜨리는 위대한 러브스토리
- 이은선(영화 저널리스트)


 영화가 단순히 종(種)을 넘어서는 충격적인 사랑 이야기 정도라면, 이렇게까지 극찬받지는 않을 것이다. 인물들은 시대의 비주류다. 영화 속에서 장애인, 동성애자, 흑인은 서로 보듬고 연대한다. 미 항공우주 연구센터도 예측하지 못한 방법으로 괴생명체를 탈출시키는 데 성공한다.      

엘라이자와 젤다. 스트릭랜드에게 한 방 먹이는 통쾌한 장면.


 ‘You, and me, together.’ 엘라이자와 괴생명체의 사랑의 메시지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비주류의 연대는 부드럽지만 강하게 차별과 혐오를 무너뜨린다. 마치 그들을 향한 혐오를 비웃는 것처럼 유쾌하기까지 하다. 그들을 세상에서 밀어내는 차별과 혐오는 스트릭랜드의 손가락처럼 악취를 풍기며 곪고 썩어가다가, 이내 뿌리째 뽑혀버린다. 불완전한 비주류의 인물들은, 이토록 아름다운 결말로 이 영화를 이끈다. 차별과 혐오 따위는 완성된 그들의 이야기에 흠집 하나 낼 수 없다.             

        





# 영화를 본 이들의 가슴에 깊이 남을 시를 기록한다. 오래전, 사랑에 빠진 시인이 썼다는 문장이 가슴에 와 닿는다. ‘작자 미상’이라는 불완전은 오히려 이 시의 절절함을 더 강조한다.


Unable to perceive the shape of you,

그대의 모양 무엇인지 알 수 없네,

I find you all around me.

내 곁에는 온통 그대뿐.     

Your presence fills my eyes with your love,

그대의 존재가 사랑으로 내 눈을 채우고,     

It humbles my heart,

내 마음 겸허하게 하네,     

for you are everywhere.

그대가 모든 곳에 존재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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