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사람은 본업을 잘해야 해.
빈 원룸을 소음으로 메우기 위해 의미 없이 돌리던 채널이 딱 멈추는 순간이 있다.
나의 경우에는 주로 영화 채널이었는데, 최근에는 어느 예능 프로그램이 그렇다. 이연복 셰프가 출연 중인 '현지에서 먹힐까?'라는 프로그램이다. 중식의 대가로 알려진 이연복 셰프가 중국에서 중국인을 대상으로 중국 음식을 판매하는 이야기다. 한 번쯤은 가져봤을 작은 의문, '한국에서 먹는 (나라 이름) 음식이 진짜 (나라 이름) 본토 맛일까?'가 하나의 콘텐츠로 만들어졌다고 보면 된다. 나는 그저 나른한 토요일 오후에 스타 셰프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멍하니 보았을 뿐인데, 불보다 이글거리는 눈으로 웍(Wok, 중국 요리 도구)을 바라보며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이연복 셰프에게 완전히 빠졌다.
이전에 그가 출연했던 다양한 TV 프로그램에서 그를 어떻게 보여줬는지 잘 모르지만, 나에게 이연복이란 스타 셰프는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게 당연한 사람이었다. 비록 한 번도 그의 요리를 먹어보진 못했지만 말이다. 그가 어떻게 해서 그런 요리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알지 못했고 사실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뜨거운 불길 앞에서 땀을 한 바가지 쏟아내면서 몇 시간이고 짜장 소스를 볶아내고(그것도 엄청나게 프로페셔널한 자세로), 숨 돌릴 틈도 없이 재료를 만들고 설거지와 서빙도 마다하지 않고 틈틈이 손님을 응대하는 모습을 보는 건 충격이었다. 저 사람은 저렇게 했기 때문에 ‘대가’가 되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는 TV가 만들어낸 환상이 아니었구나.
떠올려보면, 그런 충격은 완전히 생소한 것이 아니다.
일상을 나누는 주변 사람에게서도 문득, ‘이 사람 참 멋있구나’ 싶은 순간이 있다. 시시껄렁한 농담을 나누다가도 자신의 일이나 혹은 관심사에 대해서는 단숨에 진지한 표정과 자세를 갖추고 말을 풀어내는 모습을 볼 때 그렇다. ‘나 프로야!’ 하고 대놓고 표현하지 않아도 말 하나하나에서 프로의 기운이 넘실거린다. 같은 회사의 영업 담당인 동기가 가맹점 사장님의 과격한 발언을 감내하는 이유를 물을 때 ‘내가 담당이니 책임져야지.’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순간이나, 내가 아무거나 해 다 이뻐,라고 말할 때 ‘내가 원하는 방향은 이거야’ 하면서 자신의 디자인이 담은 의미를 당당히 풀어내는 디자이너를 볼 때, 철제 용품 제조업에 종사하는 아빠가 길거리에 놓인 철제 가판대를 보고 철판은 어디꺼고 용접은 이렇게 했네 하며 살펴볼 때. 정말 멋있다, 다들.
프로의 기본은 물론 능력이다. 그렇지만 일만 잘한다고 프로 소리를 들을 순 없다. 주변의 생활 속 프로를(생활의 달인 같은...) 보면, 프로만이 가진 어떤 꾸준한 마음가짐이 있는 것 같다. 항상 부족함을 찾아내어 고치는, 백종원의 말을 빌리자면 물 먹듯이 상처 입는 걸 기꺼이 감내하는 마음 말이다. 직장생활 4년 차지만 여전히 프로의 마음가짐은 갖지 못한 나는 그들의 진정성이 멋있다. 솔직히 부럽기까지 하다. 현업에서 인정받고 싶어서 열심히 하고, 나름대로 업무에 대한 노하우가 있지만 네가 프로의 싹이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나는 상처를 감내하기보다는, 더 이상 욕먹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일하는 평범한.. 회사원이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프로의 매력은 단숨에 가꿔진 것이 아니다.
마음가짐이야 갖는다 치더라도, 처음 시작하는 이들은 대체로 열정적이니 말이다. 수많은 열정 피플 사이에서 두드러지기 위해서는 꾸준함과 진정성이 필요하다. 상처 입어도 밴드 붙이고 다시 일어나서 달리는 끈기, 이 길이 내 길이니 온 마음을 바쳐 임하겠다는 진심. 그렇기에 프로의 매력이 발견될 때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 후에는, 닦을수록 윤이 나는 유리창처럼, 빛이 바래지 않는 보석처럼 꾸준히 영롱하겠지. 이 글을 쓰면서, 아직 꿈을 놓지 않은 나도 언젠가 영롱한 프로가 되리라 슬쩍 다짐 한 숟갈 먹어본다.
P.S. 이연복 셰프의 멘보샤를 맛보기 위해서는 예약이 필수라는데, 웨이팅이 기본 한 달 반 정도라고 한다. 웨이팅 정말 싫지만 멘보샤 때문에 나도 예약이란 걸 한 번 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