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춘 일기 2
애옹, 영춘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새벽 여섯 시 삼십 삼분, 불과 4일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할 기상 시간이다. 애써 모른 척 더 자볼까 싶다가도 가슴 위로 쿵 올라오는 1.9 킬로그램의 무게와 얼굴을 꾹꾹이는 부드러운 젤리, 눈가를 핥는 까칠한 혀를 느끼며 비로소 눈을 뜬다.
창문 너머 북한산 위로 어슴푸레 밝아오는 아침 해를 보며 영춘의 밥그릇과 물그릇을 채우고 화장실을 정돈한다. 꾸준히 1일 1 맛동산과 4~6개의 감자를 생산하는 고양이가 어떻게 안 예쁠 수 있을까. 챱챱챱, 맛있게 식사를 하는 모습을 얼마간 바라본다. 곧 세상이 일어나기 직전의 고요함, 마치 해 질 녘인 듯 주황으로 물 든 방 안, 그 안에 건강하고 맛있게 그릇을 비우는 작은 고양이와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 영춘을 데려오기 전까진 이 시간에 이런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고양이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가 있다. 대표적인 세 가지를 꼽자면, 고양이는 외로움을 잘 타지 않는다. 고양이는 도도하다. 고양이는 치대는 걸 싫어한다. 정도가 아닐까? 다년간의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통한 랜선 집사 생활로 저 세 가지가 모두 사실이 아니란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럼 실제로는 어떤데?’는 물음에는 답하지 못했다. 한 번도 고양이와 살아본 적이 없었으니까...
“고양이 왜 안 키워?”
고양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내게 친구가 물었다. 고양이 털 알레르기도 없고 혼자 살아 가족의 동의를 구할 필요도 없는데 왜 랜선 집사만 하냐는 이야기. 이유는 무서워서였다.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그리는 고양이는 외로움을 잘 타고, 다정하고, 온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아침 여덟 시부터 저녁 일곱 시까지는 밥벌이를 위해 집을 비워야 했고, 그 외의 시간에도 온전히 고양이에게 집중하기엔 나도 내 시간이 무척이나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 혼자서도 작은 집에 운동량이 적지 않은 생명이 하나 더 들어온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분명 그랬다.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이유가 분명했는데, 영춘이를 데려오고 난 뒤에는 그 모든 이유가 희미해졌다.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어 영춘이를 먹이고 화장실을 치우고 낚싯대를 흔들고 있었다. 다행히 한 동안은 재택근무를 하게 되어 영춘이와 내가 오랜 시간 붙어있으며 서로 적응하기 순조로웠다. 걱정했던 개인 시간은 영춘이도 나와 비슷했는지, 적당히 놀다가 어느 순간에는 자기 시간을 가지러 홀연히 방 어딘가로 사라졌다. 보통 영춘이가 자리 잡는 곳은 사람 화장실 변기 옆, 현관 신발장, 규조토 발매트 위, 창틀 정도다. 아무래도 판판하고 딱딱하며 차가운 기운이 감도는 곳이 좋은 듯하다. 내년에는 여름에 대리석 판을 사줘야 하나 고민 중이다.
영춘이는 2020년 4월 23일에 태어났다. 세상에 나온 지 고작 5개월이 채 되지 않은 아기 고양이에게는 모든 게 새롭고 신기한가 보다. 이 작은 방에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은지 구석구석 탐험하고 다녔다. 고양이를 데려오기 전에 한바탕 대청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지도 못한 구석에 들어가 뒹구는 영춘이 덕분에 이사 청소할 때보다 더 구석구석 쓸고 닦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쓸어내다 보니 먼지를 쓰는 건지 털을 쓰는 건지 구분이 잘 안 갔다. 영춘이의 색과 먼지의 색이 묘하게 닮아 얼핏 보면 구분이 잘 안되었기 때문.
근 30여 년을 살아오며 몸에 밴 수면 습관을 고치려고 했지만 항상 작심삼일이었다. 건강한 회사원이 되기 위해 새벽 운동을 끊어놓고도 헬스장에 기부하는 꼴이 되기 일쑤였고, 주말 오전은 없는 시간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교과서에 나올 법한 바람직한 아침형 인간으로 산 지 1주일째다. 이 모든 영광은 영춘이 덕이다. 하루 종일 잠을 자고도 내가 잠들 즈음이면 곁에 와서 궁둥이를 붙인다. 불면이 있어 누웠다가도 한두 시간은 뜬 눈으로 있고, 새벽에 두세 번은 깨고, 어디 방문이 약간이라도 열렸다 치면 금세 가위에 눌리는 나에겐 밤잠을 푹 자는 게 습관 같은 소원이었다. 영춘이 온기를 나눠주고는 언제 불면이 있었냐는 듯 단 잠을 잔다.
새벽 동이 트기 전 일어나는 게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영춘이는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점점 기상 시간을 늦춰줬다. 다섯 시 삼십 분, 여섯 시 그리고 오늘은 여섯시 삼십분에 깨워준 참이다. 애옹, 까칠한 영춘이의 혀를 느끼며 눈을 뜨면 영춘이가 내가 일어나기 전까지 매우 즐겁게 놀았다는 게 한눈에 들어온다. 뒤집어진 장난감 박스와 침대로 물고 온 낚싯대 인형, 금방까지 갖고 놀았던 듯 딸랑이며 굴러가는 방울 공까지. 나름 언니의 컨디션을 생각해서 더 재우려고 혼자 놀았다고 생각하면 예뻐 죽는다.
이 작은 고양이가 세상천지에 믿고 의지할 게 나뿐이라고 생각하면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다짐하게 된다. 고작 만난 지 일주일밖에 안 된 덩치 큰 인간을 사랑해서 젤리를 내어주고 그루밍을 열심히 해준다. (특히 눈썹을 많이 해준다. 자기와 비슷한 털이 있어 그런가?) 가끔 영춘이가 나를 키운다고 여기는 게 아닐지 의심이 든다. 조그만 머리로 그런 생각을 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우습지만 그건 그것대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