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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송이 Mar 14. 2018

하루와 세월의 차이, '속도감'

작가 지망생의 습작(習作) #4

※ 커버 사진은 직접 촬영한 강릉 바다의 사진입니다.

※ 속도감: [명사]물체가 나아가거나 일이 진행되는 빠르기의 느낌 




이상한 일이다.


 나의 하루는 분명 느리게 흐른다. 점심 먹을 시간이 다 된 것 같은데 오전 10시이거나, 숨도 쉬지 않고 일한 후 시계를 보았는데 아직 퇴근이 까마득한 오후 2시이거나 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하지만, 소위 ‘세월’이라고 표현하는 한 달, 일 년 같은 큰 단위의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오늘만 해도, ‘벌써 3월이야? 말도 안 돼!’ 하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루’는 나른한 주말 오후의 산책과 같다. 편안한 옷을 입고,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사람 사는 모습을 구경한다.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살을 느낀다. 선선하게 부는 바람 냄새를 맡는다. 다리가 아프면, 조금 쉬기도 한다. 이런 산책은 시간에 쫓기는 법이 없다. 원하는 만큼 즐기고 누린다. 온 세상이 바쁘게 돌아가는데 나는 영원히 시간이 멈춘 느낌이다. 여유가 충만하다.     


 반면, ‘세월’은 부산행 KTX와 같다. 아차, 싶은 순간에 어느새 부산에 도착한다. 창밖을 보며 풍경을 즐기려 해도, 빠르게 스쳐 가는 나무의 잔상만 남는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달린다. 쉬는 법이 없다. 빠르게 부산에 도착하기는 했지만, 어떻게 왔는지 알 수 없다. 달리기만 하는 기차 안에서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그저, 도착했을 뿐이다.     




 하루가 모여서 세월이 된다. 하루는 느리고, 세월의 속도만 빠르게 흐를 리 없다. 단지, 하루와 세월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이 다를 뿐이다.     


 어느새 나는 20대 후반이다. 세월은 기다리는 일 없이 흘렀다. 3월이 되면 대학교 새내기 시절의 설렘이 여전히 마음을 두드리는데,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는지 모르겠다. 영화의 전개 과정을 모두 편집해 버린 듯, 처음과 끝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하루하루의 기억은 뚜렷하다. 봄이 다가오면, 대학교 교정의 벚꽃이 떠오른다. 비가 억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날이면, 빗소리와 술을 함께 즐기며 웃고 떠들던 지난여름의 캠핑이 떠오른다. 세월은 빠르게도 흘렀지만, 하루는 시간이 멈춘 것처럼 선명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세월이 빠르게 느껴지는 것은 소중한 하루가 흐르는 것이 아쉬워서가 아닐까?




 아이러니한 삶의 속도감을 즐기자. 


 오늘 만끽하는 하루는 미래의 내가 그리워할 추억이다. 맛있는 것을 먹고, 좋아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읽고 있는 책의 한 구절을 낭독해보고. 그렇게 보내는 하루는 자칫 평범해 보이지만, 충분히 의미 있다. 오늘 하루에 대한 만족과 행복이 선명한 추억으로 마음 한편에 자리 잡는다.


 나는 살아가면서 가끔 세월의 무심함을 원망스러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덕에 하루의 더 소중하게 여길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세월이 지난 후에도 추억을 되짚어보며 행복할 수 있도록, 시간이 멈춘 듯 느껴지는 즐거운 하루를 차곡차곡 쌓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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