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소셜 딜레마
오래 전, 이런 광고 카피가 흥행했다. ‘모두가 Yes라고 할 때 No라고 할 수 있는 사람’. 이 문구는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형용사처럼 사용된다. 세상이 얼마나 어떻게 변하든 간에 저 수식어를 달 수 있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 The Social Dilemma’의 제작진이 그렇다. SNS를 하지 않으면 외계인 취급을 받는 Yes의 세상에서 목소리 높여 No를 외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솔직히 말하면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다. 제목만 봐도 어떤 말을 하려는지 얼추 짐작이 된다. 지금 당신이 누리는 소셜 미디어의 혜택과 편리함은 미끼야. 그걸 무는 순간, 당신은 IT 기업의 대규모 양식장에 한 마리 물고기가 되고 당신의 취향, 소득, 깊숙한 사생활까지 조각조각나서 여기저기 팔려 나갈거야. SNS를 숨 쉬듯 하는 바로 나 같은 사람에겐 월요일 아침 울리는 알람 소리 같은 이야기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는 좀 다르다. No라고 외치는 그들이 바로 Yes의 세상을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유튜브 알고리즘을 만든 개발자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거짓이라고 말한다. IT회사 CEO는 자녀에게 SNS를 금지시켰다. 구글, 페이스북, 핀터레스트, 트위터, 인스타그램. 인터넷을 하는 이들은 모를 수가 없는 서비스의 제작자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당신, SNS를 믿지 마라.’ 자, 이제 이 다큐멘터리의 이야기에 좀 흥미가 생긴다.
쟁쟁한 IT 기업의 개발자, 마케터, 기획자들이 카메라 앞에 선다. 자신은 누구고, 어디에서 일했고, 무슨 일을 했는지 밝힌다. 업계가 같다는 걸 제외하고 모두 다른 회사에 다른 서비스를 런칭했다. 그리고 입을 모아 말하길, ‘단단히 잘못되고 있어요.’ 그러자 인터뷰어가 묻는다. ‘뭐가 문젠데요?’ 말문이 막힌 채 허탈한 웃음을 흘린 인터뷰이의 위로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SNS의 문제에 대해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온갖 뉴스가 난무한다. 정신건강과 SNS의 상관관계, 가짜 뉴스의 남발,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 스냅챗 이형증, ISIS, 코로나 바이러스, 다시 SNS의 사회적 영향. 어떤 것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가려내기 쉽지 않다. 혼란한 와중에 3명의 자녀를 둔 미국 가정의 모습이 보여진다. SNS에 푹 빠진 11살 딸은 엄마의 말을 듣지 않는다. 10대 중반인 아들은 SNS를 하지 않는 건 단절된(unconnected) 것이라고 하고, 10대 후반인 듯한 첫째 딸은 SNS는 쓸모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상품에 돈을 지불하지 않고 이용한다면, 바로 당신이 상품이다.
SNS에 나의 일상을 공유 하는 덴 돈이 들지 않는다. 나의 아름다운 일상과 자랑스런 성취를 알리고 친구들의 축하는 받는 건 공짜다. 굳이 시간을 들여 연락처를 찾고 전화를 하고 약속을 정해 만나지 않아도 피드를 통해 손쉽게 친구의 안부를 듣고 물을 수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SNS는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고 인간관계를 윤택하게 만들어 주는 훌륭한 도구다. 그러나, 수천만 사용자의 계정, 사진, 동영상을 유지하려면 돈이 든다. SNS는 어디서 이런 돈을 벌까? 나는 애초에 그들의 고객이 아니다. 나를 고객으로 삼은 광고주가 SNS의 고객이다. 나의 게시물과 검색어, 연동된 계정 정보와 수많은 캐시를 통해 나를 분석하고, 내가 살 법한 상품의 광고를 노출한다. SNS는 공짜가 아니다. 극단적이지만, 나는 ‘나를 팔아서 SNS의 혜택을 사는’ 것이다.
옛날에는 기술은 도구였다. 지금의 기술은 중독, 조종이다.
SNS가 나를 파는 행위라는 걸 알았다면 이제 멈춰야 한다. 계정을 삭제하고, 앱을 지우면 된다. 그 간단한 손놀림을 왜 망설일까. SNS에는 피드가 있는데, 내가 팔로우하는 친구들의 최근 게시물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스크롤을 위에서 아래로 당기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된다. 마치 카지노의 슬롯머신을 당기는 행위와 같으면서, 손가락 하나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손 쉽다. 대부분의 앱이 그런 기능을 담고 있다 보니 습관적으로 엄지로 스크롤을 당겼다 내리는 나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가끔 데이터 연결이 더뎌 로딩 표시가 뜨면 몇 초를 기다리지 못하고 당기는 행위를 여러 번 반복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게 설계된 거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IT 기업은 단순히 데이터만으로 성장하지 않았다. IT업계에서 중요한 파트인 UX는 말 그대로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이다. 사용자의 경험과 관련된 모든 부분을 설계하는 것이다. 스마트폰 위에서 슬롯머신을 당기는 행위도, 기다리는 몇 초도, 노출되는 게시물도 모두 그들의 계산 안에 있는 것이다. 지금 깨달아도 어쩔 수 없다. 우린 이미 충분히 중독되었기 때문에.
다큐멘터리의 주요 화자인 트리스탄 해리스(前 구글 디자인 윤리학자)는 어떤 연유로 의회에서 발언한다. SNS가 악용되는 이 사태에 대해 플랫폼은 책임이 있다는 그의 주장에 대해 62세의 미국 의원은 말한다.
나는 지금도 늙어가고 있지만,
죽을 수 있어 다행이기도 합니다.
나는 정말 두렵습니다. 당신도 그런가요?
네, 저도 두렵습니다. 얼마 전, SNS를 하지 않던 친구가 계정을 만들겠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누군가 그에게 ‘SNS에 없는 건 네가 없는 거야’라고 했단다. 뾰족하지 않은 반박의 말이 입 안에서 차올랐지만, 한 편으론 고개를 끄덕였다. 사생활이든 커리어든 SNS가 필수가 된 이 세상에 (심지어 이런 시국이라면) 땅에 발붙이고 선 나보다 ‘SNS의 나’가 더 실존인물 같겠지.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는 현실이 두려웠다.
소셜 딜레마에 등장하는 가정에서 3명의 자녀는 모두 10대다. 10대 초반, 중반, 후반. 나이 터울이 최대 9살이 넘지 않을 텐데, SNS를 바라보는 시각은 확연히 다르다. 완벽히 중독되었고, 서서히 중독되고, 등 돌렸다. 고작 10년도 안 되는 시간동안 SNS에 대한 시각이 그렇게 변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다가왔다. 멀리 갈 것도 없이, 20대 후반인 내가 친구에게 ‘틱톡이 뭐야?’라고 묻던 순간에 틱톡은 이미 10대의 메인 SNS였다.
SNS의 성장은 기술의 발전이다. 기술의 파괴적인 변화는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걸 피부로 느꼈을 때, 나는 기술에 적응하거나 도태되거나 둘 중에 하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이대로라면 나는 도태될 것이었다. 그 사실이 두려워서 더욱 SNS에 집착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충분히 SNS 세계를 즐기고 누리고 있다며 있는 힘껏 나를 드러내려 노력하고 있었는지도.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서 말이다.
90분의 러닝 타임 동안 처음의 질문, ‘뭐가 문젠가요?’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과 현실을 교차하며 충분하게 답한다. 덮어놓고 SNS의 단점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빛과 그림자는 떨어질 수 없다. 이 다큐멘터리는 SNS의 빛에 가려진 그림자를 꼬집으며 꾸준하게 경고한다. 우리는 중독되었고, 헤어 나오기 위해 이제는 뭔가 해야 한다고. 엔딩 크레딧과 함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친절한 팁을 주기도 한다. 남은 것 행동하는 것뿐이다. 이제,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주말마다 드라마를 공부한다. 작가 지망생으로써 콘텐츠의 힘에 대해서 종종 생각한다. 영향력 있는 콘텐츠는 한 가지 요소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가 없으면 좋은 콘텐츠가 될 수 없는 게 있는데, 바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보고 나면 머릿속에 무수한 생각이 떠오른다. 그 영화가 던진 ‘주제’에 대한 고민들이다. 플롯, 연출, 연기, 다양한 요소가 콘텐츠를 완성하지만 그 모든 걸 엮는 게 주제이고 콘텐츠의 힘이다. 다만, 주제가 좋아도 현실적인 여건으로 제작되지 못하는 빛나는 이야기가 아주 많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힘은 여기서 나온다. 힘이 있는 콘텐츠를 세상에 내보낸다. 말하고자 하는 게 분명한 이야기들, 이 시대에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하지만 선뜻 제작하기에는 흥행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들을 거실에 편하게 앉아 마주할 수 있다는 건 참 귀한 경험이다. 올 연말, 텅 비어버린 캘린더에 마음도 휑하다면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둘러보기를 추천한다.
#Cover Photo by Thibault Penin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