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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송이 Dec 28. 2020

하루의 끝, 위로가 되는 사랑

넷플릭스 오리지널: 밤에 우리 영혼은


            작가 이도우의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사람이 제 나이 서른을 넘으면, 고쳐서 쓸 수가 없다. 보태서 써야 한다. 그 사람이 가지지 못한 부분을 내가 보태서 쓴다고 여겨야 한다.’

 

              작 중에서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의 입을 빌어 오래된 말투로 쓰인 저 말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저런 모습이어야 하겠구나. 서른이란 단서가 달렸지만, 기실 나이가 대수일까. 상대를 나에게 맞게 고치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재거나 따지지 않고 수용하는 것. 그런 형태의 사랑이 이 영화에 담겨있다.



            노년에 시작되는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그려봤다. 청춘부터 손잡고 함께 걸어온 두 사람의 노년이 아닌, 각자의 삶에 충실하며 그 안에서 쓰고 단 진한 굴곡을 넘어온 뒤 잔잔한 호수 같은 황혼기를 보내는 두 사람의 사랑은 어떻게 시작될 수 있을까. 이 영화에서는 생각보다 일상에서, 하지만 아주 대담한 방식으로 시작된다. 애디는 루이스에게 ‘밤을 함께 보내자. 섹스 없이, 대화를 나누고 잠을 함께 자자.’는 제안을 한다. 루이스는 얼떨떨하지만, 받아들인다.


            밤은 참 신비로운 시간이다. 모두가 잠들고 오롯이 나 혼자 깨어있는 기분이 든다. 그럴 때면 비로소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영영 시간이 멈춘 것 같기도 하다. 그 어느 때보다 사적이고, 외롭다. 그런 시간에 상대를 초대한다는 건 나를 내보일 충분한 용기와 상대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어느 정도의 확신이 필요하다. 에디는 그랬다. 아마도 오랫동안 루이스를 지켜보고 나름의 판단을 내렸을 그녀는 머쓱하지만 망설임 없이 초대장을 내밀었다.


‘항상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을 보고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살아오며 많은 이들을 만나 축적된 그녀의 식스 센스가 작용했을 수도 있고, 꼼꼼한 체크리스트가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녀로 인해 두 사람의 노년에 예기치 않은 시작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결코 쉬운 사랑일 수 없지만, 둘은 서로를 조금씩 내보이며 시나브로 깊어진다. 오늘 같이 커피 한 잔 하며 웃던 친구가 다음 날 숨을 거뒀다고 한 들 이상하지 않은 나이다. 심지어 한 동네에 수 십 년 간 이웃으로 살며 각자의 가정을 만들고, 배우자와 이별하고, 자녀들을 출가한 두 사람이 만나는 건 동네의 큰 가십이었을 거다. 그들이 젊었다면, 평판으로 잃고 싶지 않은 무언가 있었다면 달랐을까? 동네 사람들의 수근거림은 어떤 장애도 못되었다. 그 정도는 유연하게 흘려버리는 연애라는 건 참 매력적이다. 온전히 둘에게만 집중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두 사람은 같은 이불을 덮고 누워 그제야 서로를 알아간다. 이 사람을 받아들일까, 말까 고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받아들인 이 사람을 그저 알기 위해서.



            애디와 루이스는 공유하는 영역을 넓혀간다. 같은 이불을 덮고 누워 과거의 삶을 나누는 것에서, 밝은 낮에 차려입고 식당을 다니며 현재를 나눈다. 그리고 어느새, 서로가 없던 각자의 삶이 녹아든다. 애디의 아들 진은 아내와 불화를 겪으며 아들 제이미를 애디에게 맡기고, 루이스와 애디가 아이를 보살핀다. 그들은 루이스의 딸과 함께 볼링을 즐긴다. 루이스가 준 유년의 상처를 딛고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는 딸과의 만남 후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인상 깊다.


‘그거 알아요? 우린 이제 대단한 이야깃거리도 아니에요.’

‘난 그냥 하루를 조용히 보내고, 밤에 당신이랑 대화하고 싶어요.’


            벅찬 열정도 아니고, 공들인 고백도 아닌 담담한 말이 이렇게 와 닿을까. 따뜻한 안정감이 있다. 그들의 사랑이 그랬다.



            그들이 각자 지나온 삶은 둘의 관계에 자연스레 스며든다. 관계가 깊어지는 데도 그랬지만, 이별을 말할 때도 그랬다. 애디는 아들 진과의 묵은 오해와 상처를 보듬기 위해 떠나기로 결심한다. 루이스는 담담히 그녀의 말을 듣는다. 둘은 각자 부모고, 사랑하는 아이가 있다. 부모는 자식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다는 걸 이미 안다. 루이스는 부모이기에 자식을 우선할 수밖에 없는 애디를 응원한다.


            애디가 떠난 뒤, 루이스는 다시 이전의 조용한 삶으로 돌아온다. 친구들과 커피를 즐기고, 홀로 맥주 한 잔과 가벼운 저녁을 먹고, 침대에 눕는다. 애디는 제이미를 돌보고, 아들 진과 산책을 하고, 함께 둘러 앉아 저녁을 먹고, 침대에 눕는다. 그리고 전화를 건다. 깊은 밤, 오롯이 혼자 남는 그 외로운 시간에 다시금 애디를 초대한다.




            이 영화는 로맨스다. 두 인물의 격정과 갈등으로 마음을 저릿하게 하지 않으면서 사랑이 얼마나 따뜻한지 알게 해준다. 조용한 하루의 마지막에 한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보는 이의 밤의 영혼마저 품어주는 영화였다. 혼자 깨어있는 밤이면 종종 생각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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