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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송이 Jan 21. 2021

당신, 이런 거 좋아할걸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스위트홈

※ 이 리뷰에는 스위트홈 스포일러가 없습니다. 편하게 봐주세요.


        ‘덕통 사고’라는 단어가 유행했다. 지금도 쓰는지 모르겠지만, 2014년 네이버 시사상식사전에 따르면 ‘덕후’와 ‘교통사고’의 복합어로 갑자기 어떤 분야의 마니아가 되는 것을 뜻한다. 나도 몇 번의 덕통 사고를 경험한 적이 있다. 그 대상은 사람이기도, 드라마나 연극 같은 작품이기도 했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이미 완성되어 빈틈없다고 여겼던 내 취향의 성벽에 토르의 묠니르를 냅다 꽂아버렸다는 것이다. 와르르 무너진 이전의 취향이 무엇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를 후려친 그들, 오로지 그들이 완벽한 내 취향이 되었다.




        요즘 이 작품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스위트홈’에 덕통 사고를 당했다. 아포칼립스, 미스터리, 괴물, 한정된 공간, 그 속의 다양한 인간군상. 돌조각에 새겨 자갈밭에 던져 놓아도 하나하나 찾아가며 주워보고 싶은 취향의 키워드다. 무엇보다, 잘 녹여냈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로 말하기를 ‘작(가) 감(독) 배(우)’ 이 세 가지 요소가 환상의 균형을 이룰 때 인생 작품을 만날 수가 있는데, 스위트홈도 내겐 그랬다.


        감독부터 무한 신뢰가 간다. 그 이응복 감독이다. 미스터 선샤인, 도깨비, 태양의 후예, 비밀 등등 말해 뭐해 입 아프다 싶은 가슴 떨리는 작품을 빚어냈다.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장면 장면이 흘러가는 게 아깝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매력적이다. 주요 무대인 그린홈 아파트를 보면 홍콩의 구룡 성채나 왕가위 감독 영화 속의 청킹맨션이 떠오르기도 하고, 종로에 위치한 오래된 빌딩의 지하상가가 떠오르기도 한다. 현실을 소름 끼치게 반영하면서도 몽환스런 분위기를 가진 공간을 배경으로 기괴한 괴물들의 판타지가 펼쳐진다. 동시에 개성 넘치는 각각의 인물들을 부족함 없이 조명하고 이야기를 풀어낸다. 액션은, 짜릿하기 그지없다. 괴물들의 액션을 보려고 세 번이나 스위트홈을 정주행 했다. 이 모든 요소를 넘치거나 허전함 없이 담아내는 일을 이응복 감독이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었을까.

살 떨리는 그린홈 미술... (출처: 싱글리스트)


        원작은 동명의 네이버 웹툰이다. 원작도 저명한 작가가 쓰고 그려낸 만큼 인기가 상당했다. 원작이 있는 콘텐츠는 부담을 안고 시작한다. 시청자의 기대가 이미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원작과 동일하거나 그 이상의 만족을 줘야 한다. 스위트홈도 마찬가지였는데, 주요 리뷰 글을 보면 아쉽다는 이야기도 눈에 띄지만 대체로 ‘기대 이상’은 되는 듯하다. 나는 넷플릭스 스위트홈을 시청한 뒤 원작 웹툰을 봤다. 원작은 탄탄한 스토리와 주제를 담은 훌륭한 작품이다. 굳이 원작과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비교할 필요 없이, 각 콘텐츠의 형태에 맞게 이야기가 잘 담겼다는 생각이다. 웹툰은 좀 더 날것의 현실과 철학적인 시선이 담겼다면 넷플릭스 오리지널은 무엇보다 엔터테인이 강조된 느낌이다. 회당 1시간, 총 10시간을 쉼 없이 보게끔 만드는 구성과 강약 조절도 좋았다. 인물이 다양하지만 몰개성 하거나 병풍 같은 인물은 없다. 모두 적극적이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이야기가 엇나가지도 않는다. 두 작품 모두 아주 훌륭하며, 이 정도 수준의 각색이라면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에 돌입한 다양한 웹툰 원작의 이야기들을 양껏 기대해 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배우를 빼놓을 수 없다. 이시영, 이진욱 같은 인정받은 연기력에 인지도 높은 배우도 있지만 비교적 최근에 주목받거나 아직은 낯선 얼굴도 많았다. 그런데 이 작품 속에선 배우가 누구인지는 사실 잘 보이지 않았다. 워낙에 파격적인 소재와 화면이기도 하지만, 저 배우가 누구더라 떠올리며 이야기를 보기보다는 다 보고 난 다음에 ‘저 배우 누구지?’하며 되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할까. 요약하자면, 연기자들이 이야기에 흠뻑 녹아들어 배우가 아니라 극 중의 인물만 보였다. 그들에게 보낼 엄지가 두 개 밖에 없어서 아쉽다.

스위트홈 주요 출연진


        앞선 스위트홈 이전의 나의 취향 얘기로 돌아가자면, 그것은 ‘28일 후’로 씨앗을 품고 ‘워킹데드’로 싹을 틔우며 그들의 뒤를 이은 범람하는 좀비 스토리로 숲을 이뤘다.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는 ‘기묘한 이야기’로 새로운 열매가 열리기도 했다. 피부가 녹고 이상한 소리나 내며 사람을 먹이로 삼는 이야기를 왜 보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위에 열거한 작품을 보며 ‘아, 나 이런 거 좋아하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말 그대로 나를 덕통 사고 낸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로 인해 좀비, 괴물이 나오는 이야기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섭렵했지만 나름대로 기준은 있다. 첫 번째, 좀비/괴물의 탄생이 납득되어야 할 것. 두 번째, 그들의 비주얼이 뜬금없지 않아야 할 것. 솔직히, 스위트홈은 두 가지 다 해당되지 않는다. 시즌1에서 (시즌제 맞죠? 맞아야 합니다. 시즌 n까지 나와야 합니다.) 괴물의 탄생은 여전히 미스터리고, 비주얼은 어디 외계 생명체 같다. 그럼에도 나는 홀딱 빠져버렸다. 말 그대로, 스위트홈을 보고 ‘아, 나 이런 것도 좋아하는구나!’ 싶었던 것. 사실 당신도, 이런 걸 좋아할지 모른다.




        넷플릭스에 관한 유명한 밈(meme)이 많다. 그중에 한 가지는, ‘넷플릭스를 틀어놓고 하는 일: 뭐 볼지 고민하며 스크롤링(90%), 실제 시청(10%)’라는 우스갯소리다. 깔깔 웃으며 공감했던 밈인데 이제는 그럴 수 없다. ‘넷플릭스에서 뭐 봐?’라는 질문에 각 잡고 추천할 오리지널 시리즈가 장르 별로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에. OTT 유목민으로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티빙을 넘나들며 구독과 해지를 번복했고, 넷플릭스로 돌아오는 시점은 주로 오리지널 시리즈의 새 시즌이 나왔을 때였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같은 충격적이고 신선한 소재의 시즌 물은 다른 플랫폼 어디서도 볼 수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월에도 몇 편씩 ‘이런 이야기도 만들어지는구나’ 싶은 오리지널 콘텐츠가 쏟아져 나온다. 다른 곳을 넘나들더라도, 넷플릭스 정기 구독은 유지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여담으로 넷플릭스에서 스위트홈의 '인터랙티브 홈'을 만들었는데, 매우 짜릿하게 둘러봤다. 아직 스위트홈의 여운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거나, 어떤 작품인지 맛보고 싶은 분들에게 방문을 추천드린다. 

        넷플릭스 스위트홈 인터랙티브 홈: https://www.sweethomenetflix.com/


※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 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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