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 엄마가 장을 봐오셨다. 두부 한 모에 500원이라 세 개나 사왔더랬다. 이걸 어떻게 다 먹냐고 내가 아깝다 하니 네가 알아서 먹으면 되지. 왜 나한테 쓴소리냐며 퉁명스럽게 말하셨다. 맞다. 내가 알아서 먹으면 되는걸 누군가한테 게으르게 떠넘긴 것이다.
두부라고 하면 먼저 생각나는 건 두부에 김치를 싸 먹는 걸 좋아한다. 두부의 담백한 맛과 김치의 짭짤하고 강한 맛이 어울려 술안주뿐 아니라 밥반찬으로도 많이 먹는다. 하지만 배추김치가 딱 동이 나고 말았다. 거기서 생각이 멈췄다. 수도꼭지로 생각을 잠근 것처럼 딱 두부에 대한 관심이 떨어져 다시 내 방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 누구보다 게으르고 행복하게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다. 늦저녁부터 잠을 자서 그런지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간혹 거실에서 시끄러운 소리에 선잠을 자긴 했어도 밤부터 아침까지 개운한 잠을 자고 일어났다. 의식이 말동말동 해져 핸드폰을 뒤적거리다 문득 어제 두부 생각이 들었다. 두부 세모는 아마 지금 냉장고에서 차갑게 쉬고 있을 것이다. 두부를 어떻게 먹어야 할까 생각하다 제삿날 산적거리 사다 서비스로 받은 스지를 조금 받은 기억이 있다. 이걸 된장찌개에 넣어 먹으면 맛있다고 주셨는데 우리 집은 된장찌개에 고기를 넣지 않고도 꽤 국물 맛이 좋다. 엄마의 손맛인가? 아니면 탁월한 기술인가 싶어 어느 날 부엌을 훔쳐보니 다시다를 넣으시는 모습을 발견했다. 아 역시 세월에 이기는 장사 없다고 문명의 기술이 손맛을 이기는 날이 와버렸다. 여태 엄마의 탁월한 손맛, 기술이라 믿었던 맛의 근원은 다시다였다. 물론 다시다 혼자 맛을 낸 건 아니지만 몇 프로 부족한 맛을 풍만하게 채워주는 다시다는 기술의 발전에 좋은 예가 아닌가 싶다.
다시 두부 얘기로 돌아와서 아침에 뜬금없이 된장찌개를 끓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요리를 잘하진 못해도 못하다곤 생각을 안 해본 우리 집 철없는 비공식 요리사다. 먼저 손을 씻고 냉장고를 열어 재료부터 탐색했다. 먼저 먹다 남은 앞다리 전지살 몇 조각과 팽이버섯, 마늘, 양파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두부를 찾았다. 아쉽게도 애호박은 보이지 않았다. 특별한 맛을 내는 채소는 아니지만 된장찌개에 한 숟갈 떴을 때 된장에 푸른빛이 바랜 애호박은 나름 식욕을 돋울 만큼 매력적이라 생각했다. 그 맛을 채워줄 감자는 다행히 있었다. 채소들을 씻어 알 맞은 크기로 잘라주고 마늘은 칼로 으깨서 다져준다. 고기는 잘게 썰지도 큼지막하게 썰지도 않고 적당한 크기(너무 주관적이라 그냥 보기 좋게) 썰어 준다. 간단하게 소금과 후추로 밑간을 해주고 그다음 뚝배기에 불을 올려 달궈준다. 적당히 열이 오른 뚝배기에 먼저 전지살과 스지를 넣어 익혀준다. 고기에서 나오는 육즙이 나중엔 국물 맛을 좋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뚝배기 밑바닥에 달라붙어도 상관없다. 빠르게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주면 선홍빛 고기에서 회색 빛으로 바뀐다. 그럼 다져둔 마늘을 넣어 고기와 함께 볶아준다. 충분히 마늘 향이 나면 물을 넣어 준다. 그럼 열이 오를 대로 오른 뚝배기가 갑자기 차분해져 고요해진다. 다시 뚝배기가 열을 오를 때까지 기다려준다. 적당히 끓어오르려는 반응이 보이면 바로 된장과 고추장을 푼다. 된장과 고추장 비율은 2:1 국자에 넣어 국물에 살짝 적셔 된장과 고추장을 골고루 풀어준다. 고춧가루는 그냥 감으로 훅훅 넣어준다. 그리곤 썰어둔 양파와 감자를 넣어 푹 끓여준다. 팔팔 끓을 동안 할 일이 있다. 아까 손질하지 못한 청양고추와 파를 어슷 썰어준다. 어느 정도 팔팔 끓이다 보면 감자가 숟가락으로 잘라질 때쯤 국물 맛을 확인한다. 아쉽게도 간이 좀 약하다 싶으면 간장을 넣는 게 아닌 된장과 고추장을 조금씩 추가해 넣어줬다. (간장을 넣으려다 엄마한테 등짝을 내어줄 뻔했지만) 다시 맛을 보고 괜찮은지 부엌의 사령관이자 대통령급 인사인 엄마에게 맛을 확인받는다. 괜찮다면 이제 썰어둔 고추와 대파를 넣어 약불로 대파와 고추가 숨이 죽을 만큼만 끓어주면 완성이다.
다른 밑반찬은 엄마가 만든 오이무침, 열무김치, 감자볶음과 양반 김이다. 상에 가족이 빙 둘러앉아 숟가락을 들고 된장찌개에 푹 집어넣어 들어 올린다. 그럼 고기와 두부 양파와 국물이 같이 딸려올라와 흰 밥 위에 쓱 뿌려 살살 비벼 한 입 먹으면 된다. 된장의 맛과 고기의 감칠맛 국물이 적당히 밥과 적셔져 맛있다. 씹는 도중에 오이무침이나 열무김치 하나를 입에 넣어주면 끝. 행복이다. 이번엔 된장찌개를 밥에 두세 번 넣어 비벼준 다음 그 위에 김을 하나 올려 먹어준다. 김의 고소함과 짭짤함이 가득하다. 그렇게 몇 번의 숟가락질로 한 공기가 바닥이 난다. 한국인의 내장질환 발병하게 하는 식사습관 일 위가 빨리 먹는 것인데도 어쩔 수 있나 체통이고 건강이고 뭐고 그냥 허겁지겁 먹었다.
다 먹고 상에서 아무런 쓸모없는 얘기를 하는 그 순간. 오늘 요리를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운이 좋게 맛이 좋았고, 다행히 텔레비전은 뉴스 채널이 아니었다. 푹 자서 그런지 컨디션도 좋았다. 그렇게 화기애애하지도 너무 건조하지도 않은 식사 자리었다. 딱 내 텐션과 맞는 자리여서 만족스럽다.
자주 이런 요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보는 부엌의 풍경은 항상 여성의 자리었다. 여성 혼자 뚝딱 한 상 차려내면 남자는 수저를 들고 먹기만 한다. 오히려 반찬이 어떻다 간이 어떻다 하는 남자들도 더러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안다. 반찬의 가짓수와 음식의 간이 맞지 않더라도 부엌에서 혼자 고군분투한 흔적과 가족을 위한 노동이 결코 헛되지 않고 고스란히 전해져 나도 요리에 동참한다.
이젠 남녀의 자리가 서로 바뀌어도 전혀 어색하거나 불만스럽지 않은 사회가 됐음 한다. 요리를 하는 기쁨과 가족과 같이 한 끼 식사를 내가 손수 직접 만든 음식이라는 것에 자랑을 느끼고 책임을 알아갔으면 좋겠다.
설거지와 뒷정리는 아버지가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