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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내가 너무한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이미 지나간 일에 너무 매달리는 거 아니냐고 한다. 난 아직 살아있고 그 일이 나와 같이 살아가는 것 같은데, 어제 일처럼 그토록 생생하게 느껴지는데. 그땐 다른 사람들도 지금의 나처럼 안타까워했다. 모두 일인 것처럼 모두의 가족인 것처럼 슬퍼하고 괴로워했다. 한편으론 두렵기도 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은 모두 그 일을 과거라고 생각한다. 지나간 일, 단지 과거에 존재하는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슬퍼하고 있으면 누군가 다가와 물어본다. “너 혼자 궁상떤다고 죽었던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안다. 모르는 게 아니다. 다만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이 맘껏 세상을 누리는 걸 보고 싶기도 하거니와 좋은 봄날 같이 걸어보지도 못한 채 이 세상과 작별했다는 게 아쉬워 그런다. 그들이 살아있었다면 지금쯤 각자 청춘을 만끽하느라 바쁠 테지만 그쪽에선 어떻게 지내는지 술 한잔 기울일 친한 친구는 있을런지 가끔은 가족 보고 싶어 울진 않을지, 새로운 곳에 떨어져 이승에 대한 추억을 뒤로한 채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라 바쁜지 난 모르겠다.
나 또한 가증스럽다. 11개월을 편히 살다 유독 그날이 일어난 달엔 울적해져 그들을 생각한다. 조금이나마 마음을 덜려고 이렇게 글을 쓴다. 나 또한 유명인사들이 이들을 추모하는 글 혹은 사진 하나 올라오면 정말 인성이 좋다고 착각했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그들이 겪은 일은 글 하나, 사진 하나로 마무리될 일이 아니다. 세상에 주어진 무한한 기회들과 그들이 누릴 자유, 행복, 고민, 발전, 청춘은 무너졌다. 그 일이 있고 나서도 너무 일찍 세상과 작별한 이도 있다. 부모라고, 보호자라고 말하며 어린 생명을 짓밣은 존재, 어린아이를 단순히 학대하며 그 순간을 즐긴 존재. 타인의 안전을 무시하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 존재. 그 모든 존재들은 아직 이 세상에 남아있고 그 존재들에게 짓밣힐 순진무구한 생명은 언제든지 태어난다.
다만 또 누군가는 죽어갈 것이고 우리는 그걸 뒤늦게 알 것이다. 그리고 또 슬퍼하겠지. 그리곤 다짐할 것이다.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게 할 거라고. 몇 번의 반복이 지나야 사람의 가치를 알까? 자신의 탄생의 축복과 죽음의 잔인함을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타인의 탄생과 죽음에 생각하는 건 큰 사치인 것인가? 아쉽다.
슬픔을 견디는 게 무감각해지는 것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떠나간 이들을 언제나 기억해야 하고 그리워하며 살아야 한다. 그게 살아있는 사람의 의무고 그들의 죽음에 대한 존경, 그리고 안녕을 바라는 마음이다.
이토록 잔인 세상을 미처 다 살지 못한 채 떠나간 이들이다. 현실은 무섭도록 잔인하고 매몰차지만 그래도 한 순간이라도 따스한 날이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알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