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과 포기

러닝

by 부뚜막위고양이

어젯밤 11시 갑자기 러닝 뛰러 나갔다. 아무래도 저녁에 먹은 곱창과 저녁 먹고 살짝 선 잠이 든 탓인지 뛰고 싶어졌다. 10시 반쯤 내가 최근에 빠진 손석구 배우가 주연인 ‘연애 빠진 로맨스’를 보고 있었다. 박우리와 함자영이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갑자기 뛰러 나갔다. 잠옷 차림에 급하게 바람막이 하나 걸치고 나갔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바람막이도 있고 비도 거의 그치는 기세니 난 상관하지 않고 한강으로 걸어갔다. 난 고집스러운 면이 있다. 뛰기로 마음먹었고 나왔으면 반드시 뛰어야 하는, 고집스러움이 있다. 확실히 거리두기가 끝나니 전보다 훨씬 사람들과 차가 많았다. 비가 오는 탓인지 돗자리를 깔고 있는 사람들은 없었다.


내가 달리는 곳은 잠원 한강지구부터 영동대교를 찍고 다시 토끼굴까지 오면 딱 5킬로 정도 된다. 난 항상 이 길을 달린다. 달리기 초반에 있는 동호대교와 도시의 불빛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달리는 도중이라 사진을 찍진 못하지만 항상 눈으로 담아두는 장소다. 그곳을 살짝 지나면 언덕길인데 거기서부터 흙내음과 풀 내음이 풍겨온다. 그럼 내 폐에 있는 오염된 곳이 정화되는 기분이 든다.


잠깐의 언덕이 끝나면 평지다. 정말 고요하고 조용한 곳. 무섭다고 느낄 수 있지만 나는 차분해진다. 달리는 보폭과 들숨 날숨을 의식하며 평소 갖고 있던 고민들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 곳이다. 그러다 보면 내리막길이 나온다. 여기서 처음 달릴 땐 내리막길에서 갑자기 속도가 확 내버려서 후반 가서는 제대로 뛰지 못한 기억이 있어서 항상 평소보다 천천히 뛴다. 비도 오니 발목 접질리는 걸 조심할 겸 항상 조금은 긴장하며 뛰는 곳이다. 내리막 코스가 끝나면 초반보다 숨이 거칠어진 걸 느낀다. 동호대교 밑을 지나면 탁 트인 풍경이 보인다. 앞쪽엔 아주 가느다란 영호대교가 보이고 옆엔 옥수동 도시의 불빛이 아른거린다. 숨이 거칠어지면 난 항상 도시의 불빛을 보는 편이다. 그러면 조금 숨이 거친 것도, 허벅지 근육이 당기는 것도 잠시 잊어버린다. 저곳의 불빛은 다 각자 다른 빛을 내면서도 서로의 쓰임에 방해하지 않고 조화롭다. 쭉 펼쳐진 직진 코스다. 항상 여기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만난다. 나보다 빨리 달리는 모습을 보면 항상 부럽고 질투가 났다. 나보다 빨리 목표지점에 도착하고 바람이 불어서 시원할 테니 말이다. 그렇게 참고 견디다 보면 압구정 토끼굴에 도착한다. 처음에 러닝 할 땐 토끼굴까지 오는 것도 항상 힘들어했다. 고작 2.4km인데 이걸 제대로 못 뛰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영동대교까지 갈 수 있었다.


토끼굴을 지나면 항상 맞은편에서 러닝 하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 항상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있다. 멈추지 말고 끝까지 달리라고 안전하게 달렸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전하는 편이다. 토끼굴을 벗어난 지 2,3분이 지나면 항상 지친다. 발도 느려지고 숨은 규칙대로 쉬기 어려워지고 당장이라도 멈춰서 걷고 싶지만, 아까 말했듯이 난 고집스럽다. 내가 뛰기로 한 목표까지 무조건 뛰어야 한다. 비록 속도가 느려지고 걷는 거나 다름이 없더라도 절대 멈추지 않는다. 뛰는 행위는 멈출 수 없다. 이 부분이 가장 힘든데, 영동대교가 가까워질수록 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커지는 탓에 상당히 괴롭다. 몸은 자꾸 멈추라고 경고를 보내지만 정신은 여기서 멈추면 후회한다, 목표지점에서 딱 멈추고 숨을 몰아쉬는 내가 참 뿌듯할 거라고 다독인다. 맞다. 정말 목표지점까지 쉬지 않고 달리는 내가, 그토록 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목표까지 온 내가 대견하고 뿌듯하기 위해 뛰는 건데 이 지점에서 멈출 순 없다.


그렇게 버티고 버텨서 반환점인 영동대교를 찍고 뒤돌아 다시 뛸 때 건너편에 있는 도시 불빛을 다시 본다. 역시 여전히 조화롭다. 돌아가는 길은 오는 길보다 수월하다. 아무래도 목표지점에 다가가서 그런지 몰라도 길이 좀 더 짧아진 느낌이다. 안 그래도 힘든데 덮친 격으로 빗줄기가 거세졌다. 눈에 빗물이 내려 뛰는 데 방해가 됐다. 더욱이 시야가 뿌옇게 변해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근데 재밌었다. 난 절대로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으로 뛰지 않는다. 똑같은 풍경에 금방 질린다. 하지만 실외 러닝은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과 바람, 풀과 흙내음이 너무나 좋다. 그러니 비가 오는 변수 또한 즐겁다. 목표지점에 다가갈수록 점점 포기하고 싶어지고 금방이라도 발이 멈춰 느릿느릿 걷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오르지만 꾹 참고 뛴다. 한 걸음 한 걸음 빨리 내디뎌 목표에 도착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그랬다간 금방이라도 쓰러질 거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금 고통을 충분히 견디면서 내가 버틸 수 있는 속도로 계속 인내하며 뛰는 방법밖에 없다.


100m쯤 남았을 땐 모든 힘을 짜내 달린다. 그땐 그 어떤 냄새도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고 단지 뛴다는 자각만 있다. 앞에 점점 다가오는 목표지점과 내 한계가 맞붙어 다가온다. 그 상태로 목표지점에 딱 도착했을 때 의외로 그렇게 뿌듯하진 않다. 당장 모자란 숨부터 고르고 뛰는 내내 아팠던 폐와 허벅지 근육이 당길 때가 있다. 어디 앉아 쉬고 싶지만 여기서 쉬면 바람 다 빠진 타이어처럼 퍼질게 분명해 힘들어도 최대한 걷는다.


내가 뛰는 이유는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이유도 있지만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날 보고 싶어서 뛰기도 한다. 정말 내가 한 다짐에 책임을 질 수 있는지 궁금해서 시작했다. 당연히 안될 거란 생각으로 했지만 항상 내 다짐을 지키지 못한 나라서 러닝만큼은 이 악물고 버티며 내 말에 책임지고 싶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정말로 내가 한 약속에 스스로 지키는 모습을 보며 뿌듯했다. 역시 하면 되는구나. 여태 많은 다짐을 여겨오며 자기혐오와 스스로의 한계를 두며 살아왔다. 하지만 내가 한 약속을 어기는 것도, 약속을 지키는 것도 내 선택이었다. 내가 한 선택은 나에게 책임이 있으니 말이다.


집까지 걸어가며 생각했다. 최근 책임과 포기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길을 지나가다 부모와 아이를 보면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저 부모는 어떻게 미지의 생명을 책임질까? 하는 생각. ‘저 생명에 투자해야 되는 시간과 돈, 관심을 응당 지불해야 되는데 그럴 각오가 돼있을까?’ , ‘아마도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책임져야 하는 부모의 인생은 어떨까, 그걸 견뎌내고 있는 삶은 어떨까. 평소라면 그냥 지나칠 풍경이 최근엔 눈에 거슬렸다.


어른이 되기 위해선 포기해야 된다고 다들 말한다. ‘내가 좋아했던 것들에 대해 포기해야 되고 그 빈칸을 책임으로 채우는 삶이 곧 어른이다.’ 그 말이 마냥 구렸다. 그냥 젊은 날이 지나간 사람들의 합리화라 여겼다. 나만을 위해 사는 게 그렇게 형편없을 리 없다고, 나 하나만 책임을 지는 삶이 뭐 어떻다고 그렇게 생각해왔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저 말이 맞다고 느껴졌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해 지금의 행복을 포기하고 미래를 책임지는 삶이 다가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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