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한 사람이 어느 한 상사를 붙잡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녀는 사람에게 항상 자신의 불투명한 미래 또는 대인관계에 대한 불만을 항상 품고 있었다. 특히 그녀의 남자친구는 매일 문제 투성이로 묘사했다. 내 감정에 제대로 동감 못해주는 기계 같은 인간이라는 둥, 자기 직장에 여직원이 새로 들어와 신난다는 말을 했다는 둥 하여튼 문제 많은 사람으로 묘사하고 그걸 당한 자기는 당연히 무고한 사람이 이유 없이 맞은 피해자 역할을 자처했다. 그리곤 그런 남자와 결혼을 해 아이를 낳겠다는 젊은 여직원. 어느 날은 이런 기계적이고 공감능력이라곤 쥐뿔 없는 사람과 결혼하면 되겠냐는 소리를 했다. 당연히 오래 사귀고 당연히 결혼까지 생각했는데 남자는 30살 넘어서 결혼하고 싶다는 얘기였다. (서로 25살 동갑이었다.) 그 말을 들은 자긴 너무 충격적이라며 이마에 머리를 짚고 한 숨을 쉬었다.
여기까진 당연히 그녀가 갖는 고민과 푸념은 우리 현실과 충분히 맞닿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일하는 시간에 그런다는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자기 할 일을 충분히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미래에 대해 너무나 많은 고민과 불안을 갖고 있었고, 적당히 친한 사람이면 모든 질문을 폭탄을 하는 버릇을 갖고 있다. 자기의 진지한 고민이 아니더라도 시시콜콜한 문제는 다 말하고 다녔다. 회사가 너무 더운 거 아니냐, 사장이 너무 짠돌이다, 누구 과장님은 어떤데 우리 과장님은 어떻다더라, 이번 신입사원이 들고 온 가방 봤냐, 너무 씀씀이가 큰 것 같다, 등등 본인이 타인에게 관심이 많고 발랄한 것까진 좋으나 그녀의 질문과 관심은 선을 넘었다.
한 상사가 결국은 따로 불러 말한 모양이다. 어느 날 출근을 하니 회사 분위기가 조금은 냉랭하면서 어색했다. 아무래도 그녀가 자기의 심기를 대놓고 드러내 문제였다.
상사는 좋게 타일렀다고 했지만 그녀는 당연히 그 말을 고깝게 받아들였다. 내용은 이렇다. 너무 걱정마라.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될 문제다, 그건 그렇고 업무시간까지 쪼개면서 자기 푸념을 늘어놓는 행위는 정말 안 좋다. 회사 상사를 떠나 인간 대 인간으로 하는 말이다. 고쳐라. 뭐 이런 내용이었다. 그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맞는 말 하셨네, 걔가 아직 어려서 뭘 몰라서 그런다며 우리가 이해해주자는 말을 했다. 이어선 그녀의 씀씀이, 평소 행실에 대해 서슴없이 말이 오갔다.
그녀는 며칠을 못 버티고 월차와 연차를 몰아 쓰더니 결국은 무단결근을 이어 퇴사를 했다. 아무래도 본인의 행동의 잘못을 모르겠고 뒤에서 날 헐뜯는 이유도 모르겠으니 더욱 나오기 싫다는 말만 남긴 채 모든 일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고 사라졌다. 덕분에 팔자도 없는 밤샘 근무를 해봤다.
꽤나 지독한 걱정을 달고 사는 삶이 사람을 한 순간에 가볍게 만들고 또 무겁게 만든다. 갓 성인이 됐을 땐 내가 사회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돈을 버는 입장이 되고 싶었다. 일단 돈을 번다는 것, 그걸 원했기에 무작정 알바도 해봤다. 하지만 돈 맛을 볼수록 갈증만 느껴지고 한 달에 100을 번다는 게 항상 불만족스러웠다. 우연히 들어가 본 직장에서 알바보단 더 많이 받는 일을 했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붙잡고 버티면 어느 정도의 돈이 들어오지만 그간 내가 해왔던 정성과 노력을 비하면 별거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뉴스나 기사만 봐도 몇 번의 손가락질로 수십억을 벌어들이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난 뭐 때문에 내 삶을 망가져가면서 이렇게 버텨야 하는지 고민이었다. 월세 내고 생활비 빠져나가고 미래를 위한답시고 적금을 들 고경 조사를 챙기면 내가 여유롭게 쓸 돈은 사실 몇 푼 되지 않았다. 내가 이 돈을 쥐기 위해 한 달을 고생했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걸 벗어날 자신이 없는 내가 비참했다. 그나마 위안이 된 건 적금을 들어놓은 통장이 다였다. 이것도 누군가는 누워서 쉽게 벌 돈이라 생각하니 부질없었다.
그럴 때면 항상 걸었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걷는 그 시간만큼은 내 인생에 있어 소중한 시간이다. 걷다 보면 내가 나일 수 있다. 누군가의 자식이나 상사나 후임이나 연인이나 친구의 내가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그냥 순수한 ‘나’. 나를 마주할 때마다 내 인생의 가치를 되새긴다. 내가 뭘 좋아했는지, 내가 기꺼이 나를 희생하면서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내 인생 마지막 순간엔 어떤 마음가짐으로 떠나야 하는지를 생각해보면 사람들에게 고마운 사람이고 싶었다. 별거 아닐 수 있는 타인의 ‘감사합니다’ , ‘고맙습니다’가 내 인생의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정말 캄캄한 어둠을 걷고 있는 건지 아니면 허우적 대는 건지 모르겠는 칠흑 앞에서 항상 고민이 많았다. 쓸데없는 책임감이 어깨를 누르고 있어서 제대로 고개 들어 하늘을 보지 못한 날이 많았고, 그나마 가까운 땅만 보며 의지해 걸었던 날.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지쳐 있을 필요도 없고 그렇게 모든 걸 떠안아 괴로워하지 않았어도 될 인간관계에 왜 그렇게 목매달며 살았는지 타인의 시선 또한 중요하게 생각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왜 하지 못하고 살아왔는지. 시간이 지난 지금은 참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어리석은 행동도 생각도 필요한 시기가 있다. 그런 시기를 겪고 나야 왜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안다.
아마 많은 젊은 날을 지나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생각해보고 고민해볼 일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주, 많이, 무분별하게 사람과 나눈다면 문제가 생긴다. 충분히 혼자 고민하고 해결해보고 그래도 안 된다면 자신 기준에서 고민에 도움이 될만한 사람에게만 조언을 구하면 된다.
이마저도 안 되는 고민들은 시간이 지나게 두는 게 좋다. 시간이 지나면 가까이 있던 고민도 어느새 멀찍이 떨어져 서서 보게 되니 말이다. 그럼 한 없이 초라하고 작아 보인다. 그럼 그때 그 고민을 생각해보면 된다. 크기에 압도될 필요도 없고 시야도 넓어졌으니 여유롭게 고민을 다룰 수 있다. 그때 가서 생각해보면 된다.
풀리지 않는 고민을 잠깐이라도 잊는 방법은 지금 당장 해야 될 일을 하는 것이다. 운동, 독서, 청소, 휴식 등 이것들을 충분히 하고 난 뒤면 아마 다음 날이 돼 있을 것이다.
그렇게 멀어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