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버드나무 Jan 04. 2019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들이기에

다큐멘터리 <기쁨의 도시> 리뷰


<기쁨의 도시>, 넷플릭스. 정말 좋은 다큐멘터리를 봤다. 오랜 세월 내전이 반복돼 온 아프리카 대륙의 콩고민주공화국에서 강간 피해를 당한 여성들의 치료와 재활을 돕는 시설인 '기쁨의 도시'를 다뤘다. 설립자는 드니 무퀘게라는 산부인과 의사로, 작년 노벨평화상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민주콩고(바로 옆 콩고공화국과 구분하기 위해 이렇게 부르도록 하자)는 하루에도 천여명의 여성이 강간을 당하는 나라다. 기쁨의 도시 같은 시설이 만들어진 까닭이다. 무엇이 민주콩고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우리의 시야는 민주콩고를 넘어 세계 전체로 확장돼야만 한다.



민주콩고는 오랫동안 내전이 끊이지 않은 나라다. 1990년대 후반의 가장 끔찍했던 내전에서는 무려 500만명 가까이 학살당하기도 했다고. 이 나라에 내전이 지속되는 이유는 간명하다. 광물자원 때문이다. 구리, 우라늄, 코발트, 특히 콜탄이 풍부하기로는 세계에서 다음 갈 나라가 없다. (거의 80% 가까이 된다.) 콜탄은 스마트폰을 포함한 각종 디지털 기기를 만드는 데 쓰이는 주요 광물 중 하나다.


그 때문에 디지털 기기를 생산해내는 다국적 기업들, 그러니까 애플, 삼성, LG, 소니, 닌텐도 같은 기업들이 민주콩고에 주목했다.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이들은 이곳을 분쟁지역으로 유지하기 위해 이곳의 민병대(-라고 쓰고, 무정부적 무장세력이라 읽는다)를 재정적으로 지원한다. 정부의 통제가 미치지 못하게 해야, 기업들이 마음껏 자원들을 수탈해갈 수 있어서다. 이들이 지원한 돈은 무기로 바뀌어 이 지역의 인민들을 위협한다.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가 이 과정을 다룬 영화다.)


민병대는 남자는 사살하고, 여자는 강간한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운동가들은 여성을 강간하는 행위가 "전쟁 전술"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낯선 남자에게 강간당해 돌아온 여자를, 남편은, 혹은 아버지는 더럽혀졌다는 이유로 버린다. 그렇게 지역 공동체가 해체된다. 그래서 민주콩고에서 강간은 전쟁 전술이다. 콜탄을 수탈하려는 다국적 기업이 내전의 상처를 봉합되지 못하게 벌리고, 그 틈에서 여성들이 강간을 당하고 죽임을 당한다. 우리의 시야가 세계 전체로 확장돼야 한다는 말의 의미다. (물론 이것은 민주콩고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입은 할머니들이 입을 열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를 안다.)


여기까지 쓰면 어떤 사람은 '역시 이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민주콩고의 가장 주류 종교는 로마 가톨릭이고, 그 다음은 개신교다. 남성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곳에 있을 때 아무렇지 않게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종교가 물론 중요한 요인일 수는 있겠지만, 종교만이 요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튼 이 다큐멘터리는 이러한 배경을 설명하긴 하지만, 그보다는 '기쁨의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에 좀 더 주목한다. 이곳은 무퀘게 박사가 운영하는 '판지병원'과 연계해서 여성들을 치료하고, 짓눌린 여성들에게 재활교육을 제공해 다시 사회로 내보낸다. 이곳 시설의 재활교육은 주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이뤄진다. 자기방어(호신술)교육, 리더십 훈련, 자존감 키우기 워크숍.


특히 뒤의 두 가지 교육은 서로 구분되지 않고 이뤄지는데, 다큐가 담아낸 장면 몇몇이 무척 인상깊었다. 여성이 '질'(버자이너)'을 말하는 것이 금기시되고 죄악으로 취급받는 사회이기에, 강사들은 여성들에게 끊임없이 '질'을 얘기하라고 말한다. 남성들이 듣다 지쳐 여성들을 피할 때까지 말하라고. 그 말을 듣고 거북해할수록 더욱 더 말하라고. 또 하루는 여성들에게 자신의 질을 본 적이 있는지를 묻는다. 본 사람은 몇 없다. 거울을 나눠주며, 다음 시간까지 자신의 질을 그려오라고 한다. 다큐멘터리는 여성들이 그려온 다양한 그림들을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이렇게, 이곳에서의 교육은 여성이 자신의 존재를 긍정케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리더십 훈련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한 강사가ㅡ그 자신도 강간피해의 생존자인 여성이ㅡ 삥 둘러 앉은 여성들의 정중앙에 서서, 물러나지 말라고 교육한다. 뒤에 숨어 있지 말고 앞으로 나오라고. 한 발자국만 앞으로 나오라고. 일어나라고. 그렇게 격려하자 앉아 있던 여성들이 하나둘 일어나 중앙으로 나온다. 이내 그들은 흥겹게 춤을 춘다. 정말 아름답고 놀라운 장면이었다.


드니 무퀘게 박사는 판지병원과 기쁨의도시를 운영하는 여성운동가이면서 평화운동가이기도 해서, 2012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UN 회의에 초대돼 콩고 내전의 실태를 알리는 연설을 했다. 민병대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민병대는 그의 딸과 아내를 납치해 그에게 살해협박을 했다. 이 일을 견디지 못한 무퀘게는 다른 나라로 도피하는데, 기쁨의도시의 여성들이 없는 살림을 쪼개고 쪼개 그에게 귀국 비행기표를 선물한다.


하루 1달러를 버는 여성들이 비행기표를 살 만큼 그를 기다리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을 수 있을까. 무퀘게는 결국 귀국한다. 그가 돌아온 날, 활주로에는 수많은 여성들이 길을 이었다. 그가 기쁨의도시로 돌아가는 길목 모든 곳에 여성들이 있었다. 그 여성들과 함께 천천히 기쁨의도시로 걸어가는 풍경이, 마치 '셀마 몽고메리 행진'을 보는 느낌이었다.


다큐멘터리는 몇몇 생존여성들이 기쁨의도시를 졸업하는 것으로 끝난다. 몇 년이 흘러, 그들 중 누군가는 변호사가 됐고, 누군가는 간호사가 됐고, 누군가는 운동가가 됐고, 누군가는 기쁨의도시의 경비원이 됐다. 그들은 모두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앞선 교육에서 이런 말들이 있었다. "우리는 나의 고통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타인을 돕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우리 사회의 리더가 될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산혁명: 소년 vs. 제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