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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Jan 04. 2019

세네갈이라 가능한 혁명

다큐멘터리 <세네갈의 봄> 리뷰


<세네갈의 봄>, 넷플릭스. 원제는 Incorruptible. 아랍의 봄의 영향을 받아 2012년 세네갈에서 일어난 정권 반대 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 당시의 대통령은 압둘라예 와데라는 자인데, 말하자면 이승만 같은 자다. 재선을 하고도 법으로 금지된 3선을 하려 출마했으며, 자기 아들을 부통령으로 앉히려 수작부리다 실패했다.


2012년 초부터 세네갈 민중들은 이 수작질에 반대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인다. 이에 세네갈 경찰은 최루탄을 쏘아대고, 그 과정에서 십수명의 시민들이 죽는다. 그 명단에는 아주 어린 아이도 섞여 있다. 시위는 날로 커진다. (시위 장면들에서 세네갈인들의 모습이 흥미롭다. 구호라든지, 노래라든지, 춤이라든지.) 2012년 5월 경 대선이 예약된 까닭에, 이 시위는 자연스럽게 투표 운동으로 흘러간다. 이 해 대선에 야권 후보로 무려 12명이 출마한다. 모두 거리에서 투쟁한 정치인들이다.



이렇게 후보가 난립하는 통에 치러진 선거에서 와데는 1/3 정도의 지지를 얻었다. 야권의 가장 앞선 후보인 마키 살도 비슷한 득표율을 얻었는데, 와데보다는 적은 표였다. 결과적으로 와데가 1위, 살이 2위. 세네갈의 봄은 끝난 걸까? 그렇지 않다. 세네갈은 결선투표제를 도입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과반을 얻지 못했기에 선거는 2차 투표를 향해 간다. 이 과정에서 난립했던 11명의 후보 전원이 마키 살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다. 놀라운 광경이다. 어떤 민주주의 선진국에서도 이런 광경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누가 봐도 와데가 낙선할 수밖에 없는 선거. 그러자 와데는 종교 지도자를 매수한다. 또한 열성 지지자들이 폭력을 저지르도록 선동, 혹은 방치한다. 와데의 지지자들은 시민들의 집에 불을 지르고, 창문을 깨부수고, 총구를 들이대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2차 투표에 대한 열기는 꺼지지 않고, 결국 선거에서 마키 살이 승리한다. 2/3 가량을 득표했다. 결선투표제라는 선진적인 제도의 승리다.


그뿐일까? 아니, 이후에 밝혀진 것은 더욱 놀랍다. 1차 투표 이후 군 지휘관들이 와데에게 찾아가 말했다고 한다. 군사력을 동원할 생각일랑 하지 말라고. 자신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세네갈인 교수는 이 일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세네갈의 체제였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잘 구축된 민주주의 제도, 그리고 누가 봐도 명백한 거리의 여론이 세네갈을 파국에서 구해낸 셈이다. 제3세계 국가에서, 이슬람교 국가에서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고들 쉽게 얘기하지만, 제3세계 국가이자 이슬람교 국가인 세네갈의 사례는 그 오만한 비관에 비웃음을 던지며 민주주의를 횡단한다.


시위의 한복판에서, 경찰의 폭력이 최고점에 이를 때, 시민운동의 리더 한 사람이 한 말이 인상 깊어 아래에 인용한다.


"지금 프랑스는 뭘 하고 있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요. 미국은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요. 끝내 세네갈이 망하면 그들이 뭘 하겠어요? 나토를 불러들이고 유엔도 불러들이겠죠. 우리한테 쌀이나 기부하고요. 평화 유지군처럼 굴면서 프랑스군이 구하러 왔다고 큰소리 칠 거예요. 아니, 미군이 구하러 왔다고. 자기들이 신이나 구세주, 하느님이 된 듯 굴 거예요. 밥맛없는 놈 하나 데리고 와서 권력을 쥐여 주면서 말하겠죠. '이 사람을 따르라!' 세네갈에선 용납 못해요. 외부에서 우리나라에 관여하는 꼴은 절대 못봐요.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린 독립국입니다. 우리도 알 건 다 알고, 제대로 된 사람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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