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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Jan 04. 2019

더러운 장남적자주의

영화 <아쿠아맨> 리뷰


<아쿠아맨>, 벨라시타 메가박스. 기대한 것보단 훨씬 좋았다. 왜냐하면 아무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디씨치곤 제법, 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마블과 비교해도 훌륭하다. 물론 나는 얼마 전 <스파이더맨 : 뉴 유니버스>를 본 자이기 때문에, 그래봤자 인간계의 영화라고 가소로워하고 있지만. 아쿠아맨 리뷰에 할 말은 아니지만 뉴 유니버스 한 번 더 보고 싶다. 아이맥스관 딱 한 번만 더 열어주세요.


이 영화가 DCEU의 다른 영화들과 달리 호평을 얻고 있는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아쿠아맨'의 세계관에 충실하다는 점. 먼저 애써 다른 세계관과 연결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산만해지지 않는다. 그 다음으로 애초에 세계관 자체가 다분히 환상적이기 때문에 애써 현실적인 묘사를 하려 무리수를 두지 않는다. 또한 지금껏 보여온 '뻔한 것들'이 아닌 '새로운 것들'로 관객을 현혹할 수 있다. 여러 장면에서 반지의 제왕이 생각났다. (이 두 지점이 호평의 이유라는 점에서, 후속작의 완성도는 또 다시 처참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생긴다.)


마지막으로 세계관의 중심이 바다이기 때문에 과도한 폭파, 파괴 연출이 배제된다. 이전 영화들의 질이 나빠진 것은 결국 이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뭔 일이 벌어지는지 관객이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는데 좋게 평가해줄 리가 있나. 엄격 근엄 진지 일변도 속에서 이따금 어설픈 아메리칸 조크를 구사하는 여타 캐릭터들과 달리 처음부터 유머러스함을 강조하는 아서라는 캐릭터의 차별점도 물론 중요한 지점.


내용적으로는 디씨치곤 나름 신선하게도 2018년 트렌드에 맞춰가려고 애쓴다. 얼마 전부터 미국 영화들은 전통적인 '아빠 찾기'에서 벗어나 '엄마 찾기'에 몰두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 영화도 그 대열에 올라섰다. 또한 트럼프 이후의 영화답게 노골적인 대사들도 가끔 나온다. "모르는 세계에 편견을 가지면 안 된다"라거나. 좀 뜬금없는 맥락에서 튀어나오는 대사라 굉장히 이질적이었지만. 아쿠아맨 아서 커리가 '순수혈통'이 아닌 '혼혈'이라는 설정도 다양성 주제를 어필하는 데 활용된다.


그런데 단지 혈통적으로만 소수지, 왕족에, 맏이에, 게다가 남성이기에 정통성을 갖고 있으며 '순수혈통 차남'이 열등감을 느낀다는 식의 이야기를 쓰면서 혼혈 차별 어쩌고를 얘기하려 하면 좀 우습지 않나... 게다가 아서 커리, 재능충이다. 역시 재능충, 그것도 혈통적 재능충은 뭘 해도 이길 수가 없다는 교훈을 남겨주는 영화. 왕의 자질로만 보자면 재능과 혈통과 젠더 말곤 암것도 없는 아서 커리보다는 싸움도 잘하고 지혜도 풍부하고 바다도 부릴 줄 알고 아무튼 개짱 아름다우신 우리 메라 누나가 훨씬 더 뛰어난 왕이 될 수 있지 않겠냔 말이다. 더러운 혈통주의, 가부장제, 장남선호사상.


재능이 없는 우리는 뭘 할 수 있나요?
쓸데없는 소리 말고 팝콘이나 가져와라, 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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