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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Jan 05. 2019

말콤X를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나

영화 <말콤 X> 리뷰


<말콤 X>. 계속 궁금했는데 어렵게 어렵게 구해 봤다. 3시간 20분의 긴 러닝타임 동안 한 인간의 인생 전체를 내내 묵직하게 따라가는 영화인 까닭에, 한 번만 보고 뭔가 의미있는 리뷰를 내놓을 자신은 없다. 간단하게 몇 가지만 메모 삼아.


1. 

오프닝 시퀀스 무척 근사하다. 성조기가 화면을 꽉 채우고, 그 위로 "MALCOM X"라는 영화 제목이 뜬다. 그리고 다시 그 위로 말콤 X의 연설 소리가 나오는데, "형제자매들이여, 나는 오늘 백인들을 고발하러 나왔습니다"로 시작하는 연설이다. 


유튜브에서 보기


그가 성조기 위로 백인을 고발하는 연설을 하는 동안, 백인 경찰 무리처럼 보이는 자들이 흑인 한 사람을 집단구타 하는 장면이 성조기와 반복적으로 교차된다. 폭력이 극에 달할 때쯤 화면을 가득 채웠던 성조기의 모서리 부분부터 불이 붙어온다. 그리고 마침내 연설이 끝날 때쯤, 성조기는 "X"자를 남긴다. 그리고 영화 시작.


2. 

말콤 X에 관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내용은 극단주의자, 폭력에 맞선 폭력, 흑백 분리주의 주장, 뭐 그런 것들이다. 오해는 아니다. 실제로 말콤 X가 미국에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바로 그러한 사상들을 유려하고 선동적인 언어로 배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말년이 있었다. 이슬람교인으로서 성지순례를 위해 메카에 간 그가 그곳에서 무수하게 다양한 인종들(여기에는 백인도 포함된다)에게 '환대'를 받고 돌아와서는 '백인은 죄악'이라는 기존의 언어를 철회했다는 것. (물론 여전히 흑인의 자기방어수단으로서 폭력을 지지했다. 백인도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는 것에 가깝다.) 그때부터 그는 '흑인'이 아니라 '아프리카-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주장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성조기로 시작해 불탄 X로 전개된 것이, 다시 꽉 찬 성조기로 마무리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3.

1960년대를 지나온 미국인들의 세계관이 궁금하다. 존 케네디(1963), 말콤 X(1965), 마틴 루터 킹(1968), 로버트 케네디(1968)까지, 평화와 진보를 상징했던 자들이 줄줄이 '공개암살'된 시대를 TV로 목격해온 미국인들, 특히 진보적 미국인들은 어떤 트라우마 같은 걸 갖고 있을까. 


4.

감독은 스파이크 리. 그 자신도 흑인이고, 열렬한 인종차별반대주의자다. 흑인을 다룬 여러 영화들이 그의 필모그래피를 장식한다. <블랙 클랜스맨>이라는, KKK에 잠입했던 흑인 형사의 실화를 다룬 영화를 최근에 제작했고 꽤 잘 만든 영화라고. 찾아봐야겠다. 뒤늦게 총평하자면 <말콤 X>는 무척 잘 만든 전기영화다. 또한 노골적으로 인종차별반대 프로파간다를 펼치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래서 때때로 이질적인 장면들이 섞여 있고 특히 말콤 X의 죽음 이후의 장면들이 거의 대부분 그러한데, 납득할 만한 수준의 이질감이다.


5.

미국에서는 2015년부터 말콤 X의 탄생일인 5월 19일을 "말콤 X 데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어떤 도시는 아예 공휴일로 지정을 했다고. 2015년은 그의 출생 90주년이자 사망 5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리고 2015년 5월 19일은 내가 만 스물다섯이 되던 날이었다. 하핳, 제 생일도 5월 19일이라는 얘기를 하려고.


6.

말콤 X와 마틴 루터 킹이 각각 이슬람교와 복음주의 기독교 단체를 택하고 또한 각각 폭력과 비폭력을 택한 사회적 조건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 있다고 한다. 무척 흥미로운 주제라서 언젠가 찾아 읽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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