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버드나무 Jan 05. 2019

21세기 지옥의 묵시록

다큐멘터리 <온리 더 데드> 리뷰


다큐멘터리 <온리 더 데드>. 아주 아주 흥미로운 주제의 전쟁 다큐멘터리다. 이 다큐의 감독 마이클 웨어는 타임지와 CNN의 종군기자로 2003년 이라크로 갔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기 며칠 전. 여기서 그가 전쟁의 한복판을 취재하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중심내용인데, 어쩌면 뻔할(?) 전쟁 다큐를 흥미롭게 만든 건 그가 서 있었던 위치다. 어쩌다 보니 그는 이라크 반군의 아지트로 초대받는 신분이 된 것이다. 반군은 선전용 영상을, 웨어는 특종을 받으니 상호이득. 그래서 다큐의 전반부는 반군의 시점으로 그려진다. 

후반부에는 미군을 밀착취재한다. 진짜 말 그대로 밀착취재. 총에 맞아 쓰러지는 미군의 바로 옆에 카메라가 있을 정도다. 직접 방탄모와 방탄갑옷을 입고 총격이 난무하는 현장을 종횡무진하는데, 이걸 웨어는 '중독됐다'고 표현했다. 아무튼 이런 두집살이가 이 다큐멘터리를 특별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그는 이렇게 두집살이를 한 덕에, 미국인이지만 전적으로 미국의 편에 서지는 않는 사람이 된다. (물론 전적으로 이라크 반군의 편인 것도 아니다.) 그는 이라크 반군을 '이해'하려 애쓴다. 그들의 폭력을 이해하는 것이 그가 이라크에 남아 있는 목적이라고까지 말할 정도다. 이처럼 이해하려는 사람의 시선으로 이라크 전쟁을 목격하는 까닭에, 다큐는 전쟁의 흐름을 잘 잡아내는 데 성공한다. 미국의 침공, 순식간의 점령, 그러나 스물스물 부활하는 반군, '정석'적인 저항, 미군의 제압, '변칙'적인 저항, 끝나지 않는 전쟁, 점점 더 과격해지는 저항ㅡ자폭테러와 게릴라전. 이 흐름.

자폭테러에 이르러 이라크는 미군에게 무간도가 된다. <허트로커>가 주요하게 담아냈던 긴장은 실화적인 것이었다. 군복을 입고 총기를 든 사람이 아니라, 옷 속에 폭탄 제어장치를 숨기고 있을 비무장 민간인이 가장 위험한 사람이 되는 전장. 따라서 모두가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상정되는, 공포가 지배하는 지옥. (하지만 이 지옥은 미군에게만 지옥이 아니다. 테러리스트가 아닌, 미군으로부터 의심받는 모든 민간인에게도 지옥이다. <허트로커>가 놓치는 지점 하나가 바로 여기다.)

다큐는 이 지옥 속에서 미군이 어떻게 미쳐가는가를 지독하게 가까이서 포착해낸다. 옥상에서 게릴라를 상대하곤 흥분하며 "이제야 심장이 뛰는군!" 하고 외치는 미군, 단지 지나가던 민간인을 붙잡아 폭력을 행사하며 옷을 벗기는 미군, 총기를 감추고 있단 이유로 사격하여 반죽음으로 만들어놓곤 아무도 응급처치를 하지 않으며 "아직도 안 죽었어?" 하고 묻는 미군... 다큐는 방치된 채 경련을 일으키며 죽어가는 이라크인을 포커스하며 막을 내린다.

근래 본 다큐멘터리 중에 가장 끔찍했고, 가장 여운이 남았다. 9.11과 이라크전쟁에 대한 이해없이 현대 국제정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이 균열이 어디서부터 일어났는가를 이해하려면, 가장 가까운 도착점은 역시 이라크 전쟁일 것이다. (더 멀리는 물론 제국주의 시대까지 올라가야 할 테지.) 이라크 전쟁에 대해 궁금한 사람이라면 필히 참고해야 할 다큐멘터리라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극단이 지배하는 사회의 여성-아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