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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Jan 05. 2019

상징이 된 죽은 그의 하루

영화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 리뷰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 봤다. 원제는 <Fruitvale>인데, 드물게 한국 제목이 더 매력적인 영화인 듯. 영화의 스토리라인은 매우 간단하다. 마약소지죄로 복역하고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오스카 그랜트가 2008년 12월 31일부터 2009년 1월 1일 새벽까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가 스토리라인의 전부다. 

이 스토리라인에서 사건이라 할 만한 일은 딱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 오스카는 12월 31일 낮 길에서 떠도는 강아지 한 마리가 로드킬 당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둘, 오스카는 1월 1일 새벽 Fruitvale 지하철역에서 경찰에 의해 체포 당하고 총에 맞아 숨을 거둔다. 두 번째 사건이 일어나는 건 85분의 러닝타임 중 60분에 다다라서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저 오스카가 딸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데려오고, 시장에 가서 게를 사고, 여자친구와 어머니의 생일파티에 가서 친척들과 인사를 나누고, 친구들과 새해 카운트다운 불꽃놀이를 구경하러 가는 평범한 모습들이 그려질 뿐이다. 하지만 그 평범한 장면들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경찰에게 총에 맞아 죽은 오스카가, 다소 껄렁껄렁하긴 하지만, 평범하게 삶을 꾸려나가는 한 인간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다음과 같은 점에서다. 오스카 그랜트는 흑인이다. 그리고 그를 체포하고 총을 쏜 경찰은 백인이다. 사건의 디테일을 이렇다. 지하철에서 싸움이 벌어졌다는 신고를 접수하고 경찰이 달려왔다. 이미 상황이 종료돼 누가 싸운 사람인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경찰들은 오스카와 그의 흑인 친구들을 골라내서 체포했다. 경찰이 그들만을 골라낸 속내는 알 수 없지만, 그 상황에서 오스카와 그의 친구들만이 흑인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너무나 명확하고 신속하게 사건의 구도가 '경찰의 인종차별 살인'으로 규정된다. 그리고 희생자인 오스카 그랜트는 하나의 구심점이 된다. 물론 그것은 옳은 규정이고, (유족의 동의가 있다면 물론이고, 없었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오스카를 운동의 구심점으로 삼는 것 또한 가능하다. 여기서 지워지는 것이 오스카라는 한 사람이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아온 사람인지는 그렇게 주목받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오스카의 죽음에 슬퍼하며 분노하는 것은 그가 자신의 '삶'을 가졌던 한 명의 인간이기 때문 아닌가. 

그렇다면 그의 삶을 함께 봐야 한다. <오스카의 그랜트의 어떤 하루>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 정말로 고작 '하루'가 얼마나 아름답고 풍성했는지를 보여준다. 영화는 고발의 비장함 같은 걸 잠시 접어둔 채, 건조하고 고요하게 그의 삶을 비춘다. 그는 남들과 다르지 않은 하루를 살아낸 평범한 인간이었고, 비록 마약사범이자 동네에서 소문난 깡패이고 여자친구를 둔 채 바람을 피운 적이 있는 바람둥이였지만, 그런 그조차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죽어선 안 된다, 라는 것.

영화는 말미조차 고요하다. 총에 맞아 중환자실로 실려간 오스카는 결국 살아나지 못하고 눈을 감는다. 그의 어머니는 시신을 보며 죽음을 자신의 탓이라 자책하고, 그의 여자친구는 '아빠는 어디에 있냐'고 묻는 딸의 물음에 답하지 못한다. 그리고 암전. 지하철 역장과 경찰서장이 사임하고 해당 경찰은 기소됐으나 '과실치사'로 11개월만 복역하고 나왔다는 자막이 뜬다. 그리고 짧게 뜨는 실제장면 하나, 2013년 1월 1일의 Fruitvale. "Justice for Oscar"라는 피켓을 들고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사람들 옆으로 오스카의 딸처럼 보이는 여자아이를 짧게 비추고 크레딧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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