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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Jan 05. 2019

실패했으나 성장한 청소년들의 혁명

다큐멘터리 <우산혁명: 소년 vs. 제국> 리뷰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우산혁명: 소년 vs. 제국> 봤다. 2014년 홍콩에서 있었던 보통선거권 쟁취 시위(=중환(central) 점령 운동)와 그 시위의 지도자 중 한 명이었던 조슈아 웡이라는 소년을 다뤘다. 결과적으로 패배했기에 나는 '혁명'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자 한다. 이 시위 이후에 홍콩의 사회 분위기가 어떻게든 바뀌었다면 혁명일 수도 있으나, 다큐멘터리는 그 이후를 다루지는 않는다.

부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카메라가 가장 중심적으로 따라가는 인물은 조슈아 웡. 그는 14세 때부터 중국식 사회주의 교육을 홍콩에 도입하는 내용의 '국민교육'에 반대해 학생단체를 조직해 싸움을 시작했고, 결국 국민교육 도입을 철회시키기까지 한 인물이다. 그리고 16-17세가 되던 해, 홍콩 시민의 행정장관 선출권을 박탈하려는 시진핑과 렁춘잉 당시 홍콩 행정장관에 맞선 중환점령운동의 지도자 중 하나로 우뚝 선다.

놀라운 건 이 17세에 불과한 조슈아 웡의 연설들과 전략들, 그리고 그에 대한 주변 교수들-기자들-대학생-친구들의 놀랍도록 존경을 보내는 인터뷰들. 1시간 30분 남짓의 다큐멘터리 내내 인터뷰들이 진행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웡의 '어린 나이'에 대해 감탄하거나 '기특하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웡이 얼마나 치밀하고 또한 감정을 숨길 줄 아는지, 왜 자신들이 아닌 웡이 이 운동의 상징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등에 대해 시종일관 존경을 담아 이야기한다.

특히 웡은 대중연설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이 문제는 우리가 해결해야 합니다. 다음 세대에게 그 책임을 미룰 수 없습니다." 이 말을 한 게 14세인가, 15세쯤이다. 15세의 청소년이, 성인들을 향해서, 스스로를 '우리'로 위치시키고, 오히려 성인들에 의해 '다음 세대'로 호명되던 자신이 '다음 세대'에 대한 책임감을 강조하는 것. 탁월하다고 생각했다.

앞서 언급했듯 시위는 실패했다. 최루탄과 최루액, 무장경찰들 앞에 우산을 펼친 시민들은 센세이션했으나 실질적 힘을 갖지 못했다. 79일의 점령운동은 단 며칠만에 무력하게 해산됐고, 십수만까지 모였던 시민들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조슈아 웡과 그의 친구들, 대학생 지도자 한 사람은 포기하지 않고 '데모시스토'라는 정당을 꾸렸다. 행정장관을 선출할 수 없다면, 아직 선출할 수 있는 입법부에 자신들이 들어가 정부를 마비시키겠다는 목적으로. 그리고 실제로 대학생 지도자는 당선되어 입법부에 들어간다. 웡은 나이가 안 돼 2020년을 기다리고 있다고.

홍콩 시위를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조금 머릿속이 복잡하다. 급진적 시위라기엔 홍콩의 위치가 어딘가 꺼림칙하고, 또 그렇다고 부르주아 시위이니 하고 제쳐두기엔 중국의 위치가 어딘가 꺼림칙하다. 그래도 중환점령운동이라는 모멘텀의 정황을 다큐멘터리로나마 파악해둔 것은 앞으로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다. 이제 미국 오큐파이 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싶은데, 넷플릭스엔 없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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