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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Jan 13. 2019

자유 잃은 이란의 여성 이야기

애니메이션 <페르세폴리스> 리뷰


<페르세폴리스>, 네이버 시리즈. 정말 좋은 애니메이션 한 편을 봤다. 짧게 요약하면, 서구의 지원으로 권력을 잡아 서구친화적인 독재를 펼치던 팔라비 왕조 시절에 태어난 자유로운 소녀 '마르잔'이 1979년 이란 혁명 이후의 여성 억압적인 호메이니 시대를 살아내는 이야기다. (그 결과와 무관하게, 민중들의 자발적인 의지로 왕조를 끝장낸 것이기에 그것은 혁명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애니메이션이 잘 보여주는 것은 정치와 종교와 인권들 사이의 복잡한 관계다. 팔라비 왕조 시절 세속주의 정책으로 여성을 포함한 이란인들 모두가 자유롭게 살아가지만, 왕조의 근간이 영국을 위시한 서구 열강의 주권침해에 있기에 그것은 민족성 강한 이란인들의 타파 대상이 된다. 혁명은 성공했고 민중들이 원한 민족의 정권을 세웠지만, 이 정권은 종교적 정체성을 강화하며 혁명을 일으킨 민중들, 특히 여성들을 억압한다. 1979년 이전까지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던 여성들은 일순간에 히잡을 쓰지 않으면 종교경찰에 잡혀가는 처지가 된다.


그러나 마르잔은 물론이고 이란의 여성들은, 또 다수의 남성들은 단지 '순응하는 척'을 할 뿐, 경찰의 눈을 피해서는 여전히 1979년 이전의 자유로움을 갈구하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우리가 쉽게 상상하듯 이란 여성들은 체제에 순종적이고 여성 억압적인 상황을 당연시할 것이라는 인식이 틀렸다는 것을 <페르세폴리스>는 흥미로운 장면들을 통해 잘 보여준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 아닌가. 충분히 긴 시간 자유롭게 살아본 사람들이, 어느 한 순간 자발적으로 자유를 반납하는 일은 불가능하니까.


(위 영상은 유럽에서 적응에 실패하고 이란에 돌아온 마르잔이 이번에는 이란적 질서에 순응해 살아가려다 결국 우울증에 빠지고 마는데, 어느날 꿈에서 신이 나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라고 조언해준 다음의 장면. 성우가 직접 노래를 부른다ㅎㅎ)


이 영화가 마르잔이라는 소녀를 중심으로 단지 억압받는 이란 여성들의 실태를 고발하는 내용만으로 꾸려졌다면 그리 흥미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페르세폴리스>는 그 이상을 보여준다. 펑크를 좋아하고 활발함이 도가 지나친 마르잔은 도저히 혁명 이후의 이란에 적응할 수가 없었고, 부모는 이런 마르잔을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 보낸다. 마르잔이 원했던 자유로운 세계에 진입했으니 이제 다 괜찮아질까. 천만에, 마르잔은 유럽에 적응하려 애쓰지만 끊임없이 겉돈다. 유럽인들은 마르잔을 이용하려만 들고, 쉽게 배신하며, 따뜻한 정을 좀처럼 주지 않는다. 결국 이란으로 돌아온 마르잔은 간섭을 벗어나 유럽으로 가고 싶다는 남자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서양 사람들은 네가 길에 쓰러져도 상관 안 해."


이 영화는 단지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표현방식과 이미지로 감탄을 자아낸다. 원래 그래픽노블 원작이라고 하는데, 만화적 상상력을 무척 흥미로운 방식들로 스크린에 옮겨두었다. 예컨대 아래 영상은 혁명 이후 이란 학교의 종교 근본주의적인 여선생들이 마르잔을 채근하는 장면인데, 차도르를 입어 온몸이 검정색인 것을 활용해 저렇게 표현했다. 이런 주제에 대해 관심이 많거나 혹은 훌륭한 여성영화를 보고 싶다거나 애니메이션의 표현방식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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